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무라카미 하루키)

소한마리-화절령- 2015. 2. 1. 21:16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무라카미 하루키)

 

 

 

1972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바둑대회인 名人戰에서 당시까지 國手(동아일보의 棋戰인 국수가 아니라 나라의 으뜸가는 바둑고수라는 뜻으로)로 인정받던 조남철8단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19살의 나이로 명인에 오른 서봉수2단의 드라마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당시 신문에 지상(紙上)중계되던 서봉수의 바둑인생과 명인도전기는 그때 즐겨보던 어떤 무협지보다 재미있었다. 바둑은 전혀 못두고 안두지만 신문연재만이 아니라 사카다에이오(阪田英雄)9단 등 주로 일본 기사들의 본인방 제패기 등을 다룬 바둑소설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아마도 盤上의 혈투를 묘사하는 작가들의 필력 덕분이리라.

 

아직은 첼리비다케의 뮌헨 심포니가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신세계와 카라얀의 비엔나필하모니가 연주하는 신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만년 초보 애호가이지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대화를 통해 클래식음악의 넓고 깊은 세계를종횡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오래전 바둑관련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정말 넓고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 강호 高手들의 품격높은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주는 한편 나같은 만년초보로서는 말그대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경지를 보는 것같아 약간 주눅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같은 말러 1번도 그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각각 다른 연주들의 미묘한 차이들을 집어내고 평가할 수 있는지 경탄을 감출 수 없다. 말러만이 아니라 바흐 · 하이든의 고전주의부터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수천 곡의 수많은 연주버전의 미묘 · 미세한 차이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두 사람의, 오자와 씨는 그렇다쳐도 하루키의 음악 이해는 정말 빼어나다.

 

최근 서울시향 사태와 관련하여 정명훈 지휘자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오자와 세이지의 소탈하고 열정적인 음악인생을 보며 새삼 부럽기도 하고 오자와 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 가난한 애송이 지휘자 시절 유진 오먼디의 책상서랍에서 지휘봉을 훔쳤다가 비서에게 들켜 망신을 당한 일화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오자와 씨의 솔직담백한 인간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제(1월30일) 부천 필의 신임 지휘자로 초빙된 박영민씨의 취임연주회를 보면서 우리도 오자와씨처럼 기품있고 능력있는 명인을 더많이 키우고 보호하는 문화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정명훈 서울시향 감독도 훌륭한 음악가이고 부천필을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임헌정이나 금난새, 함신익 등도 훌륭한 이들이지만 이들도 얼마간씩은 별로 아름답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쉽고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긴 이책에 따르면 오자와를 맨처음 발탁했던 뉴욕 필의 레오나드 번스타인도 뉴욕타임즈의 인색한 비평에 시달리곤 했다니까 필수적으로 겪어야 할 유명세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작가가 없을까? 아마도 이산하 시인의 음악적 식견과 필력이면 이 정도의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월간 오디오 기자 출신의 부천시의회 서헌성 의원도 마음먹고 쓰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여튼 K Pop만이 아니라 클래식과 국악을 포함한 우리의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음악적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고 향수(享受)할 수 있도록 좀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부천 필이라는 값진 자산을 보유하고도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천시부터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일이지만!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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