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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기본소득'·'언론기본소득'..기본소득은 진화한다

소한마리-화절령- 2017. 2. 17. 22:33

'정치기본소득'·'언론기본소득'..기본소득은 진화한다

입력 2017.02.17 19:46 수정 2017.02.17 21:26 댓글 29

[토요판] 뉴스분석 왜?
기본소득의 확장

[한겨레]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기본소득의 취지를 살려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해보자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은 기본소득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한 녹색당이 기본소득 통장 샘플을 만들어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녹색당 제공
▶기본소득 열풍이 거세다. 대권 주자들의 입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주장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본소득을 정치와 언론 영역으로 확대한다면? 이름하여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 언뜻 보아 생소하지만, 사실은 이미 시행 중인 제도와의 공통점도 많다. 두 제도의 가능성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기본소득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기본소득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정액의 사회적 급부로, 모든 시민들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하자는 게 그 기본 취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침체 장기화의 원인이 수요 부족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총수요 증대를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인공지능 일반화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일자리가 줄면 임금의 주소득원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사람들의 삶도 위태롭게 될 것이다. 이때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안정적으로 다양한 활동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일까? 아예 기본소득의 의의를 이처럼 ‘경제’ 영역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여유가 생기면 그 효과가 정치·사회·문화 등 다방면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판에 박힌 얘기가 아니다. 외려 기본소득이 정치와 언론이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을 둔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런 주장을 내놓은 인물은 국내의 기본소득 ‘전도사’ 강남훈 한신대 교수다. 지난달 14일 혁신더하기연구소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공동주최로 열린 ‘기본소득, 포퓰리즘인가 시민기본권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강 교수는 “이건 이 자리에서 처음 꺼내는 것”이라며 생소한 두 가지 개념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 보통의 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각각 ‘정치’와 ‘언론’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일정액의 소득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나눠주자는 게 요지다.

정치 후원용도로만 사용 가능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언론의 의의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2012)에서 지적했듯이, 가장 명망있는 경제학자들조차도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치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언론이다. 그러나 지금 전세계적으로 정치는 극우 선동꾼들의 ‘막말 잔치판’으로 변질되고 있고, 언론은 불평등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줘 대중으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돕기보다는 대중이 현실을 잊거나 엉뚱한 대상에 화풀이하도록 만드는 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듯하다.

서로 영역은 다르지만, 정치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궁극적인 원인은 ‘돈’이다. 우선 정치를 보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금권에 의해 정치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거 때마다 유력 정당들의 ‘공천권 장사’ 의혹이 어김없이 제기돼왔다. 큰 선거 뒤에 당선이 취소되는 의원이나 단체장들의 한결같은 ‘죄목’은 누군가와 불법적인 돈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정치라는 게 기본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기에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자금이 공급되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고, 이 때문에 예로부터 정치인들은 부자나 기업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당연히 이러한 관계는 정치인의 활동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다수 유권자가 원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주는 쪽의 관심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드는 유인이다. 물론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는 ‘깨끗한’ 정치인도 많지만, 이들도 결국 변질되거나 아예 그렇게 되기도 전에 돈이 없어 도태되기 일쑤다. 정치인 또는 정당에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거나 일반 시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기부행위가 양성화·제도화되기도 하나, 힘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지원이 몰린다거나 소액기부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는 등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인 기본소득 주창자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 강 교수는 기본소득 패러다임을 정치와 언론의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강 교수는 정치기본소득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줄 해법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 모든 유권자에게 1인당 10만원의 정치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유권자들이 이 돈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을 후원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 10만원을 개인적 용도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당연히 대비책도 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정치기본소득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개설된 유권자 개인의 계좌로 지급될 것이고 오직 후원 용도로만 쓸 수 있으며 미사용분은 국고로 회수된다.

원래 이 제안은 미국의 헌법학자 브루스 애커먼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같은 학교의 이언 에어스 교수와 함께 쓴 책 <달러로 투표하기>(2002)에서 일찌감치 내놓았었다. “투표일에 모든 표를 동등하게 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 시민은 정치자금 모금 결정에서도 지금보다 더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투표일에 똑같이 하나의 투표권을 받듯이, 그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에게 자금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특수한 크레디트카드도 받아야 한다.” 이 크레디트카드에 애커먼과 에어스는 ‘애국카드’라는 적절한 이름을 붙였다.

강 교수가 그리는 정치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면이 있다. 자본주의하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정치인들은 그저 자신을 후원하는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통상적인 ‘냉소’를 걷어낼 수도 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금권정치를 방지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민의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유능한 정치인이 적어도 돈 때문에 정치를 그만두는 일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지급받고 후원하기’로 순서 바꾸기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우리나라 정치는 ‘고비용 구조’라는데 1인당 10만원 가지고 충분할까? 혹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을까? 또는 반대로,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은 아닌가?

