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9일 오전 5시20분. 비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내는 출근길 배웅을 포기했다. 올해 초 시작한 간호조무사 일이 많이 힘든 눈치다. 5시50분. 인천 계양구 효성동 집을 나섰다. 어제는 온종일 집에 있었다. 삼화고속 버스 노동자는 격일로 일한다. 한 달 만근 기준인 13일을 꼬박 일해 약 185만원을 받는다. 회사는 기본근무 8시간, 연장 8시간, 야근 3시간 하루 총 19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살인적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틀에 19시간을 근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시급은 4727원이다. 법정 최저시급보다 400원가량 많다. 나는 입사 8년차다.
6시20분. 집에서 5km 거리에 있는 용종동 계산영업소로 출근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차고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다. 대중교통으로는 출퇴근이 불편해 대부분 스쿠터나 자가용을 이용한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동료는 기름 값으로 한 달에 40만원이 든다. 그렇다보니 직원 대부분이 격일제 근무를 선호한다.
급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돈통(요금통) 달고, 근무일지 챙기고, 2500번 버스 시동을 켜니 6시50분이 됐다. 서울 종로에 도착하니 8시46분. 손님들의 항의가 거세다. 빗길 탓은 아니다. 솔직히 8시10분까지는 올 수 있었다. 평소처럼 경인고속도로 신월동 고개에서 '찔러박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갓길이 아닌 1차선, 2차선으로 '정당'하게 오면 원래 이만큼 시간이 걸린다고 고객에게 알리고 싶었다. 준법 투쟁에 공감하는 동료도 늘고 있다. 1500번을 모는 동료 김 아무개씨(45)는 요즘 인천 기점에서 서울역 종점까지 55분이면 가던 길을 75분 걸려 간다. 어떻게 20분이나 늘었냐고? 간단하다. 편법을 쓰지 않고 정도를 지키면 된다.
식사는 김밥 한 줄로 때우고 운전하라?
솔직히 처음에는 윗사람한테 혼나는 게 무섭고 식사 5분 더 하고 싶어서 난폭운전을 했다. 운행을 빨리 끝내면 그만큼 더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일찍 들어오면 직원이 김밥 한 줄을 들고 서 있다. 식사는 이걸로 때우고 또 운행 나가라고. 차고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고속도로로 내몰린다. 운행 횟수가 일일 6회에서 7회로 늘어나면서다. 7회는 애초부터 달성 불가능한 횟수다. 1회 왕복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30분~4시간이다.
회사가 운행 횟수를 늘리라고 영업소를 압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요즘은 입석 손님도 태운다. 정류장 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신도시 입주민이 인천시청에 민원을 넣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시청에 밉보이면 회사도 망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회사는 돈이라도 더 벌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혹여 입석 승객을 태우면 사고가 날까봐 스트레스가 두 배가 된다.
오후 1시32분. 두 번째 운행을 마치고 인천 차고지에 돌아오니 처음 보는 얼굴이 꾸벅, 인사를 해온다. 신입이다. 또 한 동료가 떠났구나! 해줄 말이 많았지만 28분 후인 2시 정각에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사고를 내지 말라는 충고부터 건넸다. 실제로 사고를 내서 그만둔 옛 동료가 많다. 해고는 아니었다. 사고를 내면 영업소장이 묻는다. "면허 살릴래, 사표 쓸래?" 대부분 후자를 택한다. 나도 2004년, 입사 2개월도 안 되어 사고를 냈다. 부평영업소 차고지에서 버스를 꺼내다가 오른쪽에서 들어온 승용차와 충돌했다. 입사 3개월 안에 사고를 내면 무조건 잘리던 시절이었다. 80만원을 자비로 물고 운전대를 지켜냈다.
