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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것, 메 라이언과 노라 애프론

소한마리-화절령- 2015. 2. 16. 20:23

4시간 전 | 조회 29635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것, 멕 라이언과 노라 애프론

로맨틱 코미디에 관해 얘기할 때 다음 세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그리고 <유브 갓 메일>(1998). 세 작품의 공통점 세 가지가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요정 멕 라이언의 대표작이라는 점,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영화인 노라 애프론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라는 점이다.

영화감독이며 시나리오 작가인 노라 애프론의 첫 직장은 뉴욕 포스트였다, 5년간 기자생활을 하고 난 후 에스콰이어 등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녀의 첫 남편은 칼 번스타인으로,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추적해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두 영웅 중 한 명이다. 후에 이 사건을 바탕으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제작사는 여러 차례 시나리오를 고쳤는데, 그중 한 버전은 노라 애프론 부부가 직접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버전을 읽은 한 할리우드 관계자의 제의로 TV용 영화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그녀의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의 시작이었다.

사진 = 노라 애프론(좌)과 그녀의 초기작 작품 <실크우드>(우)

그녀의 첫 영화 시나리오는 원자력 발전소의 비밀과 한 여직원의 의문사에 관한 실화를 다룬 <실크우드>(1983)다. 이 작품이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노라 애프론은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1986년에는 자신의 결혼과 삶에 관한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제2의 연인>을 영화화했다. 그녀의 영화는 저널리스트 경력을 말해주듯 진지하고 사실적이었다. 그러다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왔다. 뉴욕을 배경으로, 남녀 사이의 우정과 섹스, 사랑에 관한 주제를 십수 년에 걸친 두 친구의 대화로 풀어낸 이 영화는 그해의 흥행 순위 11위에 오르는 성공작이 되었고 노라 애프런은 두 번째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특급 작가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개봉 당시 대체로 호평받았고, 비판적인 평가는 대부분 우디 앨런 영화의 아류작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팬들은 이 영화를 더욱 사랑했고,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명작으로 재평가되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가장 크게 인생이 바뀐 사람은 역시 멕 라이언이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멕 라이언은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때문에 갈등을 겪다가 캐스팅 디렉터였던 엄마의 도움으로 광고를 찍으며 연기에 발을 들였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예쁘장한 얼굴로 고등학교때도 교내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던 그녀는 열 아홉살 대학생이던 1980년에 첫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다. 고만고만한 작품에 고만고만한 배역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가던 중 1986년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에 캐스팅된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 이듬해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총지휘를 맡은 <이너 스페이스>에 출연했다. 주인공 데니스 퀘이드의 여자친구 역할로 상큼한 이미지를 한껏 자랑했고, 데니스 퀘이드와 연인이 되었다. 이듬해 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죽음의 카운트다운>에서는 십대 소녀를 연기했는데 그녀의 연기에 대한 평은 찬반으로 갈렸다.

사진=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롭 라이너 감독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출연했을 때 멕 라이언은 27세였다. 영화 속 샐리는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를 연기하는데, 이제껏 맡은 배역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배역이었다. 멕 라이언이 연기한 샐리 올브라이트는 그저 귀엽고 수다스럽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면서, 인생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갖고 사는 현대 여성의 삶을,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랑스럽게 연기했다. 그녀는 일관된 호평속에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 주연상 후보까지 오르며 할리우드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특히 그녀의 '가짜 오르가즘' 연기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노라 애프론은 1992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행복찾기>로 감독 데뷔했다. 자기 시나리오가 다른 감독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감독은 항상 작가의 견제를 받아야 더 좋은 연출을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각본 작업에 동생 델리아를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에프론 가의 네 자매는 모두 작가가 되었다. 부모 또한 유명한 영화 작가 부부였다.) 그녀는 두 번째 연출작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멕 라이언을 캐스팅했다. 멕 라이언은 <해리가...> 이후 <볼케이노>, <도어스> 등의 영화를 찍었는데, 영화에 관한 호평과는 별개로 멕 라이언에 대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시애틀...>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딛고 차근차근 새출발 해보려는 남자와, 흘러가는 대로 결혼을 결정한 데에 회의를 느낀 여자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이야기다. 각각 뉴욕과 시애틀이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며,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살던 두 사람이, 라디오 방송을 매개로, 발렌타인 데이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기적처럼 만나게 된다. 이 고전적인 로맨틱 판타지는 세계적으로 2억 2천만불이라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 영화로 노라 에프론은 세 번째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멕 라이언은 두번째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다.

