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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에게 40만원 남기고 떠난 암투병 70대

소한마리-화절령- 2014. 12. 14. 15:07

어려운 이웃에게 40만원 남기고 떠난 암투병 70대

광주 서구 한가족버팀목사업·장수노트·공영장례 사업으로 홀몸노인 마지막길 '배웅'연합뉴스|입력2014.12.14 13:50

광주 서구 한가족버팀목사업·장수노트·공영장례 사업으로 홀몸노인 마지막길 '배웅'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주 서구의 '한가족버팀목사업'으로 홀몸노인에게 방문서비스를 제공하던 이순자(56·여)씨가 최모(75)씨를 처음 만날 날, 그는 3일째 굶은 날이었다.

지난해 위암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창문을 등지고 앉은 최 씨는 이씨에게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주라"는 말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암이 퍼진 몸이 타는 듯해 속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이씨는 매일 최 씨의 집을 방문했다. 주말도 쉬지 않았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최 씨에게 죽을 쑤어주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자신이 살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1천500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최 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생긴 습관인 듯 그렇게 최 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없는 듯이 75년을 살아왔다.

최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고 미안하다"였다. 허약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혈변을 싸버린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매일 찾아와 안부를 묻고 죽을 써주었던 이씨 손길에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5일 병원 치료를 거부하던 최 씨가 발병 1년 만에 입원할 당시 최씨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온몸으로 간과 담낭 등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광주 서구는 지난 12일 광주보람장례식장에서 무연고자 공영장례로 최씨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최씨는 '장수노트'를 통해 "어려운 이웃 분들을 위해 드리고 싶다"며 40만원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의 사후 장례는 금호1동장에게 부탁했다.

병원치료를 거부하면 모은 돈이었다. 그를 보살펴 준 이씨에게는 쌍가락지를 남겼다.

장수노트는 노인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후 연락할 사람과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서비스다.

서구는 지난 7월부터 고독사 예방을 위해 장수노트 1천권을 작성했고 최 씨도 지난 9월 한가족버팀목 도우미와 함께 장수노트를 작성했다.

봉사자 이씨는 "가신 분의 마음이 더 넓은 곳으로 흘러가길 바란다"며 최씨가 남기고 간 쌍가락지를 금호1동 동복지협의체에 기부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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