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감사 편지, 철암월령가 2016년 묵은해를 보내고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2016년 1월 26일. 영하 20도. 몹시 추운 날 재 밑에 사시는 할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 연탄보일러가 고장 나서 사흘 동안 냉골방에 지내셨답니다. 남사스러워 그냥 견디다가 뒷집 할머니를 앞세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온수매트를 깔았지만, 철물점이 문을 닫아 보일러 수리가 막막했습니다. 할머니와 이웃에 사는 김작가님께 부탁했더니 연장과 부품을 가져와서 뚝딱 고쳤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사는 작가님은 할머니 댁 전등까지 고쳐놓았습니다. 어머니 모시듯이. 2016년 2월 7일.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바다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큰 배를 모는 선장님으로 아들 이름을 바다라고 지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바다가 중국에 가서 사고 수습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참말 돌아가셨단 말인가?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서 아버지께 카톡을 보냈답니다. 언제든 바로 답장하시는 아버지신데 글을 읽지 않으신다고. '1'자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바다가 울었습니다. 2016년 3월 24일. 저녁에 동네 노총각 아저씨가 오셨습니다. 외롭게 사는 사람은 약속이 생기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합니다. '손꼽아 기다린다.' 그 말이 시처럼 들렸습니다. 손꼽아 기다려 본 날이 언제던가요? 이 말은 먼 옛날에 시인이 감추어 둔 문장이 아닐까요? 노총각 아저씨의 봄바람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2016년 4월 19일. 김작가 아저씨와 피냇재에 올라 좋은 싸리나무를 골랐습니다. 철암중학교에서 원주로 전근 가신 선생님께 약으로 부쳤습니다. 참나무에 꽃다발처럼 열린 겨우살이도 넣었습니다. 큰 주전자에 넣고 끓여서 차로 드시라고요. 토끼똥도 한 봉지 넣었습니다. 학교 뒤뜰에서 야생화 공부한다는 학생들 보라고요. 싸리나무 먹고 자란 건강한 토끼가 눈 똥입니다. 철암 아이들 몇 명은 토끼똥이 초콜릿인 줄 알고 집어 먹었답니다. 원주 아이들은 알아볼까요? 2016년 5월 13일. “애들아 풀 매러 가자.” 산 아래 할머니가 사륜오토바이에 아이들을 태웠습니다. 고추밭에 내려 호미를 받았습니다. “줄기 아래를 잡고 뿌리까지 잘 뽑아야 한다.” 네 살 아이가 풀뿌리 흙을 털면서 “비다. 비다.” 웃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부엌에서 국시(국수)를 삶으셨습니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참을 먹었습니다. 대접에 국수를 담고 돼지고기와 파를 굵게 썰어 넣은 자장이 끝내줍니다. 2016년 6월 4일. 아이들이 도서관 마당과 길에서 놉니다. 보도블록에 돌멩이를 갈아서 도구를 만드는 짱돌회사, 흙으로 음식해서 차리고 나눠 먹는 모래놀이, 단체줄넘기, 그네타기, 숨바꼭질, 줄다리기, 스님과 오목 두기…. 옹골지게 놀았습니다. 2016년 7월 2일. 철암에서 광활 활동을 한 이준화 원지윤 선생이 경주에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경주 오릉에서 가깝습니다. 남천 건너 국당마을 한옥집을 고쳐서 간판을 걸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좋은 책을 만나는 ‘오늘은책방’ todaybs.co.kr 2016년 8월 7일. 철암고 1학년 송승규가 개인 시화전을 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쓴 시를 골라서 시화를 만들었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웃을 만났습니다. 