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권력과 신화, 종교
1. 인간과 동물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서 의식을 갖게 된 이래, 최초로 인간을 괴롭힌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대자연 앞에 맨 몸으로 놓여진 지에서 단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것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막 벗어나 인간 상호간의 조직을 꾀하고 불을 이용하는 등 자연력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단계에서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래 인류를 다른 동물집단과 구별해 주는 결정적인 문제는 아마도 ‘죽음’을 의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식욕과 성욕과 같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미숙한 생산력으로 인한 미충족 혹은 불충족이라는 조건과 함께,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나서 미구(未久)에 닥칠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서 문명개화의 인간세계와 역사를 가능케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동서양의 신화연구 열풍에서 보듯 각 문화권의 원시적 사유형태를 근원적으로 반추함으로서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 지리적, 문화적으로 급속히 통합되고 있는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어떻게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좀 더 조화로운 신세기를 맞이할 것인가 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서양의 신화연구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한 인류가 최초로 고안해내었을 현세에서 삶 이후의 안전장치인 내세와 종교의 원형에 대한 연구와 궤를 같이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고대와 현대 중국인의 세계관
『고대 중국인의 생사관』은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섬기는 고대 중국인들이 겪은 삶 이후의 삶의 세계에 대한 원시적 사유구조(思惟構造)를 밝히는 주제로서 수 천년간 중국과 함께 동양문화권을 이루어 온 한국인의 원시적 사유구조를 탐색하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여겨집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밀접한 관계, 때로는 그야말로 생사를 겨루는 대립과 항쟁의 관계에서 때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이와 입술의 관계처럼 긴밀한 상호 협력과 원조의 상생 관계와 같이 애증을 교차해 온 중국인의 원형적 생사관을 하필 서양인의 저작을 통해 읽게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썩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어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두어 가지 문제랄까 특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선은 제목의 문제인데 『고대 중국인의 생사관』이라는 제목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고대 중국의 신화, 종교와 황제권」이라거나 그와 유사한 어떤 제목을 붙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서왕모 신앙과 불로장생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뿌리깊은 원망(願望)을 다루고 있지만 좀 더 광범위한 민간계층에서 이러한 신앙이 어떻게 자리잡고 다양한 형태로 분화, 변태하였는지에 대한 기대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현세발복에 대한 강렬한 신앙이 서구 사회의 신앙형태와는 여러모로 다르다면 그 기원적 형태에 대한 모색이나 탐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대신 몇 몇 황제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죽음을 무한히 연기시키려는 일화와 이러한 신앙이 무력에 의한 정복 지배에서 헤게모니의 내면화를 통한 합리적 통치권 강화의 계기로 이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피지배층의 실상을 밝히는 정보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경우 농민을 비롯한 일반 ‘民’의 자취를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경우 책의 분량도 문제가 되겠고 아무리 중국전문연구자라 하더라도 서양인이라는 저자의 한계도 지적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제목이 지시하는 내용을 온전히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두 번 째 특징은 역시 저자가 서양인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거의 매 단원말미에 왕충(王充)의 진술을 결론처럼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고대 중국의 수많은 사상가 가운데 근대 서양인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왕충의 학문적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중국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는 다수의 사상가들의 주장을 반박,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본적으로 서양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서양인의 관점에서 쓴 책인 만큼 저자의 태도를 시비할 일은 못됩니다. 이를 통해 서양인의 사유구조를 다시금 이해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이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 동양의, 혹은 고대 중국의 원형적 사유를 알아봄으로써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을 비판적, 반성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자연, 인간, 국가, 이성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고대 중국인들의 사유구조를 자연, 인간, 국가, 이성의 4가지 범주로 분류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일차적으로 인간존재를 자연, 즉 우주의 거대한 존재질서의 일부분으로 철저히 종속된 존재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욕구충족을 위한 자연의 무분별한 훼손은 금기시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음양오행론에 입각한 생성, 소멸, 재생의 순환적 우주질서의 일부분으로 위치지워진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덧없는 인간가치에 대한 과장된 신뢰에서 비롯된 오류을 지적하는 도가류(道家類)의 사상을 자연과 우주에 대한 중국인의 고대적 사유의 집약으로 보는 것입니다.