이후 90년대 내내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는 로맨틱 코미디 위주로 채워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영화에서는 평이한 흥행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만 받았다. 노라 에프론은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연극 대본, 에세이집 등 다양한 글을 쓰면서 중년 이후의 삶을 즐겼다고 할 수 있지만,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멕 라이언은 일 욕심도 많았고, 더 진지한 연기자로 인정받고싶은 욕구도 강했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여군 장교같은 캐릭터 변신도 시도하고, 케빈 클라인과 출연한 <프렌치 키스>부터는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8년, 노라 애프론과 멕 라이언은 그들의 세번째 작품을 함께 했다. <시애틀...>을 함께 성공시켰던 든든한 또 한 사람의 파트너 톰 행크스까지 가세하여 1940년작 <샵 어라운드 코너>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유브 갓 메일>을 만들었다. 이메일 펜팔로 알게 된 두 남녀는 서로가 이상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둘의 인연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사이다. 여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40년 된 작은 서점의 주인이고, 남자는 그런 작은 서점들의 상권을 빼앗는 거대 서점 체인의 사장인 것이다. 남자가 둘의 사이를 알게된 후, 현실의 자신을 원망하는 그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천천히 두 정체성의 간극을 좁혀가려고 애쓰는 이야기다.

사진=영화 <유브 갓 메일>

'이메일' 이라는 새로운 통신 수단, 사이버 세계에 관한 동시대의 담론을 담지 못한 점이 아쉽긴 했지만 로맨틱 코미디로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갈등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고전적인 낙관주의도,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과 운명적인 사랑을 이어 간다는 이야기도, 모두 노라 애프론과 멕 라이언의 영화에서 줄곧 봐온 코드였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팬이라면 모두가 반기는 코드다. 당연히 관객은 이 영화에서 식상함을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고향으로 돌아온 동창생을 만난 듯 반가와했다. 대체로 호평을 받으면서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불이라는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 액수는 노라 에프론에게도, 멕 라이언에게도 최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골든 글로브는 멕 라이언을 또 한번 초청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은 꼬박 1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10년간 세 작품은 적은 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나 비평 면에서 영화사적인 의의가 뚜렷한 작품들인 만큼, 노라 애프론과 멕 라이언은 위대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유브 갓 메일> 이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중에 저 세 작품의 아성을 넘는 영화는 별로 없다. 멕 라이언 이후 명멸한 여러 여배우가 좀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하면, 통과 의례처럼 멕 라이언과 비교되어야 한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나홀로 집에>를 봐야 할 듯한 의무감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발렌타인 데이만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세 작품 중 하나가 방영된다.

멕 라이언과 노라 에프론의 새 영화를 한 작품 정도는 더 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노라 애프론은 2012년 골수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50대 중반의 멕 라이언은 꽤 오래전에 전성기가 지났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요즘 멕 라이언을 검색하면 성형으로 예전과 다른 모습이 된 사진 위주의 결과만 나온다. <해리가...>의 샐리, <시애틀...>의 애니, <유브 갓 메일>의 캐슬린이 50대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을 때, 지금과 같은 얼굴을 기대한 팬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젊음이 한결같을 수 없는 것은 야속하다. 하지만 그녀가 출연한 저 세 편의 작품은 한결같지 않은가? 저 걸작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 좋은 감정도 한결같지 않은가? 여전히 우리는 영화 속 멕 라이언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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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작성자 프로필

한예종을 거쳐, 2004년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었고, 국내외에서 상 두어 개를 받았으며, 열성 팬도 두어 명 생겼다. 수년간 영화판 주변을 맴돌고 있고, 최근까지 SNL 코리아 작가로 일했다. 술에 취하면 “영화는 90년대가 최고였다”는 말을 하곤 한다. 팬들과는 지금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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