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브와 표절 사이' 韓영화 표절 논란 10년, 그 애매한 경계
올해 첫 '천만 영화'를 향해 달리고 있는 '암살'(감독 최동훈)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일 소설가 최종림은 영화 '암살'의 줄거리, 플롯 구성 등이 자신의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와 100% 같다고 주장하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제작사, 감독, 각본 집필자 등을 형사 고발하는 한편, 1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제작사 케이퍼필름은 5일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표절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며 "형사 소송으로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다"고 맞섰다.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표절과 관련된 문제제기들은 왕왕 있어왔다. 국내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해외 저작물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등 그 대상은 국내외 저작들을 망라했다.
영화 제작사와 연출자들은 의혹에 대해 '모티브(창작 동기가 되는 중심 제재나 생각)'와 '장르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반박해왔다.
이에 최근 10년간 영화계에서 제기된 표절 논란들을 정리했다.
'범죄의 재구성', 쌍둥이와 한국은행 털기 모티브
현재 '암살'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최동훈 감독은 앞서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도 홍역을 치렀다. 영화 개봉을 앞둔 2004년 3월, 박청호 작가는 '범죄의 재구성'이 자신의 소설 '갱스터즈 파라다이스'의 모티프 및 표현상의 특징과 기법 등을 그대로 도용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지방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과 저작권 침해와 관련한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박 작가는 "쌍둥이와 한국은행 털기 등 소설의 모티브 및 표현상의 특징과 기법 등을 그대로 도용했다"며 "해당 소설은 이미 연극화돼 무대에 올려졌고, 영화계 인사들로부터도 여러 차례 영화화 제의를 받은 바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쌍둥이와 한국은행이라는 모티브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용돼 왔기에 박 작가의 독창적인 창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두 작품의 차이를 인정해 박 작가 측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왕의 남자',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2005년 연말 개봉한 천만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도 표절 의혹을 받았다. 이듬해 2월 윤영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는 극 중 공길과 장생이 나눈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대사를 문제 삼았다. 그는 해당 대사가 자신의 희곡 '키스' 초반부에서 주인공 남녀가 주고받는 대사와 동일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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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대사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창작성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며 "시 등 다른 작품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최종병기 활', 낯익음과 표절 사이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2011)도 표절 의혹을 받았다. 당시 '최종병기 활'은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을 배경으로 한 멜 깁슨의 연출작 '아포칼립토'(2006)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제가 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의 추격전 부분이었다. 누리꾼들은 적장의 가족을 살해하면서 시작되는 추격전이라는 점, 도망자가 중간에 적의 화살에 맞아 부상당하는 점, 추격전 과정에서 도망자가 추격자를 살해하는 점, 각각 호랑이와 흑표범이 나타나 추격자를 살해한다는 점, 길이 막혀 폭포와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점 등을 꼽았다.
당시 김한민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관심 겸 유명세로 수용한다면서 "'아포칼립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추격전의 원형으로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포칼립토' 뿐만 아니라 '라스트 모히칸'(1992), '도망자'(1993),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 등과 할리우드 서부극,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표절에 대해서는 "이러한 이야기의 원형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서 "'최종병기 활'에는 추격전과 저격이라는 낮익음과 활과 병자호란이라는 낯설음이 함께 자리한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광해', '왕자와 거지'의 대역 모티브
또 다른 천만 영화 '광해'(감독 추창민)는 케빈 클라인 주연의 '데이브'(1993)와 유사해 논란이 됐다. '광해'는 일찍부터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1881)의 대역 모티브를 기본으로 제작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광해'와 '데이브'가 기본적인 설정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간의 관계 등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광해'는 독살 위기에 놓인 왕 광해(이병헌)를 대신해 왕 노릇을 하게 된 천민 하선(이병헌)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데이브'는 미국 대통령이 혼외정사 중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대통령을 닮은 직장인을 대역으로 세우는 내용이다.
두 영화는 각각 왕과 대통령이 혼수상태에 빠진다는 점과 허균과 비서실장이 왕의 대역을 만드는 일을 꾸믿나는 점, '광해'에서 왕과 중전 사이가 좋지 않듯,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의 사이가 좋지 않은 점, 대역으로 세워진 인물에게 목숨을 거는 호위무사와 보디가드의 존재, 백성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는 주제 등이 유사하다고 지적됐다.
당시 '광해' 측은 두 작품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왕자와 거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표절을 일축했다.
- 요약
- 드라마, 시대극 한국 131분 개봉 2012-09-13 15세 이상 관람가
- 줄거리
-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광해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더보기
'베를린', 장르적 특성?
류승완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베를린'(2012)은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동명의 소설 '차일드44'와 유사성이 지적됐다.
해당 논란은 국내 번역 출판된 '차일드44'의 번역가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번역가는 영화 초반 표종성(하정우)이 아내 련정희(전지현)를 의심하는 장면이 '차일드44'에서 소련 국가안보국 요원 레오가 아내 라이사를 의심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내를 의심하게 된 이유와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지하철 미행-집안 수색-아내 임신), 이를 밝혀내는데 주어진 2일이라는 시간, 이것이 요원의 충성심에 대한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점 등이 유사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당시 제작사와 류승완 감독 측은 소련과 북한이라는 국가의 공통점과 첩보액션이라는 장르 특성에 기인한 유사성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영화와 관련된 표절 의혹이 잊을만하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장르가 같다면 어느 정도 소재나 주제가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는 창작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편 반대로 의혹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도 책임감 있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는 창작자의 자유로운 창작의지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혹을 제기할 경우 이에 대한 타당한 논리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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