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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협치’ 성공으로 이끌 열쇠는

소한마리-화절령- 2010. 8. 6. 15:24

[커버스토리]‘민관협치’ 성공으로 이끌 열쇠는

 

 

2010 08/03위클리경향 886호

ㆍ아직은 걸음마 수준, 상호 신뢰와 참여·협력이 관건

7월 22일 오후 3시 40분쯤 정보연 도봉시민회 대표는 도봉구청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이날 오후 4시 도봉구청에서 열린 도봉발전협의회(도발협) 준비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도발협은 지방선거 이후 도봉구 구정 운영에서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통로를 모색하기 위해 만든 회의체다. 지방자치단체 민관협치를 모색하기 위한 거버넌스 기구인 셈이다. 도발협은 임시기구일 뿐 정식 협의체는 아니다. 정식 협의체가 발족하려면 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자체 민관협치 시대가 열리면 예산을 낭비하는 전시 행정이 발붙일 자리는 사라진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8일 성남시 신청사 개청식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성남시의원. |연합뉴스


기자가 참관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도봉구 관계자는 난색을 표명했다. 말 그대로 준비모임에 불과해 대외적으로 알릴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및 지역 지자체에서는 광역 3곳, 기초 28곳에서 공동정부 구성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여러 정당이 시정에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에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서 지자체 정부 운영의 중심을 ‘협치’로 돌려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고, 민선 5기 지자체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도봉구 사례처럼 출범 후 갓 한 달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어서 앞으로 지자체 민관협치가 어느 수준에서 어떤 형태로 구체화할 것인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감대 형성됐지만 구체화 예단 어려워
구체화 수준에서는 노원구가 도봉구보다 조금 앞서 있다. 최근 관내 소상공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 저지 투쟁에 적극적인 힘을 실어 주고 있는 노원구는 선거 이후 시민들을 대하는 구의 달라진 모습을 실감하게 했다. 이처럼 주민 참여에 개방적인 노원구의 입장은 정책협의회가 본격적으로 구성되면 좀 더 도드라질 것으로 보인다.

노원구와 이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야4당은 애초 선거 전에 합의한 대로 총 11명이 참가하는 정책협의회를 이른 시일 안에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조례안은 이미 작성돼 관련 당사자들의 검토를 거치고 있다.

민관협치와 관련해 노원구가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는 것은 지방의제21 사무국을 설치하는 문제다. 의제21은 지난 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가 각국 정부에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실천 지침을 세우도록 권고한 데 따라 만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참여정부 시기에 대다수 지자체가 의제21을 추진하기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든 바 있다. 노원구는 지방의제21 사무국을 설립, 민·관 거버넌스의 전진 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지방의제21 사무국을 설치한다는 데에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의제21의 행정 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지자체 의제21은 일반적으로 구 기획예산과 아래 들어가 있다. 그러나 노원구 시민사회단체는 의제21 사무국을 구청장 또는 부구청장 직속으로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전국 지자체의 의제21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실제적인 영향력이 없는 탓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태선 위원장은 “노원구의회에서 여야 비율이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지 않은 데다 구의회 의장도 한나라당 출신이다. 애초 선거 전 합의대로 구 예산 일부를 주민자치 예산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정책협의회를 통해 SSM 반대나 무상급식 같은 생활 정책을 통해 주민들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주는 사업부터 추진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전임 시장 시절에 건립된 호화청사를 매각하겠다는 발표로 주목을 받은 성남시의 경우는 이렇다 할 만한 결과물이 아직까지 없다. 민주노동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이재명 당선자 인수위원장직을 맡은 김미희 전 민노당 최고위원은 “시정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의회가 열리면 9월께 조례를 만들어 추진한다는 데 포괄적으로 합의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시정개혁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없다.

부천시의 경우 선거 전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간 합의 내용이 고양시를 제외하고는 공동정부 구성이 논의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수준이었다. 선거 전에 합의된 6개 분야 29개 항목의 공동정책을 내놨고, 공동정책 내용에 선거 승리 후 시정운영공동위원회(공동위)를 구성해 시정의 주요 정책을 논의한다고 명시했다.

노원구 지방의제21 사무국 우선 설치

6·2 지방선거 이후 민관협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야권연대에 던진 한 표는 주민자치 실현이라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강윤중 기자

7월에는 공동위 구성을 위한 몇 차례 준비모임이 있었다. 공동위는 8월 초에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합의문에서 10명 안팎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한 공동위 구성은 11명으로 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공동위에는 민주당에서 3명,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에서 2명씩, 진보신당에서 1명이 들어간다. 당연직 위원장(김만수 현 시장)과 시장이 속하지 않은 정당 대표자(최순영 전 민노당 국회의원)가 공동위원장이 된다.

