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석학칼럼]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이중의 위협
대니 로드릭 입력 2018.03.11. 13:41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우려가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브렉시트’ 투표, 유럽 선거에서 포퓰리스트들의 득세 등이 ‘비(非)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비자유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치의 일종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법치나 소수의 인권 같은 가치를 거의 존중하지 않은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소수의 예리한 분석가들은 오늘날의 정치적 위협이 비단 비자유민주주의, 또는 포퓰리즘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해 ‘민주주의’를 일부 희생시키는 경향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의 정치 지도자들은 가용 정책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책임을 외면한다. 정책은 그런 책임과 괴리된 관료조직이나 독립 규제기관, 법원에 의해 추진되거나, 세계화에 따른 글로벌스탠다드 에 맞춰 외부로부터 정해진다.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주목할 만한 신간 ‘국민 대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에서 이런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에 빗대 ‘반(反)민주자유주의(undemocratic liberalism)’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의 정치체제는 이미 오래 전에 자유민주주의적 작동을 멈췄고, 점점 더 반민주자유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U는 이런 추세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통합 없이 이루어진 단일시장과 통화제도의 출범은 국민국가가 주도해온 정책 수립과 추진을 유럽집행위원회나 유럽중앙은행, 유럽재판소 같은 기술관료조직에 위임할 필요를 낳았다. 점차 많은 의사결정이 각국 국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서 이뤄지게 됐다. 심지어 유로존 회원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브렉시트 지지자들조차 ‘주권 회복’ 구호를 외칠 정도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상황에 권리를 빼앗긴 듯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뭉크가 지적하듯, 정책 결정은 환경보호기구(EPA)로부터 식품의약국(FDA) 같은 알기 어려운 약자들로 표시된 독립 규제기관의 몫이 됐다. 시민권을 증진하고 자유를 확장하며, 다양한 사회 변혁을 전파하기 위한 법원의 판결은 인구 분화와 이해 갈등에서 비롯되는 적의에 직면했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나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 등을 통해 정립된 글로벌경제 규칙도 대개는 일반 노동자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뭉크의 새 책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이루는 두 핵심 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값지다. 정치권력의 행사는 다수, 또는 권력자들이 소수, 또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짓밟지 않도록 자제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책은 유권자 다수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취약하다. 자유와 민주라는 두 가치를 안정적으로 조화시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충분한 권력을 가지면 공중 대다수의 이해를 반영하는데 무관심하다. 반면 대중이 움직이고 권력을 요구해 엘리트들과 협상할 경우엔 소외된 소수의 권리가 보장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상충적 두 가치 중 하나가 우세해져 비자유민주주의나 반민주자유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나는 동료와 함께 쓴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정치적 경제’라는 논문에서 뭉크와 유사한 용어로 자유민주주의의 버팀목을 거론했다. 우리는 사회가 두 개의 잠재적 균열에 의해 갈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나는 소수를 윤리ㆍ종교ㆍ이념적 다수로부터 분리시키는 정체성의 균열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를 사회의 나머지 다수와 다투도록 만드는 부의 간극이다.
이런 균열과 간극의 깊이와 차이가 다양한 정치체제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언제나 대중과 엘리트 사이의 권력 우열관계에 따라 한편으론 비자유민주주의에, 다른 한편으론 반민주자유주의에 의해 훼손된다.
자유민주주의가 출현한 상황을 돌아보자. 서구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선행했다. 권력 분립, 표현의 자유, 그리고 법에 의한 통치 등의 개념은 정치 엘리트들이 다수에 의한 통치에 동의하기 이전에 이미 정립됐다. 정치 엘리트에겐 ‘다수에 의한 독재’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다. 그래서 미국에선 정교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한동안 행정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개발도상국 같은 지역에서는 자유주의적 전통이나 관행이 결여된 상태에서 먼저 대중적 힘이 형성됐다. 안정적 자유민주주의는 거의 등장하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비교적 평등주의 성향이 강하고 단일민족국가로서 국민 사이에 사회적, 이념적, 윤리적, 언어적 균열이 별로 심하지 않은 한국 정도일 것이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그곳의 자유민주주의가 이미 한물갔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런 우려를 할 때, 비자유주의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반민주주의의 함정을 피할 길도 아울러 모색해야 한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 대학원 교수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랫폼 노동, 기술변화에 따른 새로운 고용형태인가? (0) | 2018.06.29 |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것인가? 기술진보과 노동의 관계 (0) | 2018.06.22 |
중국 항저우 악왕묘(岳王廟)에서- 사실(史實)과 해석 (0) | 2018.02.19 |
[AI 연애시대]②성 상품화 논란 속, 이미 판매 들어간 '섹스로봇' (0) | 2018.01.09 |
멸종위기 바나나..우리는 언제까지 먹을수 있을까 (0) | 2017.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