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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히스토리](1) 별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다

소한마리-화절령- 2016. 10. 9. 09:16

[리틀 빅히스토리](1) 별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다

김서형 조지형 빅히스토리 협동조합 이사장

ㆍ초신성 폭발과 다양한 원소
ㆍ세상 모든 것의 역사, ‘철’은 알고 있다

1604년 관측된 케플러 초신성. 인간의 육안으로 관측된 마지막 초신성으로 선조실록에도 위치, 크기, 색상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604년 관측된 케플러 초신성. 인간의 육안으로 관측된 마지막 초신성으로 선조실록에도 위치, 크기, 색상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별은 빛을 내기 위해 가장 마지막 원소로 ‘철’을 사용한다. 점점 더 커지고 밝아지다가 태양보다 10배 이상 커진 별들은 어느 순간 폭발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폭발할 때 우주로 흩어졌던 원소들이 다시 뭉쳐 새로운 별을 만든다. 이렇게 별이 탄생하고 폭발하면서 우주는 더욱 복잡해졌다.

‘선조실록’

‘선조실록’

“밤 1경(更)에 객성(客星)이 미수(尾宿) 10도의 위치에 있었는데, 북극성과는 1백 10도의 위치였다. 형체는 세성(歲星)보다 작고 황적색이었으며 동요하였다.” 선조 37년 9월21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에 따라 기술한 책이다. 이 가운데 ‘선조실록’에 유난히 객성과 관련된 기록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총 323개의 기록 중에서 137개가 바로 선조 37년에 나타난 객성에 관한 것이다. 주로 객성이 나타난 시간과 위치, 크기나 모양, 그리고 색상 등을 기록하고 있다.

객성은 일정한 위치에 있지 않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을 의미한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이를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이라 부른다. 138억년 전에 탄생한 우주는 매우 균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천분의 1도라는 아주 미세한 온도 차이가 발생했고, 우주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약간 더 뜨거워졌다. 이 부분에 중력의 힘이 좀 더 많이 작용하면서 물질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별이 탄생했다. 별의 탄생은 우주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별 탄생 이전의 우주는 차갑고 어두웠지만, 탄생 이후 우주는 점점 더 밝아졌다.


크기와 질량에 따라 별은 서로 다른 원소들을 이용해 빛을 낸다. 질량이 작은 별은 수소를 사용하여 빛을 내지만, 질량이 큰 별은 수소보다 무거운 원소를 사용한다. 별이 빛을 내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사용하는 원소가 바로 철(Fe)이다. 태양보다 10배 이상 큰 별들은 철을 다 사용하면 폭발한다. 1934년 미국의 천문학자인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이 같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태양보다 30배 정도 큰 별인 중성자별을 설명하면서 ‘초신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초신성은 중심부에 철이 가득한 굉장히 큰 별이 붕괴하면서 폭발하는 현상을 의미했다.


1604년 선조 37년 9월에 나타났던 객성도 초신성이다. 이 초신성은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궤도를 돈다는 ‘케플러의 법칙’을 제시했던 17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때문에 유명해졌다. 케플러는 <뱀주인자리의 발 부분에 있는 신성>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1604년에 관찰된 초신성에 대해 1년 이상 연구했다. 그래서 이 초신성을 ‘케플러 초신성’이라 부른다. 17세기 유럽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우주관과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근대 과학이 시작된 시기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유럽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선조실록>은 케플러가 관측을 시작한 1604년 10월17일보다 앞선 10월13일부터 객성에 대해 기록함으로써 케플러의 연구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으며, 객성의 위치나 크기, 색상 등의 상세한 기록은 오늘날 이 초신성의 종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선왕조실록>의 객성 기록 역시 근대과학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신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604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초신성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한(前漢)시대 갑자기 나타나 8개월 동안 관측되었던 객성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이전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초신성은 기존의 우주관이나 천문학적 질서에 어긋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프로-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에선 반란이나 전쟁, 질병 등 사회적 동요나 변화를 야기하는 전조로 이해되곤 했다. 초신성에 대한 이 같은 해석은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슬람의 의사였던 이븐 부틀란(Ibn Butlan)은 1054년에 갑자기 나타난 초신성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해 가을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약 1만4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1054년 초신성 폭발 잔여물로 구성된 게자리 성운. 이 초신성은 지구 전역에서 관측되었다.

1054년 초신성 폭발 잔여물로 구성된 게자리 성운. 이 초신성은 지구 전역에서 관측되었다.


