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詩人들의 방 '서울 땅에 있어도 불우한 유목민'
전체시인 35% 서울 거주 최다… 지역마다 특유의 시의식 흘러
"그들의 집과 방에 사회적 배려를"
1990년대 초반 시인 유하가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끌어 안은 것은 세속의 즐거움이었다. 이후 후기 자본주의적 질서와 쾌락의 얼개는 시 세계까지 삼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시인들의 거개는 순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허여된 공간과 삶의 불일치를 기꺼이 받아 들이며,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인세계> 봄호는 ‘시인의 집, 시 속의 집’이라는 기획 특집을 마련, 한국시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소록을 토대로 전국에 거주하는 1,434명의 시인들이 어디서 창작의 처소를 틀고 있는지 밝혔다. 그 간 간헐적으로 이뤄져 온 조사였지만, 이번에 최초로 현직 시인의 발품을 빌어 재구성한 것이다.
전체 시인의 35%인 547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숫자상으로 시인 공화국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울 땅에서 부르는 노래는 불우의 연주이며, 서울서 충혈된 눈을 가진 그들은 현대적 유목민”이라고 조사를 진행한 우대식(42) 시인은 규정했다. “죽은 사람들만 불러 모아 사망자 주식회사를 만들고 영원히 죽고 싶은 나”로 스스로를 노래 부른 안현미 시인의 “활짝 핀 착란”만이 살아 있는 곳이다(<시구문 밖>ㆍ2006년).
한편 274명의 시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된 경기도에는 일산이 최대의 시인 군락(40여명)으로 나타났다. 대전(39명)도 그와 비슷한 수준. 이 밖에 인천(37명ㆍ함민복 등)을 비롯, 안성(고은 등) 용인(박이도 등) 양평(박용하 등)의 순으로 드러났다.
충남(38명)의 경우에 서산의 생활 서정을 즐겨 다뤄 온 김순일, 충북(32명)에는 속리산 산방에 은거하며 아픈 몸을 치유한 도종환,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이라며 노래한 이성선 등의 시인을 가진 강원(35명), 안동소주를 노래한 인상학 시인을 품은 경북(32명), 섬진강 시편의 김용택이 거하는 전북(51명), 남도의 한을 깊이 아로새긴 송수권 등의 전남(26명) 순으로 시인들에게 땅뙈기를 내주고 있다.
광역시들의 존재가 이채롭다. 이성복의 상처가 시적 텍스트로 엄존하는 대구(69명)는 ‘아나키스트적’ 정서가, 헌걸찬 기개와 전위적 글쓰기가 공존하는 부산(85명)에는 특유의 시의식이, 광주(50명)에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에서 저류를 흐르는 반항의 혼이 각각 자신만의 서정을 구축해 오고 있다고 조사는 밝혔다.
잡지는 이와 함께 김태형 시인의 글을 통해 ‘집’의 외연을 확장,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시뮬라시옹(조작된 이미지)의 세계까지 논한다. 카페나 포털 사이트는 물론 블로그와 미니 홈피 등 가상 공간상의 집까지를 포섭한다. 고은에서 황학주까지 36명의 웹사이트는 이 시대 시인들의 성소라는 것.
2년 전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를 내는 등 이번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 온 우 시인은 “광주에서 문학전문지 <문학들>이 창간되는 등 지역의 독특한 서정과 풍토를 담아내는 움직임이 되살아 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무직의 전업 작가들에게 매달 생계비 지원 등 경제 논리 이상의 지원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래부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아무리 훌륭한 공간이라도 시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한낱 고통스런 불모의 땅일 뿐”이라며 “정부나 사회는 지극한 섬세함을 전제한 가운데 그들의 집과 방에 대해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주거와 창작 공간으로서의 시인의 방’)
장병욱 기자 aje@hk.co.kr
"그들의 집과 방에 사회적 배려를"
1990년대 초반 시인 유하가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끌어 안은 것은 세속의 즐거움이었다. 이후 후기 자본주의적 질서와 쾌락의 얼개는 시 세계까지 삼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시인들의 거개는 순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허여된 공간과 삶의 불일치를 기꺼이 받아 들이며,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인세계> 봄호는 ‘시인의 집, 시 속의 집’이라는 기획 특집을 마련, 한국시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소록을 토대로 전국에 거주하는 1,434명의 시인들이 어디서 창작의 처소를 틀고 있는지 밝혔다. 그 간 간헐적으로 이뤄져 온 조사였지만, 이번에 최초로 현직 시인의 발품을 빌어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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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시인의 35%인 547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숫자상으로 시인 공화국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울 땅에서 부르는 노래는 불우의 연주이며, 서울서 충혈된 눈을 가진 그들은 현대적 유목민”이라고 조사를 진행한 우대식(42) 시인은 규정했다. “죽은 사람들만 불러 모아 사망자 주식회사를 만들고 영원히 죽고 싶은 나”로 스스로를 노래 부른 안현미 시인의 “활짝 핀 착란”만이 살아 있는 곳이다(<시구문 밖>ㆍ2006년).
한편 274명의 시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된 경기도에는 일산이 최대의 시인 군락(40여명)으로 나타났다. 대전(39명)도 그와 비슷한 수준. 이 밖에 인천(37명ㆍ함민복 등)을 비롯, 안성(고은 등) 용인(박이도 등) 양평(박용하 등)의 순으로 드러났다.
충남(38명)의 경우에 서산의 생활 서정을 즐겨 다뤄 온 김순일, 충북(32명)에는 속리산 산방에 은거하며 아픈 몸을 치유한 도종환,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이라며 노래한 이성선 등의 시인을 가진 강원(35명), 안동소주를 노래한 인상학 시인을 품은 경북(32명), 섬진강 시편의 김용택이 거하는 전북(51명), 남도의 한을 깊이 아로새긴 송수권 등의 전남(26명) 순으로 시인들에게 땅뙈기를 내주고 있다.
광역시들의 존재가 이채롭다. 이성복의 상처가 시적 텍스트로 엄존하는 대구(69명)는 ‘아나키스트적’ 정서가, 헌걸찬 기개와 전위적 글쓰기가 공존하는 부산(85명)에는 특유의 시의식이, 광주(50명)에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에서 저류를 흐르는 반항의 혼이 각각 자신만의 서정을 구축해 오고 있다고 조사는 밝혔다.
잡지는 이와 함께 김태형 시인의 글을 통해 ‘집’의 외연을 확장,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시뮬라시옹(조작된 이미지)의 세계까지 논한다. 카페나 포털 사이트는 물론 블로그와 미니 홈피 등 가상 공간상의 집까지를 포섭한다. 고은에서 황학주까지 36명의 웹사이트는 이 시대 시인들의 성소라는 것.
2년 전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를 내는 등 이번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 온 우 시인은 “광주에서 문학전문지 <문학들>이 창간되는 등 지역의 독특한 서정과 풍토를 담아내는 움직임이 되살아 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무직의 전업 작가들에게 매달 생계비 지원 등 경제 논리 이상의 지원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래부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아무리 훌륭한 공간이라도 시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한낱 고통스런 불모의 땅일 뿐”이라며 “정부나 사회는 지극한 섬세함을 전제한 가운데 그들의 집과 방에 대해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주거와 창작 공간으로서의 시인의 방’)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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