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테러리즘
1.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산물이다. 국가의 기원과 그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는 각기 처한 정치적・사회적 관점에 따라 상이하다.
국가를 그 자체로 완전한 것으로 보는 국가주의 또는 국가절대주의는 각기 논자마다 서로 다른 뜻과 개념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국가주의 또는 국가 절대주의는 이를 주장하는 논자가 속한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가 절대적이며 다른 민족이나 국가는 이에 종속되거나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국가주의 또는 국가 절대주의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국 절대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형태의 자민족, 자국절대주의는 강대국이나 약소국을 막론하고 광범위한 분포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 국가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는 최선의 사회기구로 보는 기능적 관점이 있다. 유럽계몽사상에 기원을 두는 이 같은 관점은 오늘날 현대세계의 국가를 설명하는 유력한 근거로 쓰이고 있다. 동시에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국가란 특정계급이 여타 계급을 지배하고 수탈, 착취하기 위한 폭력에 기반을 둔 기구라고 보는 데 이는 앞서의 기능적 국가관과 함께 오늘날 국가이론의 핵심중의 하나이다.
첫 번째 경우의 자민족, 자국절대주의의 폭력성은 일단 논외로 하고 기능적 관점의 국가관과 사회주의적 국가관은 각기 나름의 효용성을 갖고 있는데 이를 반드시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타협점 내지는 공통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느 것이나 국가가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 즉, 국가의 유한성 또는 상대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국가 기구가 폐지되고, 특정계급이나 집단이 여타 계급이나 구성원을 권력행위의 대상으로 삼는 상황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지점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단일한 민족 또는 국민 국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때로 이들 엇갈리는 이해관계가 각 나라의 존망을 가늠하는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이념과 실천적 역량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하는 지난한 문제 앞에 봉착하면 당장 제시할 방법은 누구도 없겠지만 결국은 이를 모색할 의무와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2. 공동선이란 무엇이며 국가의 이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공동선을 보는 관점 역시 상이할 것이다. 단순히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공동선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문명을 발전시키며 역사를 이어온 것은 단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연 조건에서라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구성원들을 도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확장해 왔다. 바로 이것이 인류 문명 진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만 보호한다.'는 논리로 여러 측면에서 능력 있는 사람, ‘살아남은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펴 온 집단은 있다. 또 그런 집단과 논리에 따라 무수한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되어 왔다. 나환자를 비롯한 병자들의 격리와 배제에서 시작하여 인종과 사상, 신앙과 문화의 이질적 요소, 사회적 조건의 미비에 따른 교육기회의 박탈로 인한 劣等性을 이유로 격리와 배제를 시도하고 강제한 이들에 의해 인류의 문명 진보는 끝없이 도전 받고 있으나 지금까지 인류는 무수한 희생을 딛고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인류사회의 공동선은 이와 같이 격리와 배제의 대상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현존하는 국가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역사적 역할과 제한성을 함께 갖고 있다. 일정한 시대적 수명에 따라 국가의 목표와 기획에 걸맞는 작용을 다하면 국가는 인류적 공동선의 진보에 장애물로 기능하기 십상이다.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민족국가는 자국내의 구성원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하고 자국내에서도 '가능한 한'보호하려하기 때문에 인류적 공동선의 구현에는 본질적 한계를 지닌다. 최근의 호주정부가 인도네시아 난민들을 공해상 밖으로 내몬 사건을 비롯하여 세계각처의 난민에 대한 국세사회의 대응을 보듯 국민국가는 당분간 인류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현실적 기반으로 활용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국민국가를 벗어나 세계적 범주의 공동선을 실현할 효과적 기구와 장치를 고안해내야 할 것이다.
3. 테러란 무엇이며 테러가 국제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1) 테러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테러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 하나는 힘, 또는 권력을 지닌자가 반대파 혹은 이익실현에 방해되는 세력이나 특정인물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제압, 제거하기 위해 쓰는 직접적 폭력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월등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세력이나 특정인물에 대항하는 정치적, 사회적 소수파의 유력한 저항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이다. 한마디로 테러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 그 상황에 따라 상대적 정의 실현을 위해 선택 가능한 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형태의 대표적 사례는 우리 나라의 경우 1949년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친일 부역집단과 분단고착세력의 연합정권이 자행한 한독당 지도자 김구 암살사건을 들 수 있다. 58년 장면 부통령저격사건을 보듯 자유당 시대를 포함한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경찰 총수가 '白晝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고 희극적 언명을 할만큼 지배집단의 백색테러가 일상화 된 때였고, 이러한 테러정치는 마침내 60년 4월 18일의 정치깡패들에 의한 高大生 테러 사건으로 '4月 革命'을 촉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미국의'軍産復合体制'라고 불리는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1963년의 존・F・케네디 암살사건과 뒤이은 흑인민권지도자 마틴・루터・킹 목사 암살, 로버트・케네디 암살사건도 이 같은 형태의 테러사건의 전형적 사례이다.
