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되살린 狂人(광인)의 음악
An die Musik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중앙일보 최정동 입력 2015.07.18. 14:49 수정 2015.07.18. 14:52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시야 가득 급류가 흐른다. 거센 물살은 수평선까지 펼쳐져 바라만 봐도 정신이 아득하다. 느닷없이 빠르게 흐르는 풍경을 마주한 느낌.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렇게 시작된다. 베토벤은 둥둥둥 팀파니 연타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작하고, 멘델스존도 아주 잠깐이나마 현악 합주로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슈만은 아무런 예고 없이 굵은 다발의 관현악 합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출발시킨다. 총주로 일관하는 그의 교향곡 4번의 LP 레코드 중간쯤에 바늘을 내려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오래도록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지만 이 곡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나를 ‘싸부’로 부르는 음악 친구가 어느 날 물었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들어 봤어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슈만과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라고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고?” 나한테 클래식의 ABC를 배우던 그는 아름다우니 들어보라는 말과 함께 LP를 한 장 건넸다. 제자가 선생을 능가하는 것은 기쁜 일이니 이런 때는 당황하지 않고 음악사전을 펼쳐놓고 공부하면 된다.
슈만은 나에게는 오랫동안 거리가 먼 작곡가였다. 음악을 듣기 시작한 초기에 읽은 정관호 선생의 칼럼 때문이었다. 선생은 슈만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규정했다. 들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데 아예 무시하기는 또 그렇다는 말이다. 고수의 교시가 그랬으니 신참도 슈만에게 무심할 수밖에. 그런데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연주하는 피아노 독주곡 ‘나비(Papillons, Op.2)’를 듣고 참 묘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슈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급류와도 같은 관현악 도입부가 잦아들자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첫 소리는 날카로운 외침이다. 이어지는 선율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의 뒷모습이다. 따안~ 따따 반복되는 하강음이 불안을 가중시킨다. 비틀거리지만 걸음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이따금씩 마음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내리는 듯 숨죽인 흐느낌이 터져 나온다. 격렬한 감정의 파동이 덮쳐 와 편안히 듣기는 힘든 음악이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른바 4대 천왕이 아니다. 냉면집에 4대 천왕이 있듯이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작품들이 있다. 베토벤·브람스·멘델스존·차이콥스키가 그들이다. 이 외에도 멋진 곡들이 많다. 브루흐·생상·버르토크…. 그러니 슈만을 모른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30년간 7000장의 LP를 모으며 음악을 들어온 친구도 슈만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역사를 살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았고, 1930년대에 와서야 초연이 이루어졌으며, 들을만한 음반도 별로 없다. 그런데 곡의 역사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득 품고 있다.
슈만은 1853년에 곡을 완성했다. 정신착란으로 라인 강에 투신하기 몇 개월 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부탁을 받고 곡을 썼다. 그러나 요아힘은 슈만 면전에서는 말을 아꼈으나 그의 아내 클라라에게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로서는 끔직한 악절이 많다고 했는데, 자기 기술로는 연주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결국 곡은 작곡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고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의 합의하에 슈만의 악보집 편집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악보는 요아힘이 베를린의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에 넘겼는데 슈만 사후 100년, 즉 1956년 이전에는 연주도 출판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렇게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 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지 요아힘의 두 조카손녀 아딜라와 옐리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1933년, 이들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큰할아버지 요아힘의 혼령이 나타나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찾아서 연주해 달라고 했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도서관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슈만의 악보는 80여년 만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초연은 자매의 ‘의도’와는 달리 나치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크 쿨렌캄프의 몫이 되었다. 1937년 11월 쿨렌캄프는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이 곡을 초연하고 한 달 뒤에는 텔덱 레이블의 전신인 텔레풍켄에서 녹음도 했다. 나치는 유대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 금지시키고 ‘게르만 혈통의 적자’ 슈만의 곡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생전에 절친했던 두 사람은 백년 뒤 나치 정권에 의해 적이 되었다.
현악합주로 시작하는 2악장은 꿈결처럼 아름답다. 슬며시 올라 타는 바이올린 독주는 자장가다. 불면에 시달린 작곡가가 스스로를 잠재우는 듯하다. 천사가 들려주는 멜로디를 받아 쓴 음악이라고 슈만이 이야기한 선율이다. 2악장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3악장은 희망을 노래한다. 활은 현을 바삐 미끄러지며 약동하는 선율을 빚어낸다. 작곡 전 해인 1852년의 일기에는 ‘나의 힘의 슬픈 고갈’ ‘단념’같은 체념의 어휘가 등장한다. 자아분열에 시달리던 천재가 잠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작곡에 몰두한 결과가 이 협주곡인 셈이다.
오디오 고수의 일갈 탓에 무관심의 장막 뒤편에 있던 슈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들을수록 좋고 ‘나비’에서 시작한 피아노곡 탐사는 ‘판타지 Op. 17’, ‘카니발 Op. 9’로 이어졌다. 슈만은 ‘불가원’이 되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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