무위자연으로 일체의 인위적인 조작을 배격하며 자연질서에 철저히 순응하는 삶을 극단적으로 이상화(理想化)하는 도가류(道家類)의 관념은 오늘날과 같이 문명에 의한 대대적인 자연파괴가 행해지는 현실에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과연 이같은 도가류의 사상이 현대세계의 실효성있는 대안일 수 있는지는 다시금 살펴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한편 사회화된 인간집단의 조화로운 운용, 그 윤리적 잠재력의 고양을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은 儒家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육, 정치, 사회조직의 행동준거를 제시하는 유가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의 성장과 발현보다는 정치집단에 소속된 구성원로서의 덕목을 더 중시하는, 따라서 개인의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을 전제로 한 근대적 사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비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마이클 로이는 이 책에서 전통유가(傳統儒家)는 이른바 ‘질서있는 정부를 위해’ 개인의 향상과 개성의 발휘, 혹은 그 자질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유교의 원형보다는 후대의 주희 등에 의해 재해석되어 체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 성리학 일변도의 통속화한 유교적 윤리에 지나치게 젖어 온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사실 유럽의 기독교를 생각해 보면 이점에 관해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의 기독교교의도 실상은 뿌리깊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의 계급사회의 기성질서를 옹호하는 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근대이전의 서구 역시 동양의 가부장 질서 못지 않은 불평등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일련의 부르조아 혁명을 거치면서 교회의 자구책으로 자신들의 경전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여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여 왔습니다. 말하자면 동양 역시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외부, 즉 서구의 사상에서 해답을 찾으려 할 일이 아니라 동양의 전통 사상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대에 상응하는 실마리를 찾아서 부단히 갱신하는 태도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산다’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자신의 전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함부로 매질하는 일부 이 땅의 식자들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유가류(儒家類)와는 다른 흐름도 있습니다. 진나라의 등장으로 개인의 도덕적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국토와 민을 보호한다는 국가 본연의 사명을 게을리 할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현실주의적 인식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던 것입니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좀더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주장하는 이들, 이른바 법가류(法家類)로 불리는 일군의 사상가들은 우주와 자연에 대해서도 종래와는 현저히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한가한 태도(?)를 벗어나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조작을 통해 자연력을 최대한 이용, 또는 지배하여 더 풍부한 자원의 획득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합니다. 이들의 사상은 어쨌거나 다수의 피치자의 처지보다는 역사에서 훨씬 더 크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는 통치자의 처지를 주로 고려에 둔 이론이고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기원 1세기경에 위의 세 가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전개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은 이 점에 저자의 호의와 관심이 더욱 기울어지는 듯하다. 즉 자연과 우주, 개인과 집단에 대한 교조보다는 이성을 따라 미신적인 행위와 관념 대신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 탐구와 설명을 요구하는 경향의 발생에 주목하는 것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이같은 지적인 접근 태도는 인간의 성공과 야망을 향한 비의적 힘에 대한 고대의 신앙에 대해서도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성적 탐구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저자는 기원 1세기에 활약한 왕충(王充)을 꼽고 있는데 그의 회의주의와 미신의 부정, 사물과 자연현상에 대한 합리적 해석의 요구 등의 태도를 루크레티우스(Lucretius)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도 ‘아직 사람도 섬길 수 없거늘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한 것처럼 유가의 사상가 역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논하기 보다 현실적 인간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탐구하고 해결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동양 합리주의의 계보에 대한 좀더 철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4. 신과 사후 세계
