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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국의 의정일기-지방자치에서 정당은 선거만을 위해서 존재

소한마리-화절령- 2014. 11. 9. 20:10

* 주요일정 : <공공정책>이라는 월간 잡지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원고를 부탁해 왔습니다. 11월호에 실렸네요. 평소 의정일기보다는 좀 길지만 관심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방자치에서 정당은 선거만을 위해서 존재

 

기초선거 정당공천제의 장·단점이나 폐지 논의의 과정, 그리고 논의의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이런 논의들을 반복하는 것 보다 기초의원으로서 필자가 경험한 정당공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필자는 8년 동안 당적을 가지고 지방의원 활동을 하면서 지방자치에서의 정당정치에 회의를 느꼈다. 그리하여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당을 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기 때문에 정당공천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필자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의 폐해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1. 정당공천을 받아 기초의회 입성

필자는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지방의원-부천시의회 의원이 됐다. 2006년 지방선거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처음 시행된 선거이며, 기초선거 중선거구제가 처음 도입된 선거이다. 필자는 이 선거를 준비하려고 선거제도가 결정되기도 전인 2005년 4월에 사직을 했다. 시민운동과 관계를 하던 필자는 무소속 당선이라야 시민의 진정한 대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논리적 결론이라기보다는 정당의 내천을 받아 당선된 지방의원들의 의회활동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무소속을 추구하면서도 목표는 당선이었다. 당선되지 않을 무소속 도전에 의미를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당시 열린우리당에 입당을 해 두었다. 날짜가 지나감에 따라 선거제도가 점점 구체화 됐다. 정당공천제는 기정사실화 되고 출마를 작정한 선거구는 4인 선출 지역으로 될 것이 확실시 됐다. 무소속으로 도전해도 4등 당선은 가능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4인 선거구는 2인 선거구 두 개로 분할돼 버렸다. 정당공천을 받지 않고는 당선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당원임을 밝히고 지역위원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경선을 대비해 입당원서를 받으러 다녔다. 2006년 3월 말에 열린 경선투표에서 경쟁자를 눌렀으며, 5·31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정당 소속 시의원으로서의 첫 발을 디뎠다.

당시 부천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으며 부천시의회는 한나라당이 18석이고 열린우리당이 12석이었다. 중선거구제였으니 그나마 12석이나 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린우리당이 고전한 선거였다. 4년 동안 열심히 야당 시의원 생활을 했다. 불합리한 시정을 앞장서서 지적했으며 같은 당 소속 의원들과의 협의와 의사소통 구조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장서서 싸우는 야당의원을 같은 정당에서 거북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 여당이 되면서 정당정치에 회의를 느끼다

지방자치단체의 여당의 돼서 정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2010년 선거에 임했고 선거결과 그대로 됐다. 같은 당 소속의 시장이 탄생했으며 시의회도 29석 중 14석을 차지하여 제1당이 됐다. 한나라당이 12석, 민주노동당 2석, 통합진보당 1석이었다. 시의회는 개원 직후 교섭단체를 만드는 등 정당정치를 본격화할 준비를 했고 필자도 바라던 바였다. 기왕에 정당공천제를 시행하는 바에야 제도적 틀을 갖추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빨리 왔다. 결정적 사건은 예결특위 구성을 둘러싼 여당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예결특위는 3개 상임위원회에서 3명씩 구성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순번제로 추천하다보니 소수당이 더 많이 추천될 경우가 생긴다. 2012년도 본예산을 다룰 예결특위를 예측해 보니 야당이 오히려 더 많게 된 것이다. 이를 간파한 여당이 예결특위 위원을 교섭단체별 의석수에 비례하여 추천하자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뻔히 눈에 보이는 꼼수에 야당이 반발하고 시의회 파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당 소속 의원으로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사실 실망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와 있었던 것 같다. 시장선거에서 소속 정당이 승리했지만 시정에서 정당의 자리는 모호했다. 당선자 개인의 승리고 선거승리의 논공행상에 따라 자리를 나누는 관행은 바뀐 것이 없었다. 지방자치에 정당이 관여할 수 있는 제도도 없었다. 당 소속 국회의원, 도의원이 참여하는 당정협의라는 이름의 회의가 가끔 있었지만 시장이 주재하여 국·도비 지원을 건의하는 정도였다.

