화절령통신

복 많은 년을 기다리며[시사비평-황인오]

소한마리-화절령- 2015. 1. 4. 21:58

복 많은 년을 기다리며[시사비평-황인오]

황인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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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20 11: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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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인간관계, 혹은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횟수는 차이가 있지만 여기저기 송년모임에 바쁜 시절이다. 송년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건배사인데, 예전에는 그냥 건배~!를 외치면 그만이었으나 요즘은 그것만으로는 썰렁한 건배사가 되었다. 멋지고 재미있는 건배사 하나쯤 할 줄 알아야 송년행사에서 존재감을 가지는 게 요즘 세태다.

올해 들은 건배사 중에 재미있다고 느낀 게 몇 가지 있다. 필자가 맺은 관계망의 특성상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내년에 있을 양대 선거일정과 관련된 건배사가 대부분이다. 그 중 하나가 ‘가는 년 붙잡지 말고 오는 년 막지말자, 어서 오라, 복 많은 년, 2012년이여~!’, 뭐 이런 거였다. 이왕이면 복 많은 년이나 놈이 오면 좋은 것이니 사람에 따라 어감이 다를 수 있고 비속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 시대적 상황을 담은 건배사라 하겠다. 단 여성들이 양해한다면.

그렇게 모두들 지긋지긋한 이명박 치하를 벗어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그냥저냥 풀려나가는 정상적인 사회로 복귀하고픈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나아가 작년 지방선거 때부터 우리 사회의 중심화두가 된 복지사회, 또는 평화복지국가를 실현해서 민주주의가 밥도 먹여주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기도 하다.

▲ 2011년 후반기, 한국사회는 한미FTA 문제로 들썩거렸다. 때 아닌 물대포 세례를 받아야 했던 시민들은 추잡한 정권이 가고 새 길을 열리길 소망했다.

 

가야할 년이 어디 이명박 정부 뿐이랴

사실 우리가 정말 반대하고 새로이 맞이해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와 복지국가이기만 한 것인가?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정권만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이 되고 사람의 가치는 오로지 통용화폐로 환산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는 모든 움직임을 적대시하는 체제를 거부하는 큰 흐름에서 당면한 상대가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정권인 것뿐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정말 희구해야 할 것은 ‘보편적 복지’가 제대로 작동되어서 이 땅에 사는 누구나 먹고사는 걱정 안하거나 덜 하고 편안하게 사는 그런 나라일까.

자본주의는 그 태생부터 종말의 타이머가 작동하고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측도 있거니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지구적 생태계 파괴와 양극화의 폐해로 미루어 볼 때, 후쿠야마 프란시스류의 사이비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최후의 체제일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지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월스트리트의 금융독점자본 지배체제는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진 셈이다. 석유에 기반을 둔 무한축적과 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무한한 성장과 축적을 전제로 한 근대적 기획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2012년의 양대 정치일정을 통해 포스트 복지사회까지 염두에 둔 전망을 하나씩 차근히 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함께 지구별의 공기를 마시며 숨결을 나누는 이웃을 위해 물과 먹거리, 땔감 등 모든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미래세대에게 최소한의 양보와 배려를 베푸는 사회를 위해 시동을 거는 시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70년대에 외국, 특히 미국에서 유학을 다녀 온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미국에는 멀쩡히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내다 버릴 정도로 풍요한 사회라고 침이 마르도록 떠들고 이를 접하는 독자나 청취자들은 마치 과자와 빵으로 만든 나라 이야기인양 침을 흘리며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8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도 서울과 도시 변두리 쓰레기장에 아직 쓸 만 한 텔레비전과 냉장고 따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정말 행복하기 시작했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소득과 삶의 만족도가 엇나가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행복의 함정이라는 것이다.(12월 19일치 <한겨레> 9면)

 

한반도는 동네의 어여쁜 처자와 같아서

현대사회의 일상은 더럽거나 어둡고 어수선 한 것들은 가장자리로 배제되고 인위적으로 그어진 직선을 기초로 울퉁불퉁한 기복을 없애고 평탄하고 매끄러운 면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갖가지 제품과 장치를 이용하며 기계시계에 의해 표준화된 시간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 버렸다.(나루사와 아키라, <일본적 사회 질서의 기원>, 박경수 번역, 小花, 2004)

진짜 자연은 잃어버리고 만들어진 ‘자연’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 시절의 공동체가 아름다웠다고 해서 신분제와 가부장제에 기초하여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인격이 깡그리 부인되었던 근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대적 기획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되 근대가 성취한 소중한 성과와 가치들은 그대로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곰곰이 성찰하는 세밑을 보냈으면 좋겠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한반도는 동네의 어여쁜 처자와 같아서 주변의 4대강국이 서로 잘 보이려고 구애를 하지만 앙앙불락하며 서로 싸우는 한반도는 깡패 같은 4대강국에게 먹잇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따른 급변사태에도 불구하고 민주진보진영이 양대 선거일정을 잘 이끌어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굳건히 지키고 열강들의 세력다툼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좋겠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지구별을 회복하는 기나긴 싸움의 단초를 열기 위해 민주주의를 옥죄고 부인하는 자들과 앞으로 꼭 1년 동안 신발끈 조이며 건곤일척의 겨루기를 잘 준비하는 세밑이 되어야 한다. 착공한지 단 2년 만에 구불구불하게 그러나 수천, 수만 년을 유유히 흐르던 4대강을 처참하게 죽여 놓고 축배를 들고 있는 무리들을 지대로 심판하고 FTA와 뉴타운 재개발 광풍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피눈물 흘리지 않게 하는 진짜 ‘복 많은 년’ 맞이하기를 고대해 본다.

황인오 (부천@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i-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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