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존과 번영

금요칼럼 - “독일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오직 독일뿐”

소한마리-화절령- 2017. 2. 3. 14:10

금요칼럼 - “독일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오직 독일뿐”

고광헌 (시인,한림대교수)

     


“독일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오직 독일뿐” 분단 상태의 두 독일이 1974년 서독월드컵대회에서 운명의 한판승부를 벌여 동독이 승리하자 서독의 한 신문이 다룬 톱뉴스 제목이다. 독일민족의 위엄과 자존감이 웅숭깊게 묻어나는 문장이다. 기실, 이 제목은 사실의 신성함이나 저널리즘의 원칙을 부정함으로써 언어가 닿을 수 있는 최상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나는 분단 독일이 축구를 통해 보여준 평화의 제례에 감명을 받게 됐고, 한반도에서도 축구와 같은 스포츠가 남북화해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당시 이 뉴스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이 정보를 알게 된 것은 대회 폐막 뒤 6년 이상이 지난 80년대였다. 온 나라가 88올림픽으로 들떠있던 어느 날 지금은 고인이 된 송건호 선생이 나를 불렀다. 선생은, 1975년 동아일보 사주가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굴복해 백 수십 명의 기자 피디 등을 쫒아내자 이에 항의해 편집국장직을 버리고 자유언론을 위해 투쟁한 분이었다. <한겨레> 초대 사장을 지낸 선생은 유신체제의 언론검열 탓에 그 뉴스를 전할 수 없었다며 분단독일의 체육교류와 예의 월드컵에서 동-서독 간의 경기와 응원열기 등에 대해 설명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독일월드컵대회에서 동-서독이 한 조에 걸려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결과는 동독이 1-0으로 이겼다. 서독 관중들이 동독을 일방적으로 응원했는데 감동적이었다. 이 장면이 전 독일에 중계가 됐다. 신문들이 냉전적 대결이 아니라 민족 화해의 시각에서 다뤘다는 등의 취지였다.  

당시 88서울올림픽 남북공동(분산) 개최 등을 주장하는 글을 쓰기도 한 나는 이를 계기로 독일의 체육교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독일문화원의 도움으로 송 선생께서 말한 내용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독일은 이미 1950년부터 스포츠 교류를 하고, 여러 차례 올림픽 단일팀 출전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는 냉전보다 더 극악한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였다. 독일의 사례는 충격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 원천이 됐다.

동서독간의 경기는 1974년 6월 22일 오후 7시 30분 함부르크의 폴크스파크 경기장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이 경기는 냉전 아래의 두독일 국민들의 가슴을 동포애로 달궜다. 경기가 시작되자 서독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동독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동-서독은 조1, 2위로 준결승리그에 올랐으나, 동독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반면 자신의 반쪽으로부터 ‘예방주사’를 맞은 서독은 연승을 이어가 마침내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서독시민들의 응원은 동포애적인 마음에서 왔을 수도, 체제경쟁에서 승리한 자신감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그들이 보여준 자부심 넘치는 응원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린 경제성장과, 히틀러 이후 완벽에 가까운 역사청산으로 공동체를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틀로 발전시킨 주역들의 당당함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그 배경에는 두 독일 정부의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 노력이 있었다. 특히 정치로부터 스포츠를 분리한 정책이 남달랐다. 두 독일은 1952년 최초로 종목별로 단일팀을 구성해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올림픽은 이미 56년 멜버른대회부터 로마와 도쿄올림픽까지 단일팀으로 출전한 사실을 알았다. 베를린 장벽 철거 전까지 매년 수천 명의 선수들이 양쪽을 오가며 친선교환경기를 펼쳤다. 89년 통일이 되기 전 1년 동안에만 1천5백회의 교류가 있었고, 18여만 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스포츠교류가 거의 일상적인 수준이었다.

독일보다는 적지만 남북 스포츠교류도 계속돼 왔다. 1990대 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후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은 여자복식과 단식 우승을 거두며 남북화해의 마중물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또 같은 해 9월에는 포르투칼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출전시켰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 기간에는 동서독 못지않은 남북스포츠 교류시대를 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부산아시안게임(2000년)과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2003년), 아테네올림픽(2004년), 토리노동계올림픽(2006년)까지 남북한 공동입장을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북한과 대화를 중단한 이명박 정권과, 통일대박을 외치다 갑자기 개성공단 철폐와 사드배치를 결정한 박근혜 정권 9년은 남북스포츠 교류의 암흑기라 부를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심지어 국민의 70%가 요구하는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마저 무시했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아마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남북 체육교류에 대한 내외의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 자세로 대처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북한선수단 초청에서부터 마식령 스키장의 공동 활용까지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도 평창올림픽 분산개최를 권고한 바 있지 않은가.

나는 그동안 독일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오직 독일뿐이라는 문장에서 ‘독일’을 ‘코리아’로 바꿔 마음에 새겼다. 새로운 남북한 스포츠 교류시대가 열리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경평축구대회’가 부활됐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그 첫 경기 결과를 다루는 편집자라면 타이틀을 다음과 같이 달겠다. “코리아를 이길 수 있는 팀은 오직 코리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