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코빈 |
고 세 훈 (고려대 명예교수) |
유럽 중도좌파정당들이 일제히 쇠락의 길에 들어선 시점에 영국노동당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1949~ ) 당수가 진보정치의 새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68세의 코빈은 1983년 총선을 통해 하원에 발을 들인 이래 34년 동안 런던 이즐링턴 노스에서 내리 9선을 했다. 그는 처음 집권당 의원이 됐던 1997년 이후에만 530여 차례 당론을 거역했던 ‘상습적 반란자’였다. 만년 평의원(backbencher) 신분을 스스로 고집했거니와, ‘거룩한 바보’가 따로 없는 셈이다. 그가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오히려 거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보통사람들 틈에서였다. 코빈 죽이기, 코빈의 복수 영국정치에서 동료의원들로부터 그처럼 적게, 당원들로부터 그리도 많게 지지받았던 당수는 없었다. 의원 80% 이상이 등을 돌렸고 예비내각 각료들의 사임이 줄을 이었다. 진보언론인들은 하나둘 지지를 철회했고, 주류언론의 일상적 폄하와 조롱 가운데 여론조사에선 거의 모든 연령층, 계층, 지역에서 보수당이 앞서는 상황이 지속됐다. 보궐선거 패배가 잇따랐으며 노동당이 영원한 야당으로 추락하리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이 모두가 ‘설익은 사회주의자, 가장 무책임한 당 파괴자’, 코빈 탓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탈진해서 소멸해 주길 원했다. 강한 야당, 강한 민주주의 코빈은 영국 사회주의를 회생시켰는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사회주의가 침체의 늪에 빠진 영국노동당과 영국 민주주의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강한 야당이 없으면 어떤 정부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정치가·작가)의 경고다. 대처 정부는 대처 혁명의 상승세 속에서 인두세를 밀어붙이다 좌절했고, 잇단 선거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라크침공을 감행했던 블레어 정부는 재앙을 맞았으며, 노동당을 항구적 불구로 만들려는 메이의 시도는 코빈과 그 지지자들의 역풍을 맞았다. 모두 여론의 흐름을 과신한 오만이 빚은 참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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