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새벽. 인천으로 차를 몰았다. ‘피트니스스타 아마추어리그’에 참가하는 친구의 시합준비를 돕기 위해서다. 시합장에 도착하니 여성부 머슬종목의 시상식이 이미 끝난 후였다. 전체 1위 입상자가 금메달을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디빌더인 나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존경한다. 단 하루의 시합을 위한 철저하고 처절한 음식조절, 운동량, 그리고 노력과 땀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력의 대가는 근육선명도로 나타났다.
“운동하는 여자 어때? 저것 봐. 여성미가 없잖아. 남자도 아니고”
옆자리의 한 여성이 말했다. 충실한 과정과 훌륭한 결과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고 있던 내 귀를 의심했다. 과거 남성들만의 대회로 여기던 피트니스 대회. 보디빌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맞물려 여성부의 다양한 종목이 신설됐다. 여성과 남성. 미에 대한 기준. 그리고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바라보는 편견. 혼란스러웠다.
여성미(女性美)란 여자의 아름다움, 정숙하고 부드러운 성질과 몸매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강인, 우람함과 같은 남자 특유의 육체와 성질과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남성미(男性美)란 단어는 여성미의 의미와 대조적이다. 몸을 판단하는 미(美)적 기준이 상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디빌딩(Bodybuilding)은 몸(body)을 쌓는 것(building)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단히 쌓고, 쌓고 또 쌓아 몸을 단련하는 일이다. 극한의 노력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미(肉體美)를 겨루는 대회이다. 육체(肉體)의 아름다움(美)을 겨루는 이 대회에 여성다운, 남성다운과 같은 기준이 추가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과거 우리사회 곳곳에 금녀(禁女)의 벽이 존재했다. 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이었던 것처럼, 여자라서 여자니까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과 범위는 제한되어있었다. 50여년이 지난 2018년 공무원, 군인, 경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은 자신의 역할을 한다.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진다.”
성 불평등이 사회 내 만연함을 알린 ‘제2의 성’의 저자이자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이다.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 당연한 듯 보인다. 당연한 것은 항상 옳은 것인가. 인간은 사회문화적 동물이다. 국가 민족 지역 집단 사회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러한 관계의 유형화를 우리는 문화라 부른다. 문화는 사회집단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통해 우리는 ‘할 것’과 ‘말 것’을 결정한다.
최근 ‘피트니스스타 아마추어리그’에서 ‘비키니 맘스’라는 시범종목을 선보였다. 출산, 육아, 집안일. 운동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엄마들만의 대회다.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비키니 종목 전체 1위는 ‘비키니 맘스’ 1위 엄마가 차지했다.
“우리는 주위에 반복적인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반복적인 일상이 항상 정당하지 않지만 당연한 것 같다.”
충북대학교 체육교육과 임용석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이 아닌 것, 다른 것은 잘 보지 못한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의 가면을 쓴 믿음이나 관점을 고정관념(fixed-idea)라 한다. 이는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개인의 의식,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익숙함의 친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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