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반찬 없는 밥상의 아이들

소한마리-화절령- 2011. 10. 28. 20:36

[낮은목소리] 밥상 위엔 김치 하나, 굶지만 않으면 된다고요?

등록 : 20111027 19:39 | 수정 : 201110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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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없는 밥상의 아이들

 

 

밥맛이
또 딱 떨어졌다
웬일인가 하고
밥상 위를 살펴보니
아침에 먹다 남은

김치 한 가지

 

20여년 전 한 초등학생이 썼다는 ‘점심’이라는 제목의 시다. 가난한 현실에 대한 슬픈 마음을 담담한 어조로 간명하게 표현했다는 찬사와 함께 이 시는 국어교사들 사이에서 학생 작품의 ‘좋은 예’로 활용되어 왔다. 시를 쓴 아이의 이름은 모른다. 그가 김치 외에 다른 맛있는 반찬을 먹고 살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2011년에도 김치뿐인 밥상을 마주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전날 아침과 저녁을 라면으로 먹었다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는 원망이 가득한 눈을 들어 “선생님이 우리 집 반찬 없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대신해 밥을 차려온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답하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욕구불만에 시달리면서도 “괴롭다”고 말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반찬만 좋은 거 나온다면
치킨만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찬이 없어서 화가 나요”

열두살 성우(가명)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쟤가 내 말을 안 듣잖아요!” 동갑내기 친구를 실컷 때렸다. 지난 24일 오후 5시 서울 구로구의 파랑새지역아동센터에 울음소리와 씩씩거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성우가 센터에 온 뒤로 반복되는 일상이다. 성태숙 센터장이 성우를 껴안아 진정시키며 말했다. “성우야, 화가 많이 난 것 알고 있어. 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화내기 전에 선생님이랑 의논하기로 하자.” 숨을 몰아쉬던 성우가 대뜸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반찬 없는 거 해결할 수 있어요? 못하잖아요!”

성우는 뭘 먹고 살고 있을까. 성우에게 물었다. 일요일인 지난 23일, 성우는 아침에 일어나 빈 냉장고를 열었다. 만든 지 오래된 어묵볶음과 김치가 있을 뿐이었다.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허기는 가셨다. 점심이 되자 또 배가 고팠다.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닫는 주말은 그곳에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에게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냉장고를 또 열었다 닫았다. 다행히 오늘은 냉장고에 우유와 시리얼이 있다. 시리얼로 점심을 먹었다.

뱃속도 마음도 허전했다. 허전함을 채워준 것은 사촌형이었다. 오후에 중학교에 다니는 사촌형에게 불려 나가 함께 피시방에 갔다. 신나게 때리고 부수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욕설도 자연스럽다. 게임을 하다가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저녁은 집에 와서 먹었다. 또 라면이었다.

성우의 어머니(52)는 두번째 결혼에서 성우와 성우의 여동생(11)을 낳았다. 성우 아버지는 가난하고 폭력적인 남자였다. 매일같이 구타를 당하면서 성우 어머니는 심신이 약해져갔다. 성우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맞았다. 성우 어머니는 성우를 지켜주기에 너무도 약했다. 어머니는 갈수록 종교에 심취해 집안을 등한시했다. 부모는 이혼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성우의 키는 140㎝, 몸무게는 27㎏에 불과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집계한 2010년도 초등학교 6학년 평균 키는 150.24㎝, 몸무게는 46.12㎏이다. 성우는 평균보다 키가 10㎝ 작다. 몸무게는 평균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후드티셔츠를 걸친 성우의 몸은 더욱 왜소해 보였다.

건강보다 심각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성우의 정신 건강이다. 성우는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 복도에 뱉은 침을 닦으라는 여선생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 한차례 전학을 했다. 폭력의 질이 초등학생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24일 교사들의 요청으로 박진아 구로구 정신보건센터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센터를 방문해 성우와 상담을 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보통 중고등학생이 되어야 볼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반항장애가 관찰되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 등 다양한 이상이 발견됐어요. 하루빨리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많고 행동이 과격해 이대로 자란다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까지 발전할 수 있겠어요.”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조심스레 진단했다.

못 먹고 자란 것도 아이의 상처에 영향을 주었을까. 박진아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구강기에 지속적으로 욕구충족이 안 된다면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맛있는 음식’으로 표현되는 욕구를 충족받아본 경험이 없는 것이 아이의 분노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우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다. 치킨, 삼겹살,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 등심스테이크, 생선튀김…. 끝도 없이 음식 이름이 튀어나왔다. “반찬만 좋은 거 나와도 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치킨만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저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어쩔 수가 없어요.”

