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스포츠를 그토록 사랑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세간의 풍자에 운율을 맞춰 말의 유희를 즐기는 게 아니다. 스포츠를 사랑하였고 그래서
그것에 담긴 쾌락의 비밀과 욕망의 정체를 알고자 하였고, 그래서 이 비틀리고 일그러진 한국 사회에서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왔는데,
지금처럼 무참하게 상심한 적은 없다.
최순실 때문이냐고? 일단은 그러하다. 들려오는 추문들은 승마와 빙상과 올림픽이 최순실과
정유라를 중점으로 하여 팽팽하게 돌아가는 총체적 비리인 듯 보인다.
차은택 때문이냐고? 그 점도 물론이다. 갑자기 스포츠 현장에
등장하여 뭐든 엮을 수 있을 것 같은 ‘융합’이라는 갈고리로 문화와 스포츠의 미래적 가치를 어두컴컴한 비리의 구덩이로 처넣어 버린 행각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도대체 늘품체조라니. 저 19세기 프로이센 시절 근대식 맨손체조를 개발한 프리드리히 얀으로부터 시작한 현대 체조의 역사를
한순간에 밀어내고 느닷없이 등장한 늘품체조가 청와대를 흔드는 기괴한 리듬을 탔을 때, 그 분야 전공자들은 얼마나 깊은 자괴감에
사로잡혔겠는가.
김종 때문이냐고? 진실로 그러하다. 교수 시절부터 스포츠 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냈던 그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라는, 어떤 점에서 보면 장관도 아닌 자리에서, 청와대와 청담동을 잇는 파이프라인의 핵심이 되어 학자 시절 주장했던 스포츠 콘텐츠
활성화 정책을 추문의 밀실에서 거래되는 추악한 목록으로 전락시켰다.
한편, 더욱 자괴감이 드는 것은 엘리트 스포츠의 한길로 매진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 오직 땀방울의 순수함을 믿으면서, 무서운 의지로 자기 극복을 해내고 숱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면서 금메달도 따고 국민적 스타가
되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과연 어떤 자괴감인가 하고 말이다. 거의 국가 이념 수준인
‘국위선양’의 아이콘이었던 그 많은 메달리스트와 스타들은 스포츠 현장과 그 산업이 권력에 줄을 댄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전혀 몰랐거나 못
본 체하지 않았는가, 나는 진실로 의심한다. 몰랐어도 문제고 모른 체했어도 문제다.
아니 오히려 더 야박하게 말한다면 차은택이며
김종이며 하는 사람들이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또한 그밖의 숱한 스포츠 이권사업에 끼어들어 무슨 신장개업한
음식점이 전단 돌리듯이 명함을 뿌리며 내 뒤에는 청와대도 있고 청담동도 있다는 식으로 위세를 부릴 때, 혹시라도 저 명함을 손에 넣어 아쉬운
대로 전화라도 한번 넣으면 뭐라도 일이 되지 않을까 하고 욕망의 구렁텅이에 몸을 던지고자 한 사람들은 없었느냐, 이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평생 운동만 해왔다는 게 훈장이 되거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무슨 공적 비리 사건이나 하다못해 개인 간의 사기
사건에 연루되기만 하면 ‘순수하게 운동만 해와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고들 말한다. 그렇게 읍소를 하고 면죄부를 구한다. 어떤 점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인지상정으로 보건대, 진실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만 해왔고, 그 성과로 메달을 따거나 스타가 되었을 때,
갑자기 등장한 사람들이 빳빳한 명함을 내밀면서 무슨 사업을 하자, 어디에 투자를 하자 하면 가벼이 셈을 하여 따라나섰다가 돈도 잃고 명예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고 진실로 운동만 해온 탓에 세상 물정에 어두워 큰 실수를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순수’하기만 할까. 시야를 확대하여, 스포츠와 정치 권력을 연결하고 스포츠와 기업 이권을 이어보면, 오히려 순수라는 가면을 쓰고
권력이나 금력과 이인삼각 플레이를 해온 사례가 드물지 않다. 지금의 최순실 사태와 연관하여 이름이 거론되는 몇몇 메달리스트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수십년 동안 정치 권력이나 기업 권력과 호형호제 하면서 스포츠 권력을 누려온 자들, 올림픽이니 아시안게임이니 거대한
스포츠 행사장 뒤에서 계산기를 두들겨온 자들, 복마전의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유무형의 실질 이권이나 상징 자본을 갈취해온
자들, 이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이라도 하면 ‘국위선양’ 운운하면서 무자비한 개발주의에 빨대를 꽂은 자들, 그러다가 무슨 사건이라도 터지면 ‘평생
운동만 해온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운동 선수 출신’이라는 낡고 닳은 이미지를 수많은 동료 후배들에게까지 덮어씌워 버리는
자들, 그런 자들의 손아귀에 체육 정책이 놀아나고 올림픽의 적자가 만성으로 불어나는 것을, 어찌 순수라는 말로 이해하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기는커녕 아주 오랜 세월 절묘한 처세로 정치 권력에 빌붙고 간교한 셈법으로 기업 금력에 묻어간 사람들이 무슨 염치로 세상 물정
몰랐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가. 진실로 그 점 때문에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이 글은 2016.11.7 경향신문에 실린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로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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