1054년에 나타났던 초신성은 사실 전 지구적으로 관측되었다. 이슬람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송사천문지>는 붉은빛이 도는 백색의 별이 1년 이상 태양이나 달처럼 밝게 빛났다고 적고 있다. 일본에서도 고레이제이(後冷泉) 2년 음력 4월에 동쪽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났는데, 목성과 비슷한 크기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1054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관측하고 그린 초신성 동굴벽화.

1054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관측하고 그린 초신성 동굴벽화.


아메리카 원주민도 1054년 초신성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다만 이들은 문자로 기록했던 다른 지역들과 달리 그림으로 초신성을 묘사했다. 1955년 미국 애리조나 북쪽 지역에서 초승달과 별을 그린 2개의 동굴 벽화가 발견되었다. 팔로마 관측대의 사진작가였던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이 지역의 원주민들이 초신성을 관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천문학자들은 1054년 7월5일경 초신성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별자리의 아버지’ 티코 브라헤(왼쪽)와 초신성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프리츠 츠비키.

‘별자리의 아버지’ 티코 브라헤(왼쪽)와 초신성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프리츠 츠비키.


역사적으로 기록된 또 다른 초신성으로 1572년의 초신성을 들 수 있다. 이 초신성을 관측한 사람은 별자리의 아버지인 티코 브라헤(Tycho Brahe)다. 그는 망원경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에 누구보다도 정밀한 관측을 통해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천문학자다. 유럽인들은 16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신봉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계는 흙과 공기, 물, 불의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천상계는 에테르라는 완벽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천상계는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나는 초신성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브라헤는 1572년 11월에 나타난 초신성을 자세히 관측하면서 거의 2000년 동안 유럽인들을 지배했던 우주관을 흔들어 놓았다. 이후 케플러나 갈릴레이 등의 관측과 실험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우주관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육안으로 관측된 마지막 초신성은 1604년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이보다 훨씬 이전에 나타났던 초신성을 관측한다. 가장 최근에 관측된 초신성은 약 200만년 전 것이다. 과학자들은 태평양과 인도양, 그리고 대서양의 해저 흙에 존재하는 철의 동위원소인 ‘철-60(60 Fe)’의 연대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백만년 전에 ‘철-60’이 우주 먼지들과 함께 지구에 쌓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철-60’은 초신성이 폭발할 때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에선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지구에서 발견되는 ‘철-60’은 지난 수백만년 동안 태양계 주변에서 폭발했던 초신성의 흔적이다. 이는 다른 원소들과 함께 지구라는 행성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138억년이라는 우주 역사에서 초신성이 중요한 이유는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별이 탄생한 이후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존재했다. 이 원소들은 아직도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98%를 차지한다. 초신성 폭발로 인해 우주 전체로 확산된 철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나머지 원소들은 모두 합쳐봐야 2%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2%밖에 안 되는 다양한 원소들로 인해 우주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초신성 폭발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초신성 폭발은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했다는 인류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 다양한 원소를 제공했다는 우주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철이다.

수소나 헬륨,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을 사용하면서 별은 점점 더 커지고 밝아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발한다. 별에게 이와 같은 폭발은 결코 죽음이나 소멸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 점차 감소하면서 크기가 줄어들고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폭발을 하더라도 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별을 구성했던 다양한 원소들이 우주 전체로 흩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뭉쳐서 새로운 별을 만들기 때문이다. 별의 죽음은 이처럼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탄생이다. 그리고 이 같은 탄생 과정에서 다시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차갑고 어두운 우주에서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 바로 초신성 폭발이다. 질량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의 별들이 탄생했고, 그 별들은 빛을 내기 위해 다양한 물질을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일생을 살다가 죽게 된다.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큰 별은 결국 폭발한다. 이렇게 별이 탄생하고 폭발하면서 우주는 좀 더 복잡해졌다. 다시 말해, 초신성 폭발과 더불어 다양한 원소들이 만들어지면서 우주에는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변화들이 생겼고, 이 변화들은 다시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류에게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중심부가 철로 가득한 초신성 폭발이 빅히스토리에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서형


[리틀 빅히스토리](1) 별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조지형 빅히스토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로 대학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는 빅히스토리 교양과목을 강의했다. <거대사: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 <왜 유럽인가: 세계의 중심이 된 근대유럽>(공역) 등의 번역서와 <농경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92053005&code=610101#csidxdd83931bffc21db9d7f4c01253e3c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