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일자리에 큰 변화 2년 전인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다섯 번의 대국에서 한번만 이기고 4번을 패배하였다. 이미 2011년에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미국의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했고 최근에는 의료,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애플 시리, 아마존 에코,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삼성전자 빅스비, SK텔레콤의 누구 등 정보통신기업에서 자연언어 처리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었고 최신 스마트폰에는 인공지능 칩셋이 탑재되고 있다.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를 비롯한 정보통신관련 행사에 자동차기업이 자율주행자동차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일상에 인공지능이 활용되면서 기술진보에 따른 인간 일자리의 미래가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특히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2015년에서 2020년 사이에 사무·행정직을 중심으로 71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 진다고 하였다.
기술진보에 따라 일자리 수는? 기술진보는 장기적으로 일자리 늘렸다 기술진보와 일자리의 관계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되었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세이(Jean Baptiste Say)는 기술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상품 가격이 하락하여 상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과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다.
반대로 마르크스(Karl Marx)는 점점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보았다.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1923년 「화폐개혁론」에서 기술적 실업을 언급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레온티에프(Wassily Leonfief)도 1983년 컴퓨터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 이야기하였다. 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리프킨(Jeremy Rifkin)은 1994년에 「노동의 종말」에서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이 줄어들고 저임금·임시 일자리만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기계와 자동화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오히려 장기로 볼 때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늘렸다.
기술진보는 노동과 여가를 바꾸고, 직업과 삶을 바꿨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기술진보와 고용의 관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만들어 내는 단순한 관계가 아닌 삶의 질, 노동 숙련, 직업, 생산조직의 변화가 다양하게 묶인 복잡한 관계로 구성된다.
기술진보는 크게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제품혁신과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공정혁신으로 구분된다.
19세기 후반에 발명되어 상용화되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발전된 전화, 전구, 전기발전,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등과 같은 새로운 상품은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가사 노동이 줄어들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졌다. 무엇보다 상류층만 즐기던 여가가 확대되어 노동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가의 확대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수요는 곧 생산 증가와 고용증가로 이어졌고 새로운 제품과 관련된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났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도 PC, 인터넷, 이동통신, 스마트폰과 같은 제품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고 프로그래머와 같은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새로운 제품으로 인한 제품혁신은 고용을 창출시키고 직업의 구성도 변화시킨다.
고든(Robert J. Gordon)에 따르면 1870년 미국 취업자 중 46%를 차지하던 농업종사자 비중이 1940년에 17.3%로 줄었고 2009년에는 1.1%에 불과했다. 1870년에 생산직 종사자 비중이 33.5%에서 1940년에 38.7%로 증가했다가 2009년에는 19.9%로 절반으로 감소했다. 이에 반해 경영인,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기업주는 1870년에 8.0%를 차지했지만 2009년에 37.6%를 차지했다.
기술진보는 생산방법을 바꾸고, 생산과 고용을 늘렸다 한편 공정혁신은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새로운 생산방법은 기존의 임금비용보다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갈 때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이 경우 기존의 노동을 대체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앞에서 세이가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생산방법이 가격을 낮추면 수요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생산과 고용이 증가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산방법으로 이윤이 증가하면 소득을 증가시켜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이 경우 다시 생산과 고용 증가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은행들이 ATM기를 도입할 때 사람들은 은행의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ATM기 도입으로 지점 운영비용이 절감되어 오히려 지점이 확대되었다. 지점이 증가하면서 고용은 증가하였고 은행직원들은 단순 입출금 업무에서 벗어나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생산방법으로 대량생산 체제가 일반화되면서 대규모 제조업 중심의 고용관계가 형성되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정한 공간에서 노동을 하는 장기 고용계약이 일반화되었다.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얻는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다시 생산과 고용증가로 이어졌다.
기술진보로 중간 숙련의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렇게 보면 기술진보는 고용의 측면에서 희망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최근 20년 동안 OECD에 속한 주요 산업국가들에서 중간 숙련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가 증가하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고숙련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중간 숙련의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저숙련의 나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중간 숙련 일자리 감소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은 업무에 컴퓨터를 도입하면서 매뉴얼화 할 수 있고 반복적인 업무가 자동화되어 관련 인력을 감소했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로 관리되는 경영정보시스템 도입으로 중간 숙련 수준의 업무인 인사, 회계 업무 종사자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레이와 오스본(Carl Benedikt Frey and Michael A. Osborne)은 2013년에 700여개 직업을 대상으로 컴퓨터화 위험에 노출될 직업들을 발표하였다. 텔레마케터, 부동산 중개인, 화물운송업 등이 고위험군이었으며 레크레이션 치료사, 큐레이터, 성직자, 의사 등은 저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신흥개발국가로 외주를 준 결과라는 해석도 중간 숙련 일자리 감소에 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보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수송수단의 발달로 장거리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주요 산업국가의 중간 숙련 업무가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개발국가로 외주화되었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면 애플은 제품개발과 같은 고숙련 업무를 미국 본사에서 수행하지만 제품 생산은 중국과 인도의 공장으로 외주화하였다. 삼성, 소니, GM, 폭스바겐과 같은 전자제품 기업과 자동차 기업은 제품개발은 본국에서 하지만 신흥개발국가의 생산비중이 높다.
이 경우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술진보와 세계화 전략 그리고 경쟁의 과잉이 복합적으로 엮여져 있다.
기술진보의 영향은 제도에 따라 달라져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실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다. 독일은 2005년부터 정보통신기술과 제조업을 융합시키는 정책전략을 준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협업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입을 의제로 선정하고 새로운 산업과 직업을 위한 교육⋅훈련을 어떻게 할지 다양한 논의를 벌여왔다. 그 결과가 산업4.0과 노동4.0 전략이다.
우리도 막연히 새로운 기술에 따른 일자리 소멸을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고민을 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허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기업을 지원하기보다 양질의 교육과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일의 일부를 대신할 뿐 다시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와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을 닮아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지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의식을 의미하는지, 심리를 의미하는지, 논리적 추론을 의미하는지도 모를뿐더러 무엇보다도 이 질문은 인간 자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인간 자아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되지 못하면 인간을 대신할 인공지능 개발은 요원할 뿐이다. 이 점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수행하는 일 중 일부를 대신 할 수 있지만 노동 그 자체를 대신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