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금요 칼럼 -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소한마리-화절령- 2016. 10. 16. 08:33

금요 칼럼 -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김재룡 (화천고)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 네 시 반경이다. 새벽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가슴을 뜨끔거리게 만든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체전고’의 박펜타슬론 선생이다. 내 휴대폰 그룹별 전화부에 ‘봄봄체전고’는 고전적인 전자음인 ‘따르릉’이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박 선생 웬일이야.
“형님이세요. 서울이세요?”
이 친구는 내가 ‘체전고’에서 봄내여고로 전출 한 후, 이사를 끝낸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봄내에 있다고 하며, 어디냐고 묻자, 다행이라고 하며 이야기 한다.
“지금 남부지구대에 와 있습니다. 형님네 학교 펜싱부 두 명하고, 농구부 한 명, 우리학교 아이들 두 명이 잡혀와 있어요.”
금방 사태가 파악된다. 지난 주 일요일 일이 터지고, 겨우 수습되고 있는 중인데 또 일이 벌어졌구나.  
“지금 갈 게”
“오시게요”
“그럼, 가봐야지”
“남부지구대가 어디더라. 애막골에서 넘어가면 석사사거리에서 교대 쪽으로 좌회전하는 모퉁이 맞지?”
그렇죠. 알았어, 갈게. 주섬주섬 일어설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근심을 한다. 이 신 새벽에 무슨 일이냐고,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큰길로 들어서고 주황색 등이 반짝거리는 사거리에 들어서도 차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에스마트’ 고갯길에는 번개시장 노점상 몇몇이 좌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다섯 시가 넘었군.
골목길로 접어들어 파출소 옆으로 차를 대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무조건 인사부터 한다. 안녕하십니까. 바로 왼 쪽 옆으로 작은 체구의 박펜타슬론 선생과 대조적으로 거구의 이레슬링 코치가 보인다. 아이들을 찾으니, 한쪽 구석에 사내아이 둘과 계집아이 셋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상황설명을 듣기 전에 아이들부터 살핀다. 펜싱부 봄섭섭이와 봄이슬이는 핫팬티 차림에 반팔 티셔츠다. 농구부 아이에게 이름을 묻는다. 봄서운. 그래 네가 서운이였구나. 농구부 아이가 펜싱부 아이들 보다 머리 하나는 작다. 얘들아, 고개 들어 선생님 좀 봐. 모두 겁에 질려있다. 시선을 돌려 남자 아이들을 살핀다. 레슬링 선수인 봄굳센, 육상부 봄빠름이다. 두 녀석 모두 겁먹기는 마찬가지다. 섭섭이와 이슬이가 빠름이의 BRAZIL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노란색 츄리닝 상의를 덮어 드러난 허벅지와 무릎을 가리고 있다. 섭섭이와 이슬이의 안색을 다시 살핀다. 이슬이에게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다시 만져본다. 며칠 전 엄마가 휘두르는 각목을 막다가 얻어맞아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이다.
박선생, 이코치와 함께 커피를 한 잔씩 빼들고 나가 상황설명을 듣는다. 오밤중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고, 일을 저지른 아이들 때문에 경찰들을 상대하는 일들은 흔하고 익숙한 일이 되어버린 ‘체전고’의 교사와 코치들. 박선생은 사감근무 중이었을 터이고, 이코치는 자다가 연락을 받고 나왔겠지.

