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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정부 지원 끊긴 서울국제음악제를 널리 알려라. 쉿, 비밀지령이 떨어졌다

소한마리-화절령- 2016. 5. 10. 22:38

미션 : 정부 지원 끊긴 서울국제음악제를 널리 알려라.

쉿, 비밀지령이 떨어졌다

한겨레 | 입력 2016.05.10. 20:36

[한겨레]‘비밀요원’ 100명 안팎 자원봉사자
전단 배포하고 공연글 퍼나르고…
재정난에도 성공 개최 홍보 나서

무산 위기 딛고 27일부터 막 올라
지휘자 구자범, 3년만에 복귀무대

“미션 임파서블! 정부 지원이 끊긴 제8회 서울국제음악제(SIMF)를 널리 알려라!”

지금 ‘서울국제음악제 비밀요원’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사무국에서 핸드폰으로 ‘비밀지령’을 보내면 수신양호를 외치며 미션을 수행한다. 대전, 강원, 서울에서부터 외국까지 ‘은밀하게 위대하게’ 활동중이다. 발랄하게 비밀요원을 ‘사칭’했지만, 실제로는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100명 안팎이 벌이는 ‘즐거운 홍보놀이’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조지 리, 지휘자 구자범 등의 공연 소식을 널리 퍼나른다. 친구나 지인에게 ‘좋아요’ 누르기를 ‘귀엽게 강요’한다. 물론 전단을 배포하거나 회사·학교 게시판에 글도 올린다. ‘미션 임파서블’은 올해 음악제의 주제로 최고의 연주 난이도에 도전한다는 뜻이지만,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해 서울국제음악제를 성공시키자는 뜻도 된다.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지 리, 지휘자 구자범.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지 리, 지휘자 구자범.

비밀요원들이 자발적 홍보에 나서기까지 사연은 좀 설명이 필요하다. 이 음악제의 예술감독은 류재준(46) 작곡가다. 지난해에는 폴란드 정부가 주는 1급 문화훈장을 받을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진혼 교향곡’은 2008년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이 세계 초연해 호평을 받았고, 영국 로열필하모닉이 연주한 ‘첼로 협주곡’과 ‘마림바 협주곡’은 곧 음반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가 맡은 서울국제음악제는 지난 3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행사 지원사업 공모 심사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탈락했다. 류 작곡가는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예술위에 반발했다. 8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국제음악제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음악계 안팎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올해 음악제는 무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달 27일~6월3일 예정대로 막을 올린다. 뒤늦게 개최가 확정되면서, 서울국제음악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몰라서 음악제에 불참하는 경우는 없게 하자”는 비밀요원의 필요성이 생겼다.

비밀요원들은 온-오프라인에서 홍보활동을 벌이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티켓을 사서 선물하고 동호회 가입자들은 단체참여를 독려한다. 한 익명의 남성은 서울국제음악제 쪽에 전화를 걸어 후원계좌를 물었다. 후원금을 입금한 그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후원이유는 첫째 5월28일 연주프로그램에 대한 지대한 관심. 둘째, 구자범 지휘자님 환영합니다. 세째, 류재준 작곡가님 절필하지 마세요. 네째, 한국음악계가 더 나아지길 바라며 음악제 화이팅!”

특히 이번 음악제에서는 구자범 지휘자의 복귀가 눈에 띈다. 성희롱 누명을 쓰고 음악계를 떠난 지 3년 만에 전문 연주자 오케스트라 앞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지난해 말 모교 동문 합창단을 지휘했지만, 정식 연주회 지휘는 2013년 5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단장에서 사퇴한 뒤 처음이다. 서울국제음악제를 위해 자원한 연주자들로 구성된 ‘SIMF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이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는 말러와 어깨를 견주는 후기 낭만주의의 절정인 랑고르의 교향곡 1번 ‘벼랑 위의 목가’를 국내초연하고, 초고난도 기교가 필요한 류재준의 신작 ‘파가니니 판타지’를 세계초연한다. 구자범이 추천한 ‘벼랑의 목가’는 100명이 넘는 대편성에 한 시간이 넘는 대곡으로, 작품명처럼 벼랑 끝에서 울려 퍼지는 희망의 교향악이다. 벼랑 끝에 몰렸던 구자범과 류재준을 위한 곡으로도 보인다.

27일 개막 연주회는 지난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조지 리의 독주회다. 6월1일에는 스웨덴 ‘예블레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 3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알텐부르거, 피아니스트 김정원, 첼리스트 김민지가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삼중주를 연주한다. 1544-5142.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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