오늘 점심시간은 낮 12시~12시41분, 저녁시간은 오후 4시53분~5시15분이었다. 근무 중 볼 일은 세 번 봤다. 첫차 운행 직전과 점심시간에 차고지에서, 그리고 오후 7시쯤 서울 서소문공원에서. 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은 공원에 차가 서자 의아해했다. 하지만 화장실 다녀왔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손님들에게 해명은 하지 않았다. 양치질은 한 번도 못했다. 분초를 다투는 버스 노동자에게 이쑤시개는 근무용품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다. 삼화고속 버스 노동자 600여 명의 평균 나이는 45세. 벌써부터 허리디스크, 방광염, 만성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동료가 많다.
다음 날 0시35분, 종점에 도착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차고지에 도착하는데 15분이 걸렸다. 돈통을 따고, 버스를 주차했다.
새벽 1시30분. 집에 도착해 곤히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회사는 적자라 울상이고, 노조는 회사가 재무제표를 유리하게 계산해 노동자를 속인다며 불만이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삼화고속 직원이라면 누구나 안다. 버스 노동자가 근로기준법대로 일하면 사고율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을. 노동자는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승객은 탑승 내내 가슴 졸일 이유가 사라진다. 아마 회사도 이익이지 않을까? 사고율이 줄면 보험료가 줄어들 것 같다. 내일은 근무가 없다. 푹 자고 싶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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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20분. 집에서 5km 거리에 있는 용종동 계산영업소로 출근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차고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다. 대중교통으로는 출퇴근이 불편해 대부분 스쿠터나 자가용을 이용한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동료는 기름 값으로 한 달에 40만원이 든다. 그렇다보니 직원 대부분이 격일제 근무를 선호한다.
ⓒ시사IN 조남진 10월12일 인천 서구 석남동 차고지에서 한 파업 참가자가 운행을 멈춘 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
식사는 김밥 한 줄로 때우고 운전하라?
솔직히 처음에는 윗사람한테 혼나는 게 무섭고 식사 5분 더 하고 싶어서 난폭운전을 했다. 운행을 빨리 끝내면 그만큼 더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일찍 들어오면 직원이 김밥 한 줄을 들고 서 있다. 식사는 이걸로 때우고 또 운행 나가라고. 차고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고속도로로 내몰린다. 운행 횟수가 일일 6회에서 7회로 늘어나면서다. 7회는 애초부터 달성 불가능한 횟수다. 1회 왕복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30분~4시간이다.
회사가 운행 횟수를 늘리라고 영업소를 압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요즘은 입석 손님도 태운다. 정류장 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신도시 입주민이 인천시청에 민원을 넣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시청에 밉보이면 회사도 망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회사는 돈이라도 더 벌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혹여 입석 승객을 태우면 사고가 날까봐 스트레스가 두 배가 된다.
ⓒ시사IN 조남진 직장폐쇄 이후 노조원들은 천막 생활 중이다. |
오늘 점심시간은 낮 12시~12시41분, 저녁시간은 오후 4시53분~5시15분이었다. 근무 중 볼 일은 세 번 봤다. 첫차 운행 직전과 점심시간에 차고지에서, 그리고 오후 7시쯤 서울 서소문공원에서. 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은 공원에 차가 서자 의아해했다. 하지만 화장실 다녀왔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손님들에게 해명은 하지 않았다. 양치질은 한 번도 못했다. 분초를 다투는 버스 노동자에게 이쑤시개는 근무용품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다. 삼화고속 버스 노동자 600여 명의 평균 나이는 45세. 벌써부터 허리디스크, 방광염, 만성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동료가 많다.
다음 날 0시35분, 종점에 도착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차고지에 도착하는데 15분이 걸렸다. 돈통을 따고, 버스를 주차했다.
새벽 1시30분. 집에 도착해 곤히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회사는 적자라 울상이고, 노조는 회사가 재무제표를 유리하게 계산해 노동자를 속인다며 불만이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삼화고속 직원이라면 누구나 안다. 버스 노동자가 근로기준법대로 일하면 사고율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을. 노동자는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승객은 탑승 내내 가슴 졸일 이유가 사라진다. 아마 회사도 이익이지 않을까? 사고율이 줄면 보험료가 줄어들 것 같다. 내일은 근무가 없다. 푹 자고 싶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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