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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소한마리-화절령- 2018. 7. 29. 16:20

"저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글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입력 2018.07.29. 09:53 수정 2018.07.29. 11:11

[경향신문]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 우철훈 선임기자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48)는 정신장애인이다. 20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은 기억은 없다. 가족들에 의해 8차례 강제입원을 당했다. 병원을 다녀오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됐지만 재발하기 십상이었다. 가족, 병원, 지역사회 어디서도 ‘돌봄’을 받지 못했다. 취업은 쉽지 않아 점점 고립돼 갔다.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이 대표는 “방치된 아이였다”고 어린 시절을 표현했다. 부모는 벌이에 바빴고 이 대표와 형제들은 친척집을 전전했다. 9살 때부터 성추행·성폭행에 시달렸다. 가해자는 친척 남성들이었다. 환청이 들린 건 그때부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청이 심해졌고 어느 날부터는 환각도 보였다. 지금도 가끔씩 환청이 들리지만 이제는 조절하는 방법을 안다. 정신장애인들은 이런 상태를 ‘생존자’라고 일컫는다.

최근 조현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강력범죄사건 가해자들이 조현병 병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이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표는 “강제입원과 같은 격리는 답이 될 수 없다”며 “조현병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부터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를 7월 24일 서울 중구 파도손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도손이 꾸려진 배경이 궁금하다. “2009년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교환했다. 2013년에 오프라인에서 단체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정신장애인 문화예술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 때였다. 정신병 환자로만 봤다. 그렇다고 다른 질병을 앓는 환자들처럼 ‘환자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협동조합은 무산됐다. 지금은 사단법인이다.”


-활동에 어려움이 컸겠다. “협동조합이 무산된 이후,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편견에 기반한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운동에 비해서 ‘운동’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의 대상으로만 봤다. 활동가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증상이 올라온다. 2014년 한 활동가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으로 나도 증상이 심해져 강제입원을 당했다. 당분간 활동이 중단됐다.”


-당사자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과한 약물복용, 병원에서의 인권침해 등으로 인해 후유증이 생긴다. 폐쇄병동이 아닌 내과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매일 진료를 받았고 감시나 통제는 없었다. 퇴원 후 곧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진작 이런 치료를 받았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제도를 바꾸려면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잘 모른다. 자신의 사례는 어땠나.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다. 환청은 처음에는 이명 같은 소리로 시작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일상생활에 무리를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게임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했는데 잠도 못자고 일을 했다. 환청이 심해졌고 귀신이 보이는 등 환시도 시작됐다. 나중에는 환후, 환미, 환각도 느껴졌다. 한계상황에 다다르니 여러 증상이 나타난 거다.”


-어렸을 때부터 환청을 들었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나. “9살 때부터 친척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친척집에 맡겨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너만 죽으면 끝나’ ‘니가 죽어야 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건이 일어났는데 묻고만 있으니 병이 된 거다. 조현병 환자 대부분이 그렇다. 원인 없는 발병은 없다. 그 원인은 가족과 사회가 함께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맥락을 보지 않는다. 미친 사람이라며 낙인찍고 격리시킬 뿐이다.”

이정하 대표가 파도손 사무실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 이하늬 기자

-발병 후 어떤 조치를 취했나. “가족들이 취한 조치는 강제입원이었다. 가족들이 진료를 받아보자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진료실에 남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끌고 가 침대에 묶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왜 내가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설득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두 번째 입원도 마찬가지다.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어디론가 끌려갔고 침대에 묶였다. 세 번째 입원은 가족들이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자’고 했다. 차를 타고 산속으로 갔다. 산속에서 또 남자들이 나왔다. 나를 개처럼 끌고 갔다. 8번째 입원까지 계속 그런 식이었다.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후 증상이 완화됐나. “그 지점이 문제다. 병원에 갔다 오면 증상이 완화돼 사회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폐쇄병동은 오히려 그걸 방해한다. 폐쇄병동 안에서는 통신의 자유, 물건을 소지할 자유 등 아무것도 없다. 약물도 독하다. 손이 떨리거나 행동이 굼뜨게 된다. 입원하기 전에도 환청이 들렸지만 ‘장애’ 정도는 아니었다. 회사 생활을 했고 주변인들과도 어울렸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몸이 망가졌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하면서 강제입원, 폐쇄병동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만만찮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는 강제입원이 필요하다. 폐쇄병동도 마찬가지다. 쟁점은 치료환경이다. 당사자들은 치료를 받고 싶다. 그런데 가고 싶은 병원이 없다. 치료환경이 너무 엉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환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치료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에 대해 어떤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나 “비장애인이 그렇듯 정신장애인 중에서도 반사회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 범죄가 발생했다고 하자. 거기에는 개인의 기질 문제, 환경의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그럼에도 정신장애인의 범죄에 대해서는 ‘정신질환’으로만 단정짓는다. 너무 쉬운 답이다. 최근 일어난 친족간 살인사건도 조현병 때문이라고 보도가 됐다.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장애인 친족 살인사건은 대부분 가정 내 학대 때문에 발생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수십 년 동안 가족에게 학대를 당한다. 하지만 이런 맥락은 생략된다. 우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피뢰침’이라고 한다. 사회와 공동체의 가장 약한 부분이 펑 터지는 거다. 어떤 문제의 신호라는 의미다. 가족과 사회가 이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글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