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낮은목소리] ‘결식아동’ 의미 재해석하자 / 최형미

소한마리-화절령- 2011. 10. 28. 20:38

낮은목소리] ‘결식아동’ 의미 재해석하자 / 최형미
최형미 굿네이버스 국내사업부 복지사업팀장

등록 : 201110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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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미 굿네이버스 국내사업부 복지사업팀장
“선생님, 이거 집에 가져가도 돼요?” 방학교실에 참여했던 9살 윤지(가명)가 점심 도시락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녁때 집에 있는 동생과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계시지만 두 분 모두 늦게까지 일을 하시기 때문에 거의 매일을 7살 동생과 둘이 지낸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윤지와 같은 아이들이 많다. 지난해 방학 중 급식을 제공받는 아이들은 48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아동 17명 중 1명꼴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결식’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완전히 굶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 않다. 그러나 빵이나 라면으로 밥을 대신하거나, 부모나 보호자 없이 김치나 달걀 반찬만으로 척박한 밥상을 스스로 차려 먹어야 하기에 서럽고 외로운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오늘날 ‘결식아동’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한다.

결식아동의 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결식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신체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저해하는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동의 건강, 교육, 문화, 심지어는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포함해 아동으로서 누려야 할 많은 권리와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실제로 각종 연구 자료에서도 결식아동의 경우 신체적인 측면에서 일반 아동에 비해 두통과 복통, 감기를 앓는 빈도도 높았으며 심리·정서적 측면에서도 집중력 부족, 자신감 결여, 책임감 부족, 열등감 등이 많고 가정과 학교생활의 만족도와 관심도가 낮다고 보고하고 있다.

굿네이버스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지금까지 방학에 결식 저소득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희망나눔학교 방학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참여한 아이들은 영어·한자 교실을 통한 학습지원, 수영장, 영화 관람, 캠프를 통한 문화체험, 다양한 심리치료 등 통합적인 복지서비스를 받는다. 급식뿐 아니라 아이들의 심리·정서적 측면을 고려하여 문화 프로그램 등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결식아동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단순히 밥을 못 먹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적·정서적으로 건강한 성장과 더불어 아동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쌀이나 식재료 등 현물을 지급하는 방식이나 급식 제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풍요로운 선진 대한민국,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풍요 속의 빈곤처럼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선진 대한민국 국민답게, 단순히 ‘배고프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시선에 머물 게 아니라 복지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 모든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에 무한한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있는 결식아동들을 돕는 일은 바로 우리의 ‘관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잘 몰랐다는 핑계로 우리 아이들의 배고픔과 외로움을 모른 척하지 말고 ‘관심’을 표현하고 필요하다면 주변 전문기관에 연결해 주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