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한겨레신문 [기고] 사북 30년, 죽음에서 생명의 땅으로 / 황인오

소한마리-화절령- 2010. 4. 19. 07:22

[기고] 사북 30년, 죽음에서 생명의 땅으로 / 황인오

한겨레 | 입력 2010.04.18 21:10

 




[한겨레]

1980년 4월21일 지하 수백 수천 미터의 탄갱에서 죽음과 맞닥뜨린 노동에 종사하는 강원도 사북의 5000여 탄광노동자들이 항쟁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광부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권력과 기업 그리고 이들의 주구였던 어용노조 삼각동맹의 기본권 유린에 항거하여 최소한의 사람대접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만 4일 동안 사북 일대를 해방구로 만든 노동자들은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200여명의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하여 살인적 고문을 가하고 30여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고 난 뒤에도 인생막장이라는 탄광에서조차 재취업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항쟁 20년이 지나 만들어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과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에 명예회복을 신청한 21명의 노동자 중 겨우 2명만이 인정되었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소신도 없이 여기저기 눈치 보는 데 바쁜 위원회의 보신주의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과 일하는 사람들의 헌법적 기본권의 가치를 일깨워 준 사북노동항쟁이 30년이 되도록 역사적 무게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한 세대가 넘은 사북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에 이 나라의 양심세력과 관계당국은 역사와 정의에 입각한 올바른 응답을 보내야 할 것이다.

사북 30년은 이 나라 산업화의 일선에서 피와 땀으로 고통받고 희생해 온 이들의 역사이다. 90년대 들어 석탄합리화 정책에 따른 잇따른 폐광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은 실직사태를 맞았고 탄광지역은 공동화되었다.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1995년 3월3일 궐기한 이른바 3·3사태로 사북 일대 폐광지대가 내국인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고원관광지대로 개발되었다. 어쨌든 지역경제는 살게 되었으나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30년 전 광부들은 전체 산업노동자 평균 사망재해율의 3~10배에 이르는 희생을 겪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은 선진국 성인의 도박중독률보다 2~3배에 이르는 사행중독 진원지의 하나가 되었다.( < 한겨레 > 2010년 4월10일치 참조) 그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 대비 사행산업의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0.45%보다 훨씬 높은 0.61%에 이르며 사행산업의 종류도 경마·경륜 등 모두 7종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한때는 높은 산업재해와 진폐증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지역이 도박중독으로 수천명의 카지노 노숙자를 양산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으로 몰아넣는 곳이 되었다.

사행산업이 번성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복지체계가 미흡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은 데 따른 것이다. 4대강 삽질에 퍼붓는 나랏돈을 의무급식과 같은 복지재원으로 돌려야 할 문제이나 폐광지역 살리기 역시 접근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폐광지역특별법'의 시효가 2015년에 만료되는 것을 기화로 빗발치는 각 지역의 내국인 카지노 개설 요구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행산업 비중을 낮출 대책을 세워야 할 마당에 더 많은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하는 것은 이 나라를 도박천국으로 만들어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자는 것이다.

카지노 운영을 위임받은 강원랜드와 관계당국은 도박산업의 비중을 낮추고 건강한 가족·생명관광분야로 주력을 전환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산업에서 삶의 피로에 지친 이들의 생명을 되살리는 청정 강원남부지역의 생명관광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역민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황인오 전 가톨릭광산문제상담소 소장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 | 입력 2010.04.18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