장소 섭외부터 행사 진행까지 승규가 빛났습니다. 2016년 9월 7일. 피내골 조순녀 할머니께서 <어느 아낙네 이야기>를 정식 출판했습니다. 배추랑 고추 팔아서 모은 돈으로 책을 내셨습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조순녀 할머니 댁에 찾아갔습니다. 할머니가 반기시고 배추 몇 포기 주셨습니다. 청주 책 모임 독자들이 할머니 뵈러 왔습니다. 할머니가 저녁상 차려 주셨습니다. 2016년 10월. “시 쓰고 싶어요.” 찬바람이 몹시 부는 날, 진호가 시 네 편을 썼습니다. 진호 어머니께 아들이 쓴 시를 드렸더니, “진호 롤 모델이 승규 형이에요. 단풍축제 때 승규 형이 시화전 하는 걸 보고 자기도 시 쓰겠대요. 시집도 내고 시화전도 하겠다고요.” 어머니 말씀을 승규한테 전했습니다. 서로 곱게 물이 듭니다. 2016년 11월. 조순녀 할머니가 배추 한 포대를 주셨습니다. 이웃과 나눴습니다. 안씨상회 어머니가 김치와 떡을 주셨습니다. 뒷집 어른이 강원도 옛날 음식으로 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정성으로 말린 곶감도 주셨고요. 미안하다 아주머니가 까만 봉지에 쌀을 담아오셨습니다. 도서관에 쌀 갖다 주며는 어머니 위신이 섭니다. 2016년 12월. 호랑이 아저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아저씨는 환경미화원입니다. 청소 일을 마치면 초등학교 앞 슈퍼에서 쉬셨습니다. 여름에는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고 겨울에는 뜨거운 어묵 국물을 먹이셨습니다. 아이들은 아저씨가 베푸신 친절을 기억합니다. 우리 곁에 언제나 계실 것 같던 호랑이 아저씨는 새벽에 청소 일을 하다가 제 몸처럼 여기시던 청소차에 받혀서 돌아가셨습니다. 화장을 해서 아저씨가 자주 가시던 산골짜기 양지 바른 언덕에 뿌렸습니다. 12월에 호랑이아저씨, 종범이네 할아버지, 용찬이네 어머니, 또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왕언니 계미정 어머니 기일도 지났고요. 태백공원묘지에 세 번 갔습니다. 2016년 12월 31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 행사를 했습니다. 재현이네 어머니가 만두소를 만들고 아이들이 만두를 빚었습니다. 중학생은 가래떡을 썰었습니다. 개성 있는 떡국 재료를 장만해놓고 깜깜한 마당에서 놀았습니다. 화덕에 탄불을 담아내어 집집마다 가져온 간식거리를 구우면서 노변정담 했습니다. 밤이 깊어 도서관 바닥에 배를 깔고 2016년 추억과 감사, 2017년 기대와 소망을 적었습니다. 새해 카운트다운을 맡은 직장인 명호가 10분이 채 남지 않은 시계를 보였습니다. 5, 4, 3, 2, 1.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김재극 할아버지가 주신 징을 치며 저마다 소망을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습니다. 가족이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통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댕~ 댕~ 댕~ 타임캡슐 담당 현아가 소망 종이를 모아 초콜릿상자에 담았습니다. 1년 후에 보자. 2017년 1월 1일 샛별을 보며 태백산국립공원 함백산에 올랐습니다. 마을 아이들과 맑고 고운 해를 보았습니다. 춥고 아름다웠습니다. 도서관에 돌아와 떡국을 먹었습니다.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아이들과 이웃 사랑 받으며 삽니다. 덕분입니다. 철암세상 철암도서관 cholam.org | |
'화절령에서 시작하는 폐광촌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폐광촌 고한의 만항마을을 지나며 (0) | 2017.02.05 |
---|---|
[스크랩] 국가경제 재건의 유공자 폐광촌 사람들 (0) | 2017.02.05 |
철암농협 문 닫는 날, 아이들이 편지 써서 드렸습니다. (0) | 2016.12.31 |
태백산 호랑이 아저씨 (0) | 2016.12.14 |
[스크랩] 1957년 함백역에서 첫짐을 실은 기차 (0) | 201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