 

 

절대빈곤의 고민을 넘어
즐겁게 밥먹는 나라 만들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고민할 때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정희(가명)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좁고 어두운 길 끝의 작은 문을 열면 작은 부엌과 방이 나온다. 방에는 정희 어머니(48)가 부업을 위해 쌓아놓은 지퍼더미가 한가득이다. 25일 밤 9시, 지퍼 심 끼우기 작업을 하는 어머니 옆에서 정희와 정희의 오빠(12)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 공간이 좁아 다리를 다 펼 수 없다. 수명이 다한 20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화면의 절반이 누렇게 나온다.

정희는 겉보기에는 신체 건강한 40대 부모 슬하의 막내딸이다. 아버지가 손가락에 장애가 있어 2급 장애인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별 무리가 없다. 어머니도 특별한 육체적 질병은 없다. 그런데도 정희는 스스로 밥상을 차려야 한다. 반찬을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밥상 위에는 밥과 달걀프라이가 전부다. 컵라면으로 때우는 날이 더 많다. 혹시라도 이웃에서 김치를 가져다주면 귀한 반찬이 된다. 정희는 밥상을 차려 누워 있는 엄마를 일으켜 세워 밥을 먹는다. 부모에게 뭐가 먹고 싶다든가 뭘 사달라든가 졸라본 역사가 없다.

부모는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정희가 어릴 때부터 술을 마시고 부인을 폭행했다. 정희의 오빠는 아주 어릴 적부터 구타를 당했다. 아버지는 정희만은 때리지 않았다. 정희의 마음은 죄책감과 공포로 병들어갔다. 어머니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지난해 수면제 120알을 삼켰다.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이는 정희였다. 그날 이후로 정희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산다. 엄마 혼자 술 마실 때면 옆을 지키다 취한 엄마를 집에 데려오는 것도 정희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다달이 나오는 48만원에 지퍼 심 달기로 어머니가 벌어들이는 30만~50만원의 돈이 생활비의 전부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기운을 내 시장에 가서 바나나 한 송이를 사왔다. 정희는 아끼느라 먹지 않았다. 오빠가 다 먹고 나서야 정희는 “바나나 다 먹었네…”라고 말끝을 흐렸다.

정희는 얼마 전부터 소아정신과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10년을 사는 동안 두렵고 배고프고 외로운 순간이 너무도 많았다. 김치 하나만 놓고도 아무 불평 없이 밥을 잘 먹는 정희의 마음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느냐고 물었다. 답하지 않기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켜보던 어머니가 고개를 숙인다. “내가 힘내서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데… 쌀을 사기도, 아이들 반찬을 만들어 밥을 주기도 너무나 힘드네요.” 아이들의 척박한 밥상 앞에 아이도 부모도 괴롭다. 지퍼 주문량도 줄어들어 부업도 끊길 위기인 10월,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

 

 

 

#어떤 나라에서 배부를 수 있을까

“선생님, 지금 밥 먹으면 안 돼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선생님 옆을 뱅뱅 돌며 건이(가명·11)가 말했다.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6시까지는 아직 1시간10분이나 남았다. 초등학교에서 낮 12시께 점심 급식을 먹고 5시간을 버텼다. 학교가 끝난 뒤 늑장을 부리다가 센터의 간식시간인 3시30분도 놓친 터다. 배가 고파서인지, 관심이 고파서인지 건이는 선생님 주변을 맴돈다.

건이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온 새터민이다. 북한에서도, 중국을 떠돌 때도 배가 고팠다. 어머니는 중국인과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 한국에서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에 가면 11살 어린이가 배가 고프지 않을지 건이는 궁금하다. 어쨌든 오늘 오후는 참 배가 고프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봤다. “왕돈가스요.” 거실에 있는 샌드백에 발차기를 한참 하더니 건이가 말했다. “근데 다 소용없어요.” 누구를 향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어릴 적 ‘행복한 밥상’의 추억이 있는가. 맛있는 한 끼 식사가 얼마나 내 몸과 마음을 살찌웠는지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매일같이 관심이 메마른 척박한 밥상을 마주하는 아이들이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이향란 한국아동정책연구소장은 “이제 빈곤해서 밥을 못 먹는 절대빈곤을 고민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어린아이부터 홀몸노인까지 즐겁게 밥상을 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밥은 결국 관심이며 사회는 어떤 아이라도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성우와 건이는 파랑새지역아동센터(02-838-5679), 정희는 굿네이버스(1599-0300, www.gni.kr)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