‘체전고’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운동선수 아이들에게 ‘정기 외박’을 준다. 월요일에 어린이날이 낀, 주말에 애들을 기숙사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시합을 앞 둔 몇 종목의 아이들이 남아있었을 것이고, 사감 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중 굳센이는 집이 정선이란다. 굳센이는 집에 가지 않고 집이 봄내시에 집이 있는 빠름이와 지내기로 한 것이다. 정기 외박을 준다고 해도 집이 먼 애들은 집에 가지 못하고, 코치와 지내거나 친구들에게 ‘빌붙기’를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열두시가 조금 넘어 빠름이와 굳센이가 오토바이를 갖고 와선 서로 연락을 해 섭섭이와 이슬이, 그리고 서운이를 만난 것이다. 새벽 한시에서 두시 사이로 추정되었다. 아이들은 2학년인 섭섭이를 빼곤 모두 1학년들이다. 사내아이들은 오토바이를 선배가 빌려줬다고 했지만, 오토바이를 잃고(도둑맞음 혹은 도난당했다 생각하는) 밤새 찾아다니던 주인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굳센이와 빠름이는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태우고 신나게 돌아다녔겠지. 여자 아이들이 셋을 한꺼번에 다 태우고 돌아치지는 못할 것이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지키기만 하면 잡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곧바로 경찰에 연락이 되었고, 아이들은 현행범으로 순찰차에 태워졌던 것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가 선처를 부탁한다고 해도 이미 사건 접수가 되었기 때문에 파출소에서는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다. 그네들도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 존재이유인 ‘업무처리’를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박선생과 이코치에게 대략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시 아이들을 살핀다. 잔뜩 긴장해 있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따뜻한 눈빛을 보내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서도 슬금슬금 장난기가 발동하기까지 한다. 부스스한 계집아이들. 으이구. 핀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 이슬이를 보며 말한다.
“이누무 지지배. 눈꼽 떨어져 발등 깨겠다.”
계집아이 셋이 일제히 눈을 비빈다. 담당 경찰관을 찾아 인사한다. 제가 봄내여고 체육선생입니다. 엉거주춤 인사를 받는 경찰관. 죄송합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무조건 저자세로, 선처를 호소해야 하고, 가능하면 동류의식을 불러일으켜 측은지심을 발동시켜야 한다.
“여자 애들은 ‘신병인수서’ 받고 선생님께 넘기지 뭐.”
담당 결찰관이 묻지도 않았는데, 분위기가 파악된 경찰관 한 명이 저쪽에서 이야기한다. ‘담당’이 일어서더니 현관 밖으로 나가잔다. 그리곤 곧바로
“선생님 오셨으니깐, 여자애들은 큰 문제가 없는 거 같으니까, 이 애들은 선생님이 데려가시죠 뭐. 참 큰일이네요. 열 두 시가 넘어 이렇게 여학생들이 돌아다니니 원.”
결국 그렇게 진행될 일이었다. 오토바이 주인도 서서히 일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다행이었다. 봄봄대학교 대학원생이란다. 젊은 친구가 좋아 보였다. 여자 친구인지 집사람인지 함께 와 있었다. 그들이 이미 아이들을 처벌하기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경찰들에게 밝힌 뒤였다. 재차 그들에게 선처를 부탁했다. 오히려 그들이 미안해하며 뒤돌아서고 있었다.
아이들을 불러내어 차에 태운다. 이슬이가 츄리닝을 걸치고 있다가 그대로 갖고 나온다. ‘이누무 지지배, 빠름이거래메. 그 츄리닝 빨랑  갖다주고 와!’ 소리치곤 박선생, 이코치와 함께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시간을 갖는다. 조사가 아직 덜 끝나 사내아이들 두 명이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먼저 가야한다.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다. 그렇지만 결국 달라진 것도 없는 것이다. ‘언제 한 잔 하자’라는 말을 뒤로 하고 시동을 걸어 출발하며 차창을 닫는다.

큰 길로 나오니, 섭섭이가 묻는다.
“선생님,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글쎄, 어디로 가야 할까. 이누무 지지배야, 어디로 가긴 어디로 가. 너네들 집에 안가? 선생님이 집에 데려다 줄게.”