첫째, 1인당 10만원은 충분한 금액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헌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에서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유효투표 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한 경우 선거비용 전액을 국가가 보전해주게 돼 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조건을 만족한 두 후보(박근혜·문재인)가 소속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453억원과 466억원을 돌려받았다. 즉 대통령선거 한 번 치르는 데 나라 전체적으론 공식적으로 1조원 가까이 든 셈이다. 따라서 총 4천만명의 유권자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할 경우 최대 4조원이 정치자금으로 쓰일 수 있으므로,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0만원의 정치기본소득은 대통령선거를 한 번 치르기에 충분하다.

‘적절한 삶’ 보장하자는 기본소득 취지
총수요 증대 수단으로도 주목받기도
정치·사회 다방면으로 효과 확대 고민
미국 헌법학자 애커먼 등 아이디어 제공 1인당 10만원 정치기본소득 지급한 뒤
유권자가 지지 후보자·정당에 후원토록
미사용분은 국고 회수해 남용 방지
‘언론기본소득’ 형태의 변형도 고려할 만

다음으로, 정치기본소득 시행이 어려울 거라 단정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와 매우 유사한 제도가 현재 이미 시행중이기 때문이다. 바로 정치자금 세액공제제도다. 현행 관련법규에 따르면, 개인이 정치인을 후원할 경우 후원금의 일부를 되돌려주는데, 10만원 이하에 대해서는 90% 이상을 돌려준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선 이미 정치기본소득은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후원하고 돌려받는’ 현재의 제도를 ‘지급받고 후원하는’ 식으로 순서만 바꾸면 된다. 그러나 이 간단한 조작이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내리라는 게 강 교수의 예측이다.

이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를 떠올리면, 놀랍게도 정치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한 추가 재원은 0원이다. 정치기본소득제 아래서 후원할 사람이 현행 세액공제제도하에서도 후원한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돈이 더 들 것이다. 4천만명의 유권자 중에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현재의 제도 아래서는 정치후원금을 내고 그것을 세액공제를 통해 돌려받을 수가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의 근본취지가 ‘장삼이사’들의 소액 후원을 활성화해 국민들의 주권의식을 높이고 정치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거라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유권자의 참여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기본소득은 현재의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주는 우월한 제도인 셈이다.

실제로 선관위에 따르면 2015년 국회의원후원회를 통해 모금된 금액은 402억원에 불과했다.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에는 후원금 말고도 당비, 기탁금, 국고보조금 등이 포함되는데,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으로 가는 각종 수입을 다 합치면 1148억원이다. 말하자면, 정치기본소득의 시행을 통해 정치인 또는 정당에 대한 개인 후원이 활성화될 경우, 현재 국고에서 지급되는 보조금(2015년의 경우 394억원)은 필요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치기본소득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을 상당 정도 상쇄할 것인데, 그 효과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활동을 위한 공적 보조금의 집행을 유권자들이 국가기구의 매개 없이 자율적으로 함으로써, 정치가 특정 세력이 장악한 국가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문제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볼 수 있다. 강남훈 교수가 제안하는 언론기본소득도 앞서 말한 정치기본소득과 비슷하다. 18살 이상 시민에게 1인당 연간 5만~10만원의 언론기본소득을 지급하되, 이는 언론인들이 만든 언론기본소득재단 계좌에 입금된다. 이 재단이 자체적인 기준에 의거해 후원 대상이 되는 기사들을 가려내고 모든 기사에 고유번호를 부여하면, 시민들은 자신이 지급받은 언론기본소득을 소정의 간단한 절차에 따라 좋아하는 기사에 후원할 수 있게 된다.

언론기본소득이 시행되면 기사의 공정성과 품질이 높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2015년 4월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 및 공정방송 궐기대회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사 공정성과 품질 향상 기대

사실 이 아이디어도 앞서 정치기본소득의 모태가 되는 ‘애국카드’를 제안한 애커먼 교수가 먼저 내놓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제안은 몇몇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규제적 지향점은 같다. 핵심적인 가치를 살려내기 위해 자유방임주의와 막무가내식 관료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애커먼 교수의 제안이 기사 후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와 언론인 존 니컬스는 그들의 공저 <미국 언론의 죽음>(2010)에서 시민들에게 일정액의 바우처를 지급한 뒤 이를 언론사에 자율적으로 지원하게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비슷한 취지의 제안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은 그만큼 언론의 자본 종속과 기사의 질 저하가 심각함을 방증한다. 언론기본소득이 시행되면 무엇보다 기사의 공정성과 전반적인 품질이 향상되리라 쉽게 기대할 수 있다. 시민 개개인에 의해 개별 기사 차원에서 지원 여부가 결정되므로,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괜찮은 언론사조차도 질 낮은 ‘낚시성’ 기사를 구태여 만들어낼 필요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을 경우 언론사들은 더 이상 광고, 즉 자본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리라는 점이다. 이 경우, 자본이 지급하던 광고비를 국가가 조세로 수거해 이를 언론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쓸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사실상 없으면서도 언론의 공적 성격은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사들은 이제 더는 국가의 보조금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자본뿐 아니라 정부도 마음껏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의 최대 장점은 현재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관행에 크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애초 제안자들이 그랬듯, 그 둘에 굳이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은 제기해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최근 급등하고 있는 기본소득의 인기에 편승해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그리고 이를 통한 대중의 주권신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면, 뭐라고 부른들 대수일까?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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