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A군부터 김기종씨까지... 판도라의 상자 건드리나

소한마리-화절령- 2015. 3. 12. 17:55

A군부터 김기종씨까지... 판도라의 상자 건드리나

[주장] 한국사회가 확립한 비폭력 갈등관리규범, 우리가 지켜야 한다

15.03.09 11:37l최종 업데이트 15.03.09 11:48l
                                                                                                                                                         황인오(hino56) 

 

 

지난해 10월, 법원은 자신의 집에 침입한 50대 도둑을 폭행하여 뇌사 상태에 빠뜨린 20대 청년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하여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해 도둑을 잡은 집주인을 처벌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비판 여론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른바 정당방위의 법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까지 '정당방위의 법리'와 함께 '사법정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우리 법원이 정당방위, 또는 자력구제(사적구제라고도 한다)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는가에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정당방위나 사적구제의 요건을 협소하게 해석하는 우리 사법체계를 지지하는 편이다. 신대륙 개척 이래, 처음부터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무장을 하고 자력구제·사적구제를 도모해야만 했던 사회와는 다르다. 독특한 전통 위에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미국 사회와 우리사회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치며 일종의 '비폭력 갈등관리 규범'이 세워졌다. 사회적 갈등에 기인한 폭력에 희생된 이들은 대게 기득권 세력, 독재정권의 이해를 반하는 이들이었다. 4·19, 5·18, 6월 항쟁과 같이 이들 폭력에 의존하는 세력에 저항한 민중의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희생 끝에 지금의 '비폭력 갈등 관리 규범'이 어느 정도 확립됐다.

우리나라는 공권력의 정치적 악용을 막기 위해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사적구제나 정당방위의 요건을 협소하게 해석한다. '폭력의 공적 관리'가 비교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규범을 확립하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총기 범죄나 폭력조직의 발호를 억제한다. 사인(私人)간의 보복범죄를 막고, 종교·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폭력적으로 구현하려는 움직임을 억누르는 효력을 발휘한다.

예외는 있다.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정파에 의해 용산 참사나 댓글 개입이 일어나고는 한다. 국가폭력기구가 제멋대로 저지르는 이런 범법행위는 당연히 그대로 논죄하고 심판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민중들이 오랜 세월 동안 피땀 흘려 확립해 온 '비폭력 갈등관리 규범'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일간베스트'나 '서북청년단' 등 일부 극단적 증오를 표출하는 집단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갈등관리 규범'이 비교적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문명수준이 이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폭력에 호소하기로 말하면 식민지 시대 이래 기득권을 누리며 재화를 독점한 집단을 이길 수는 없다. 누구든 폭력의 빗장을 여는 순간 그 잔학한 피해와 고통은 애꿎은 민중들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수많은 역사와 '지금 여기'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조지 부시가 시작한 2003년의 중동전쟁으로 인해 온 세계가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슬람 국가와 보코하람의 준동으로 일부 서유럽국가의 시설과 인명이 파괴·살상되고 있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쾌재를 부르고 있는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민중들, 여성과 어린이와 노인들, 가난한 젊은 남자들이 더 잔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가?

지난해 익산에서 벌어진 통일콘서트 테러사건의 범인은, 바로 이 같은 폭력의 악순환의 방아쇠를 당겼다. 사법당국이 도둑뇌사 사건에서 보는 것과 같이 엄격한 사적구제 제한의 태도로, 이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그 근거가 바로 이 같은 우리 사회가 확립한 '비폭력 갈등관리 규범'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자국인들이 희생될 뻔했던 익산사건을 대하는 것과 달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김기종씨의 습격 사건을 국면전환의 빌미로 삼으려는 당국의 태도는 엄중히 비난받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김기종씨의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행위를 의거라고 부추기는 일각의 태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진영이나 정파적 관점에 빠질 일이 아니라 익산의 A군이나 김기종씨 모두 갈등의 폭력적 해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죄목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애써 이룩한 '비폭력 갈등관리 규범'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룩하는 것이 가장 튼튼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굳이 진영논법으로 말하자면 '평화는 억압받는 모든 민중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