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스크랩] 백두대간 함백의 겨울능선에서(만항재-함백산-두문동재)

소한마리-화절령- 2011. 7. 3. 16:05

 

백두대간 함백의 겨울능선에서

(만항재-함백산-두문동재)


 

 


어젯밤 혹시나 산에 갈수 있을까하여 배낭을 밤 12시 넘어 꾸려놓고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일 어쩌면 산에 갈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잠에 들었다. 그간 하얗게 눈 덮인 시내주변 산을 바라보며 이번겨울에 한 번도 눈을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에 눈꽃산행을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난가을부터 시작한 영남알프스 전 구간 산행을 마친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정도 생기고 몸도 안 좋고 하여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어느덧 두 달 동안 딱 두 번 산행한 것이 고작이고 최근 한 달  넘도록 단 한 번도 산그림자를 밟아본 적이 없어, 문득문득 산의 흙냄새와 솔향기가 나는 듯 하고 산동무들이 어른거려 산이 그렇게 그리운 줄 몰랐다.


아침 5시 50분에 맞춘 알람이 잠을 깨운다. 아내와 다른 방에서 잔 나는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오니 새벽기운이 서늘하다. 아내 잠을 깨우지 않고 살그머니 나온다는 것이 이번에도 점심으로 보온통에 달랑 맨밥만 가지고 반찬은 냉장고에 둔 채로 나오고 말았다. 오늘도 영락없이 다른 산님들 신새를 지게 되었다. 그래도 컴컴한 새벽길을 걸어가는 기분은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지난겨울 만항재에서 정암사로 산행했을 때 싸리재(두문동재)로 하산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던 생각에 이번에는 새벽잠을 마다했는지도 모르겠다.


함백산으로 향하는 오전 내내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구름 낀 날씨였지만 고한 가까이에 이르자 날씨는 비교적 맑아지기 시작하여 조망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암사를 지나 꼬불꼬불한 가파른 고갯길을 버스는 머플러에서 배기가스를 풍풍 한숨씩 뱉어가며 겨우겨우 만항재에 올라선다.

 

 

 

만항재(늦은목이)는 강원도 태백시,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이 만나는 고개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된 도로로는 가장 높은 고개로 해발 1,330m이다.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 높다. 겨울철 결빙기에는 가장 먼저 통행이 금지되는 곳이기도 하다. 맑은 날 밤 이곳에서 하늘을 보면 별이 쏟아지는 듯한 신비스러움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태백산 쪽으로 내려가면 혈리에서 어평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 상에 화방재(花房嶺, 일명 어평재. 해발 936m)라는 고갯길이 있다.

 

 

 

 

이번겨울 처음 밟는 눈길을 경사가 거의 없는 산길과 태백선수촌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다, 함백산 정상 밑에서 아이젠을 채우고 가파른 산행을 한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다른 산님들을 따라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초반이라 힘이 있어 그런대로 정상에 오르는데 문제가 없었다. 남한에서는 6번째로 높다는 함백산 정상(1572.9m)에는 수없이 많은 통신탑들이 주위의 산들이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곳임을 웅변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과연 정상에 오르니 탁 트인 조망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구나 오늘은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조망이 아닐까. 누가 금강산도 보인다고 하고 지리산도 보인다고 하니 누구는 하느님을 보았다고도 한다며 농을 한다. 바람 한 점 없고 햇볕마저 따끈하게 내려 쪼여 산행에는 더없이 좋다. 

 

 

정상을 지나 중함백을 가는 길에 오래된 주목 한그루가 여전히 길을 지키고 있다. 변치 않는 그 주목 한그루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제자리를 지켜왔을까. 바람 불면 부러지는 가지들은 우리들이 직장에서 툭하면 잃어버리는 일자리와도 같고, 어느날 폭풍우 불거나 폭설에 뿌리채 뽑혀버리는 가련한 나무의 종말은 갑자기 다가온 병마나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는 우리인생과도 같은데 변하지 않는 주목 한 그루가 나에게 무언가 화두를 던져준다.

 

 

적조암 내려가기 직전의 쉼터에서 일행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다른 산님들의 반찬을 축낸다. 산님들이 준비해온 뜨거운 약초차에 보약주 한잔씩까지 얻어먹으니 함백의 눈이 다 녹아내릴 듯 훈훈해진다.

 

 

은대봉 가는 길의 눈은 참으로 희고 곱다. 아직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아서 산행 길도 티끌 없이 맑고 순백하다. 우리가 눈을 좋아하는 것은 순백의 아름다움이 주는 순수함일 것이다. 그런 눈은 어른도 어린이와 같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지닌 마력이 있다.  햇살에 반사된 눈은 아마도 사람을 거부하는 듯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은대봉(1442.3m)을 지나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다행이 하산길이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겨울철 조심은 해야겠지.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두문동 앞산 쪽으로 펼쳐지는 산의 전경이 수묵화 한편이다. 절묘한 흑백의 채도로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힘찬 선의 흐름과 중첩이 천하의 걸작이다.

역시 산행은 겨울 산행이야!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오니 두문동재다.




만항재-함백산-두문동재

대략 8km    4시간

<2008년 1월 29일 산행>



출처 : 석정한담 (石井閑談)
글쓴이 : 石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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