아이들 표정이 많이 풀어져 있다. 이슬이가 춥다고 한다. 5월 초순의 따듯한 날씨지만 새벽 찬기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금방 섭섭이와 이슬이네 집 근방을 지나친다. 어쨌거나 서운이를 먼저 들여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운이가 사는 곳이 약사리 고개 근방이란다. 새벽길을 달렸다. 고갯길로 접어들어 시장통을 지나자 바로였다. 시동을 끄지 않고 내려, 운전석 뒷문으로 서운이를 내리게 한다. 서운이가 살고 있다는 곳을 가리켰다. ‘저 계단으로 올라가서 이층이예요’ 건너편에서 살폈는데 이상했다. 썬팅을 한 간판 글씨들. ‘24시 주막’.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물었다. ‘24시 주막? 저건 뭐니?’ 그랬다. 먼저 살던, 그렇게 장사하던 사람들이 그냥 두고 간 것이란다.
“누구랑 살고 있니?”
“할머니랑요.”
“할머니 연세는?”
“올 해 칠십 구....팔십이시래요”
서운이를 앞세워 계단을 올라간다. 올라서자마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맞닿아, 니스칠을 한 목재 현관문 셋이 거의 마주보고 있다. 서운이가 산다는 문 옆에 작은 도시락 가방 두 개가 놓여있다.
“저건 뭐지, 도시락이구나. 누가 갖다 주니?”
“모르겠어요. 매일 누가 저렇게 놓아주세요.”
“아버지는?”
“어디계신지 연락이 안돼요.”
“어머니는?”
“돌아 가셨대요?”
“......”
서운이가 손잡이를 돌리는데 문이 잠겨 있다. ‘어떡할거니?’라고 묻자, 두드리면 할머니가 열어 주실거란다. 그리곤 서운이가 문을 두드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린다.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서운이 할머니가 거의 기어 나오듯이 문을 열어준다. ‘선생님 잠깐만요’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 어수선한 방으로 서운이가 튀어들어 가며 방문을 닫는다. 겨우 들여다 볼 수 있게 손잡이를 잡고 어둠 속 할머니에게 겨우 말한다.
“할머니, 선생님이예요. 서운이, 학교 선생님이예요. 아무 일도 아니니 걱정마셔여. 할머니 그만 들어가세요.”
문을 닫고 돌아선다. 등 뒤에 서운이 할머니의 쉰 목소리가 달라붙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서운이를 들여보내 놓고 계단을 내려와서도 한참을 두 아이가 앉아 있는 차로 돌아오지 못했다. 기가 막혔다. 그렇구나. 이렇게 살고 있는 아이들이 이 땅에 어디 한 둘 이겠는가만,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의 삶이, 그것도 운동선수 아이의 모습이 이 날 새벽, 내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 진 것이다.
다시 두 아이의 집으로 향한다. 섭섭이가 이슬이네 집에 가서 자다가 함께 나온 거란다. 가서 뭐할거니. 자야죠. 밥 먹으러 갈까. 안 넘어갈 거 같애요. 선생님 배고픈데. 그래도 안넘어갈 거 같애요. 그래 맞다. 너희들한테 지금 필요한 것은 잠이겠지.
낡은 5층짜리 아파트. 1동 302호. 저기요. 차를 세우자마자. 애들이 튀어 내린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불러 세운다. 짧은 반바지와 가슴이 푹 패인 반팔 티셔츠. 새벽 기운에 팔에는 소름이 돋아있다. 이거 봐. 이누무지지배들, 소름 돋은 거. 열쇠는 있니. 네. 보여줘 봐. 열쇠를 확인한다. 아이들에게 뭐 할 거냐고 묻는다. 두 시간 정도 자고 교회 가야 한단다. 그저께 금요일, 섭섭이 엄마랑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오늘 같이 교회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둘이 같이 간단다. 일단은 안심이다.  아이들을 들여보낸다.
“안녕히 가세요”
어제도, 그 전에도 늘 듣던 아이들의 목소리다. 그래 너희들이 먼저 들어가라. 아이들이 들어가고도 한참을 또 나는 어쩌지 못한다. 집에 다시 들어오니 거의 일곱 시가 되어간다. 오늘은 방통고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지난번 아버님 묘 이장을 하느라 한 번 빠져, 오전에 내리 네 시간 수업을 해야만 한다. 집 사람이 부스스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여보. 그냥, 물 많이 잡고 누룽지나 푹 끓여주셔. 봄날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