부천시는 선거 전에 ‘낮은 수준의 공동정부, 높은 수준의 민관협치’를 구호로 내걸었다. 공동정부와 민관협치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은 공동위다. 문제는 공동위의 위상이다. 공동위의 위상을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법적 제약이라는 걸림돌 때문이다. 공동위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공동위 설립을 규정하는 조례 형태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조례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법적 자문기구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부천 지역 선거연대 논의에 참여한 황인오 전 부천시민연합 대표는 “상근자를 두는 등 공동위를 상설화하려면 행정안전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현 정부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부천시는 임의기구 형태로라도 공동위를 일단 출범하고 조례 개정은 상황을 두고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부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조례를 만드는 데 너무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례를 통해 입법적 뒷받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공동위 운영은 결국 참여 주체들의 정치적 의지에 크게 좌우되는 문제다. 이 때문에 일단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부터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29개 정책에 포함돼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주민참여 예산이 그것이다. 가능성은 높다. 황 전 대표는 “2012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2년 동안 공동정부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야당 모두의 관심사다. 민주당을 포함한 정당들은 생활정치 공약을 이행하는 데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활정치 공약을 순조롭게 이행하는 것은 그러나 민관협치와는 또 다른 문제다. 부천 지역 시민사회단체에는 민주당이 공동정부 구성 제안을 흔쾌히 받은 것이 오히려 민주당이 공동정부나 민관협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황 전 대표는 “지자체 민관협치가 성공하려면 나눠 먹기라는 비난이나 발목 잡기라는 덫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고, 거버넌스 기구가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위원회 설립 규정 법적근거 없어
지자체들의 민관협치 실험은 논의 수준도 다르고 이행 속도도 제각각이다. 민관협치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고 갈 열쇠는 무엇일까. “로컬 거버넌스의 핵심은 협동과 협치다. 상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낮은 단계의 사업부터 서로 협력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시스템은 나중에 구축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일단 제도부터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할 만큼 해 보고 최종적으로 제도를 만든다.” 강내영 풀뿌리 자치 연구소 ‘이음’ 객원연구원의 말이다.

누군가는 지자체 민관협치를 위해서는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관료적인 행정에 길들여져 있는 공무원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강 연구원은 “단체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로컬 거버넌스의 주체가 될 시민의 역량이 중요하다.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면 단체장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변하는 정치 지형에 휘둘리게 된다. 민관협치를 시도하려는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성과에 급급해 하지 말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로컬 거버넌스

일본의 지자체는 주민들이 지자체 행정의 주체가 되는 민관협치 부문에서 한국보다 경험이 오래 됐다.

일본의 민관협치는 도시 집중과 시설 부족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후반에 일본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학교와 병원 등 도시 지역의 공공시설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지자체에 필요한 시설을 지어달라고 요구한 것이 한국에 잘 알려진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의 시초다.

1970년대에는 마치즈쿠리가 본격화했다. 도쿄 세타가야 구가 좋은 사례다. 세타가야는 인구 86만명의 자치구로, 1970년대 구의 일방적인 목조주택 재정비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격렬한 갈등을 빚었다. 갈등은 몇 년 동안 지속됐다. 구가 먼저 해법을 내놨다. 주민들에게 재정비 안을 짜 보라고 제안했다. 직접 재정비 안을 짜는 데 한계를 느낀 주민들은 구에 전문가를 파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구는 주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사업안을 만들어 오면 이를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처럼 주민들이 지역 전문가와 함께 자치단체에 주민편익 증진을 위한 사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5년 고베 대지진은 일본 지자체 민관협력에서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고강도 지진이라는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지자체 행정이 마비됐다. 행정 공백을 채운 것은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힘을 실감한 일본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NPO) 지원법을 통해 NPO를 지원했다.

NPO 지원법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시민 참여는 지자체의 재정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강 연구원은 “재정 압박에 시달리던 지자체가 공공서비스 제공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시민 참여의 통로를 열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민관협치는 ‘참여’ 단계를 넘어 ‘참획’ 단계로 진화했다. 참획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가한다’는 뜻이다. 일본 도쿄 도의 미타카 시 경우 1999~2001년 제3차 도시계획을 짤 때 주민 370여 명이 참여했다. 도시계획 입안을 위해 10개 분과에 걸쳐 500회 이상 회의가 열렸다. 도시계획에 건설업자의 입김이 작용하는 통로를 처음부터 배제한 것이다.

일본 민관협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NPO 지원센터다. 시민들의 참여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일본에서는 중간지원 조직이라고 부른다. NPO 지원센터는 지자체 행정 조직과 시민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구실을 하면서 양자의 의견을 조정한다.

민관협치의 성공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본의 마치즈쿠리는 무수한 실패의 산물이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지역 현안을 놓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민하고 실패하면서 만든 모델이라는 뜻이다. 강내영 연구원은 “민관협치에 관심이 있는 공무원이나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선진 사례를 많이 찾는다. 하지만 100개 마을에는 100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민관협치의 결과 무엇이 변했는지 결과를 보지 말고 민관협치가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쳤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