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에서 시작하는 폐광촌 기행

태백산 호랑이 아저씨

소한마리-화절령- 2016. 12. 14. 09:54
태백산 호랑이 아저씨




호랑이 아저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아저씨는 환경미화원입니다. 청소 일을 마치면 초등학교 앞 슈퍼에서 쉬셨습니다. 

여름에는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고 겨울에는 뜨거운 어묵 국물을 먹이셨습니다. 

아이들은 아저씨가 베푸신 친절을 기억합니다.


아저씨와 첫 만남은 십 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여름방학에 광활 선생님과 아이들 몇이 사진반을 꾸렸습니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사진을 가르쳐주실 어른을 찾았습니다. 

식당 아주머니께서 피내골에 사는 청소부 아저씨를 만나보라고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동네 아이들이 찾아가자 쑥스러워하면서도 반기셨습니다. 

아저씨가 찍은 옛날 철암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태백 골짜기마다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진반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저씨는 “나를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러라.”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호랑이 아저씨였습니다.


방학활동 수료식에 아저씨를 초대했습니다. 

수료식 전날 밤 아저씨가 전화하셨습니다. 피냇재 밑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아이들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젊을 때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네셨습니다. 


그 후로 아저씨는 아이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월급날 쌍안경을 사서 아이들과 시루봉에 갔습니다. 

“내가 철암초등학교 다녔다. 여기서 망원경으로 보면 너희들 수업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너 어제 벌섰지?”, “어떻게 알았어요? 맞아요. 호랑이 아저씨.” 


한여름에 물고기 잡으러 갈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반도 그물을 들고 철암천을 거슬러 오르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한 시간 만에 비닐포대 반이 찼습니다. 

어머니 두 분이 오셔서 물고기를 배를 따고 매운탕을 끓이셨습니다. 

아이들이 매운탕 그릇을 들고 피내골 이웃에게 나눴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부모님이 매운탕을 받으시며 “우리 아들이 바깥에서 좋은 일을 했네.”하며 웃으셨습니다. 


아저씨는 고기잡이가 참 좋았다며 뒤풀이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고기 몇 근 사서 매산골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돌구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실개천에서 물장구를 치고, 같이 간 동네 바보 형은 트로트 메들리를 불렀습니다. 

참 흥겨운 날이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는 산에 자주 가셨습니다. 

약초를 많이 알았고 가끔 산삼을 캐기도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산에서 얻은 약초를 값없이 나누셨습니다. 

우리 장인이 아프실 때 호랑이 아저씨가 산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깊은 산속에 가서 좋은 약초를 구해주셨습니다.


호랑이 아저씨는 아이들 마음을 잘 이해하셨습니다. 

가족이나 선생님이 어찌 하지 못하는 아이도 ‘한 때’라며 허허허 웃으셨습니다. 

한 사내아이의 사춘기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았습니다. 

성질이 나면 피내골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큰길에 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신발을 벗어서 강에 던지고 맨발로 집에 갔습니다. 

아저씨께 찾아가 아이 일을 말씀드렸더니 허허 웃으며 아이와 산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호랑이 아저씨와 아이는 산속에서 신이 났습니다. 

아이는 아저씨를 ‘호랑이 삼촌’이라고 불렀고, 아저씨는 아이한테 ‘조장군’이란 별명을 주었습?求?

호랑이 아저씨 덕에 동네 어른들도 조장군으로 불렀습니다. 아이는 장군처럼 의젓해졌습니다.


우리 곁에 언제나 계실 것 같던 호랑이 아저씨는 

2016년 12월에 청소 일을 하다가 제 몸처럼 여기시던 청소차에 받혀서 돌아가셨습니다. 

화장해서 아저씨가 자주 가시던 산골짜기 양지 바른 언덕에 뿌렸습니다. 


바람이 불면 호랑이 아저씨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벗 호랑이 아저씨가 그립습니다. 


태백산 호랑이 아저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