후자, 즉 국민국가 단위에서나 국제정치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배당하는 소수파에 의한 테러의 예도 무수히 많다. 우리 역사만 해도 안중근 의사에 의한 이토 히로부미 처단사건, 김구에 의한 상해 홍구 공원사건, 일왕 폭살 미수사건과 신채호・김원봉의 의열단이 감행한 일련의 항일투쟁을 들 수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독일의 신학자 디미트리 본회퍼와 일단의 동료들에 의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과 1968년 이후 일어난 팔레스타인 게릴라 등에 의한 일련의 테러를 들 수 있다.
2) 소수파 테러의 양상변화
소수파에 의한 테러의 양상이 1972년「검은 9월단」에 의한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선수단 피살사건을 계기로 크게 바뀌고 있다. 그 이전의 대부분의 소수파 테러가 자신들을 지배, 수탈하는 적대집단의 정책관련자이거나 폭력관리자(군대, 경찰 등)의 공무소나 거주지 혹은 특정인물의 생명을 공격목표로 삼았던데 비해 72년 이후의 테러는 단지 비전투원을 넘어서 지배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순수 민간인과 그 시설까지 주요한 직접공격목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2001. 9. 11))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무장조직인 「알・카에다」의 행위로 추정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공격사건은 이 같은 경향의 극단적인 귀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향의 1차적 책임을 소수파적 성격을 갖는 집단에만 묻는 것은 불공정하다.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소수파를 지배, 수탈하는 세력의 폭력과 탄압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도를 더 해 가는 것과 軌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과학 기술과 물리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여론을 지배하고 이들 소수 피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최소한의 이해(利害)와 권리를 공표하고 실현할 최소한의 공간과 가능성을 봉쇄한 상태에서 '공정한 규칙', 그것도 일방적으로 설정한 '규칙'에 따른 게임을 요구하는 근본적 모순과 불합리가 극단적 테러를 낳은 직접적 원인이라 하겠다.
다만 이들 소수파들도 규범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광범위한 우군을 획득하여 정치적, 역사적 정당성과 함께, 도덕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이익을 관철해 나아간다는 전략적 관점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은 무차별 테러전술을 再考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中心으로 한 주류 국가들의 연합 보복전쟁과 같은 致命的 손실을 초래할 反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폭력을 지양하고 국제적인 대중운동의 효과적인 조직과 연대와 같이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Peace by Peace)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테러가 국제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국제정치무대에서 테러가 미친 영향은 역사적 시기와 정세에 따라 다르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세력의 한 청년에 의한 오스트-헝가리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大公의 암살은 이후의 세력역사와 국제정치판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세계사적 사건이다. 이 테러사건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종전과 함께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72년의 뮌헨 올림픽 선수촌 사건은 이듬해인 1973년의 제 4차 中東戰爭과 아랍국가들의 資源民族主義 (또는 石油民族主義)로 인한 제 1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태에까지 이어졌다.
기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영향을 테러사건이라는 단일변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뮌헨사건이전의 中東紛爭을 살피지 않더라도 4차 中東戰爭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의 이해당사자들, 특히 미국을 中心으로 한 강대국들이 진실로 파국을 막고 진정한 평화에 이르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전쟁과 뒤이은 오일쇼크를 막았을 수도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무역센터 공격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지형변화는 92년 소련 몰락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패권 앞에 선택 가능한 변수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국제사회가 미국의 헤게모니에 복종하게 된 것이다. 경제상황 역시 이미 작년(2000년) 말 또는 금년 초부터 시작된 미국 경기후퇴라는 일련의 경향이 이 사건으로 다소 영향을 받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히 말한다면 테러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미국의 보복공격이 얼마나 오랫동안 강도 높게 지속되느냐에 따라 결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테러가 아니라 보복공격의 직접적 영향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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