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십니까

소한마리-화절령- 2015. 11. 7. 09:59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십니까
최기숙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

  일상, 평화의 감각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수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바쁜 이유가 나 자신이나 가족 때문이 아니라 대의적이고 공공적인 것일수록 그로 인해 발생하거나 파생되는 폐해를 조심하는 대신, 양해를 구하려는 마음이 먼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자꾸 쌓이다 보면 일상은 점점 난폭해진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양해를 바랄 뿐, 먼저 배려하는 습관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적 평화의 감각에 대해 성찰하고 훈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 폭발
  요즘 들어 흔치 않게 감정 폭발과 관련된 사건, 사고를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해 개탄하고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한 번쯤(감정 폭발의 당사자로서든, 아니면 피해자로서든 간에), 이에 관한 이상한 경험, 겸연쩍고 부끄러운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폭발은 그저 남의 얘기나 소문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 그리고 나 자신의 문제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감정을 단지 개인 수양의 문제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의 인지, 소통, 교감, 향유, 해소, 통제, 억압 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감정을 느끼고 나누며 다스리는 것이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인격의 문제만이 아니며,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나 환경, 사회적 맥락, 위계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부하가 상사에게, 피고용자가 고용자에게, 을이 갑에게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불만을 토로하기는 매우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하다.

  감정 폭발이 발생하는 경위를 살펴보면, 폭발할 정도의 질량에 해당하는 감정을 묵묵히 쌓아놓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이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엉뚱하게도 아주 사소한 자극에 터져버리고 만다.. 바로 이런 경위 때문에, 감정 폭발의 피해자는 ‘운이 없는’, ‘재수 없이 걸려든’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정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최근의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감정표현의 억압과 소통을 개인의 문제로 위임하거나 방관해 온 사회 전체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한다
순간순간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폭발할 경우, 그것은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가해자가 피해자나 목격자의 신고로 체포되어 벌을 받는다거나 비난받고, 망신을 당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폭발된 감정이 화산재처럼 쏟아질 때, 그 검고 뾰족한 감정의 잔해가 마치 누워서 뱉은 침과 같이, 나 자신에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의 일그러진 표정이 몸에 아로새겨졌을 때, 그 사람은 지울 수 없는 신체 감각의 주인이 되었다는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을 지시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런 분별심이 없는 사람에 대해 요즘은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자각한 바 있다. 뉴스나 신문의 사건 사고란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바로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감정, ‘통제’에서 ‘돌봄’으로
감정은 이제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으로 자리바꿈해야 한다(2008년에 출간된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는데, 과연 독서가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매일 삼시세끼를 먹듯이 필요한 독서도 정기적으로 해서 마음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공부가 직업인 사람은 그런 정도 이상의 독서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니 읽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독서 교육이 이제 지식 교육에서 실천과 행의 문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학교(대학)-교육-사회-문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공회전한다는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감정의 주체인 개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감정을 통제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상황에도 해당한다. 모두가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소통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공감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당위적 명분만 있을 뿐, 구체적인 노하우가 없는 것이다.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또한 구체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떻게 그 답을 이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방비한 셈이다.

  조선후기 문인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도상으로 그린 ‘심도(心圖)’와 ‘치심팔락도(治心八樂圖)’에서 인내(忍), 맑게 함(淸), 평화를 지킴(平), 자세히 살핌(審), 수렴함(斂), 안정시킴(定), 너그럽게 받아들임(寬), 절제(節) 등 여덟 가지 덕목을 제안했다(?順菴集?, 「性情」). 일상의 뇌관처럼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감정 폭발을 다스리는 데도 참조가 될 만하다. 나아가 선인들이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감정 관리에 대해 고민했던 바와 같이, 감정의 돌봄에 대한 구체적인 노하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조선시대 수양론에 따라 치심(治心)의 논리에는 개인적 차원만 고려되었기 때문에, 이를 현대적으로 활용하려면 감정 관리의 사회적 노하우에 대한 응용기획도 필요하다.

  돌봄의 행위 속에서 평화의 감각을 사수하라
  일상의 모든 사안들은 서로 미세하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쁘게 하루하루 살면서 대의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한, 타인과 그 삶, 시간, 심지어 감정까지도 통제하며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발상과 행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정복자나 승리자,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오만의 피해자이자 자만의 패배자, 또한 몰락하며 멸망하는 자라는 것을 이해하는 때가 너무 늦지 않아야, 우리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명멸하듯 반짝이는 ‘희망’의 채광자가 되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감각은 결코 스스로의 안전만을 생각해서는 익혀지지도, 실현될 수도 없다는 것을, 평화로운 바로 그 순간에 지키고 돌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려나 돌봄의 행위는 처음에 조금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그 행위를 나만 하고 있다는 박탈감이나 고독감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이 배려나 돌봄을 익힌 사람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감각과 문화를 길러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드러난 형상이 전부가 아니라 온축된 기운, 내면을 읽는 인지적이고 감성적인 감각을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조금 거리는 있지만, 최근에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인용해 본다.: ‘저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인상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보는 쪽이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 그러니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합니다.’:『어른이 된다는 것』,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15, 66~67쪽. 물론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이런 인상 감각이 완전히 무너지지만.)

  배려와 돌봄이 사회적인 감각으로 번져가고 일종의 문화로서 형성되려면, 누군가 먼저 그것을 행해야 한다. 먼저 행하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모두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선한 기대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명한 이치다. 하나의 씨앗을 심지 않고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나는 니힐리스트다’라는 발언, 또는 스스로 ‘쿨하다’고 말하며 거리를 두려는 태도)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람의 문화는 물질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다는 앎을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모른 척했을 때의 경험이 이미 우리에게는 짙고 뜨거운 상처가 되어 남지 않았나.).

  보이지 않게 시작된 감정의 억압이 쌓이고 쌓여 화산처럼 폭발하는 게 우연이 아니듯, 배려와 돌봄의 결과도 그 반대의 장력으로, 폭포수 같은 활력이 되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씻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단지 희망의 판타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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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기숙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 (한국문학 전공)
·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예술교육 및 멘토
· 저서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한국고소설의 주인공론〉 (공저) 보고사, 2014
〈제국신문과 근대〉 (공저) 현실문화, 2014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 열린어린이,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책세상,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