고대 중근동 지방에 기원을 두고 오늘날 서양은 물론 비서구 사회에까지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있는 유일신 신앙은 고대인류의 사유라는 관점에서 따져보면 매우 예외적인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연력을 추상화한 여러 계급과 신분의 신들이 존재하고 이들 신들의 세계에도 인간 세계와 같은 대립과 쟁패가 일어나고 있으며 인간들은 이 신들을 집단적으로 숭배하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비록 신들간에 계급이 있어 좀더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최고신의 존재가 상정될지라도 여타의 다른 신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유일한 숭배의 대상으로 독점을 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의 경우도 다양한 신과 귀신을 섬깁니다. 이들 신들은 특정 지방에서만 신능((神能)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風雨와 같은 자연력을 형상화한 신, 부엌이나 길쌈 같은 직능을 주관하는 신도 있습니다. 이 모든 신들을 통솔하는 최고신으로 중국인들은 「天」이나 「帝」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술한대로 이들 「帝」나 「天」은 다른 하위신들을 배척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각기 직능에 따른 조화로운 질서를 존중하고 최고신 자신도 이러한 질서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에 비해 인간의 영혼은 魂과 魄, 두 요소로 구분되는데 이 혼백은 인간의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합해 있지만 육신의 기능이 멈추면 혼은 하늘 또는 허공으로, 백은 땅이나 지하의 어느 곳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사후의 세계에 대한 신앙형태가 온전히 기록된 문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서양문명에서의 사후세계 신앙형태를 기준으로 중국 또는 동양인의 사후 신앙형태를 살피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데 기독교의 여러 문헌에서 보이는 내세에 대한 매우 구체적으로 완결된 구조의 전승, 죽음과 부활에 대한 관념등이 중국 문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의 내세에 대한 관념을 굳이 분류하자면
1) 동해 어느 곳에 있다는 불로장생의 봉래산 또는 봉래섬
2) 불교적 관념의 표현이라고 여겨지는, 서왕모가 지배한다는 서방세계
3)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서양식으로는 지옥에 좀더 가까운 곳으로 여겨지는 지하 어느 곳의 황천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은 단지 고대인의 원시적 생사관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고대 중국의 통치질서의 정립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5. 황제권의 확립과 내세관
불교도입 이후의 고대 신라왕조가 자신들과 불교 교의를 일치시킴으로서 왕권강화와 부국강병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고대 삼국의 삼국정립의 상황에서 가장 왜소한 처지에 놓여있던 신라가 법흥왕에서 진흥왕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나라를 불국토로 이념화하고 왕 자신을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동일시함으로서 고대국가의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왕조들도 중국인들의 의식에 자리잡은 여러 신들의 권위를 빌어 단지 우세한 폭력을 바탕으로 왕조를 이룩한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알다시피 효과적인 통치란 언제 와해될지도 모르고 어디서 더 강력한 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무력에 의지하기보다는 지배자들의 정통성과 권위가 피치자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기존의 통치질서에 의문을 품지 않게 하는 이른바 헤게모니 장악에 의한 통치입니다. 이렇게 통치질서의 내면화를 위해 흔히 동원되는 것이 신적 권위와 통치자의 이념적 일치입니다. 통치자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싫은 최고 권위의 신이 부여한 사명을 시행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신의 가호와 조력에 의지하여 무력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계의 지배인 최고신의 대리자로서 지상에 현현한 황제야말로 장구한 미래에나 다가올 이상세계를 지상에게 구현할 권능을 지녔다는 이념에 출발하여 혹시 있을지도 모를 신들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백성을 대신하여 신들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서 백성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를 통해 황제는 최고신과 부단히 교감할 뿐 아니라 황제의 후계자들도 이러한 권능을 물려받음으로써 天子 즉 하늘의 아들로서 그 권위를 상속받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권능을 부여받은 천자의 악행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진로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진로의 대가는 황제의 비명행사나 왕조의 몰락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만 전체 백성의 삶에 직접 피해를 입히는 큰 재앙으로 나타납니다. 까닭없이 지속되는 가뭄이나 홍수, 역병의 창궐, 오랑캐의 잦은 침략 등은 이러한 황제의 일탈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되어 황제의 대오각성을 촉구하거나 역성혁명의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고대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확립하고 영속시키기 위해 취한 여러 가지 조치와 일화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산일(散逸)된 고대 중국인들의 죽음과 내세에 관한 관념들이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많은 문헌들이 경전과 그 밖의 등급으로 분류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중국, 중국인과 가장 오랜 동안 역사적, 문화적 근친성을 갖고 살아 온 우리 나라의 처지에서 때로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잊고 소홀히 지내왔다거나, 지난 반세기 동안의 냉전시대의 단절에만 핑계 대기에는 부족한 우리 학계의 태만으로 인해 중국문화의 여러 분야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중국사의 개설서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읽혀질 만한 중국관련 본격적인 연구저작은 거의 대부분 일본 저자의 노작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를 계기로 좀더 많은 전문연구자들이 나와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거대한 상품 교역시장으로 등장한 중국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절령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조원 시 재정, 시장 지지자들만 모아낸 돈 아니다" (0) | 2008.03.06 |
---|---|
2솔디면 살 수 있는 知識 (0) | 2008.02.26 |
국가와 테러리즘 (0) | 2008.01.04 |
2007행정사무감사, 시민방청단 어떻게 평가했나? (0) | 2008.01.03 |
순신불사와 좌파정권 종식? (0) | 2007.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