더 기가 막힌 사건은 그 다음 해에 찾아왔다. 문예회관 건립 건이었다. 용역 결과 시청 근처 중앙공원이 최적지로 추천됐는데, 예정지 주변 주민들이 반대를 했다. 공원에 대규모 시설을 건립하면 휴식공간이 축소된다는 주장이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예회관 부지를 중앙공원으로 확정지으려는 안건이 상정됐다. 주민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한 후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으로 통과를 결정해버렸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급할 것도 없는 일을 변변한 주민 의견수렴도 없이 결정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앞장서서 반대를 했다. 그러나 야당 이탈표 1표와 통합진보당 1표를 합하여 15표로 가결돼 버렸다.

두 건의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정당에 남아 있을 의욕이 사라졌다. 2011년에 예결특위 건을 겪은 후 사실상 탈당결심을 굳혔지만 정당의 당적으로 2012년 총선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는 바람에 결행을 하지 못했다. 공개적으로 총선출마를 시도했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문예회관 건 이후에도 탈당을 할 수 없었다.

다음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애초 지방정치에 입문하면서 생각했던 무소속 당선을 이루려고 마음먹었다. 중앙정치권의 공천배제 논의가 길어지면서 탈당을 미루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유지로 선회한 이후에야 탈당을 할 수 있었다.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뤘고 현재 무소속 시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정당 간 협의에 의해 이뤄지는 의회직 선거는 꿈도 꿀 수 없고 상임위원회 배정 등에서 의견을 반영할 수도 없다. 안건 심의에서도 감정적 배제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두 각오한 일이다. 한 명의 무소속 시의원이 모든 것을 바꿔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두가 적당히 넘어가는 일을 막아내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3. 기초 지방자치에서의 정당

필자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정당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책임정치와 정책 생산 기능, 인재선별 등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9년을 몸담으면서 이런 이론적 장점을 제대로 실현할 아무런 준비도 없고 의지도 없는, 그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필자는 2006년에 처음 정당활동을 시작했고 경선을 통해 지역정치에 입문했다. 공정한 경선을 통해 공천권을 따냈기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당원투표 경선을 통한 공천이 반드시 민주적이라고 평가를 내리기도 쉽지 않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은 없고 후보자들이 입당시켜 둔 사람이 대부분인 소수의 당원들이 뽑는 방식만으로는 완벽한 민주제도라 말하기 힘들다.

시·도당이 경선규칙을 만든다지만 선거에 임박하여 만들어지기 일쑤고 지역위원장(또는 당협위원장)에 의해 변형이 이루어진다. 지역위원장 중심으로 모인 조직이라 표심을 조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어떤 후보는 얼마를 줬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아다니기도 한다. 지역위원장에게 금품을 전달하려던 후보가 구속되는 일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부적격 후보자를 사전에 가려낼 수 있어야 하고, 참신한 신인을 발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역위원장이 좌지우지 하는 공천제도가 아니라 사전에 공지되고 공정하게 관리되는 합리적인 공천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정당공천제와 중선거구제 하에서 정당의 공천은 곧 당선과 연결되는 것인데, 유권자는 정당의 이름을 보고 투표하는 반면 공천제도는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당 내부에서 지역현안을 가지고 협의하고 연구하여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기구가 없다. 법적으로 지역구제도를 폐지한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으나, 지역위원회라는 조직이 있고 편법이나마 사무실도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를 핑계 삼기는 힘들다. 그런데 지역위원회는 오직 선거를 위해서만 가동되는 조직이고, 현직 지역위원장의 국회의원 총선거를 위한 사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정당의 연구기능이 없으니 지역정책은 오롯이 시장에게 맡겨진다. 과거와 같이 돈만 들어가는 지역구가 아니라 당원들이 모여 상향식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정책연구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당적이 있는 의원들로 구성됐지만 기초의회 내에서 정당은 존재감이 없다. 의회직 선출 때와 민감한 사안을 표결할 때만 정당이 나선다. 정당공천제도가 허용되고 있는 만큼 정당정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일부 대도시 기초 지자체에서 구성하고 있는 교섭단체에 대해서도 중앙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어 불가하다고 해석하는 실정이다. 교섭단체를 제도화하고 교섭단체들이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력과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마치며

필자는 기초지방자치 단위에서도 정당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 운용의 난맥 속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정당을 떠났다.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당공천 배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역정당을 제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수 세력의 진출이 용이한 대선거구제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일당 독식이 우려되는 지역에서는 선거제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 역시 거대 정당들이 결정권한을 쥐고 있다.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방자치를 자유롭게 하려면 정당들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방법 밖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