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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지식의 축적물’이란 생각을 뒤집다-ㆍ쿤 (1922 ~ 1996)

소한마리-화절령- 2012. 1. 14. 19:10

과학은 ‘지식의 축적물’이란 생각을 뒤집다

임상훈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ㆍ쿤 (1922 ~ 1996)
ㆍ제반 학문의 사회학적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낸 ‘과학철학자’

20세기는 과학의 시대다. 과학이 인간으로부터 기대와 신뢰를 한 몸에 받고 그 어느 수사법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지식사회를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다. 물론 과학이라는 인간의 의식 활동, 혹은 지식체계가 20세기에 생긴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과학적 지식과 방법론이 비로소 활짝 꽃피워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이 20세기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 때까지 없었던 과학에 대한 철학자들, 또는 과학자 본인들의 철학적 관심이 생겨난 것 또한 20세기다. 요컨대 개별 과학의 대상들이 아니라 과학 자체의 본질적, 방법론적 관심과 연구들이 비로소 이 시기에 줄지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놀랍게도 흔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일반적 생각에 커다란 잘못된 편견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20세기의 활발한, 이른바 ‘과학철학 논쟁’을 낳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생산적 토론들이 일반인들의 상식에도 충분히 전달되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과학에 대한 상식과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해 놓은 실제 과학자들의 방법론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학이라는 용어의 시작은 무릇 학문이 그렇듯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과학 방법론에 근접한 성찰을 했던 최초의 철학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과학의 목적을 인간의 부의 증대로 삼았던 그는 ‘관찰과 사실수집’, 그리고 그를 통한 이론을 도출해냄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베이컨의 과학사상을 르네상스 이후 발현한 근대과학과 관련지어 설명을 한다면 현대과학의 성장과 역사적 맥을 같이하는 더욱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과학사상은 무엇보다 20세기 초 빈에서 탄생한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연결을 지을 수 있겠다. 이들은 경험론에 철학적 기반을 두면서, 철저하게 ‘관찰을 통한 검증’을 통해서만 한 이론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현대 일반인들의 가장 전형적인 과학관을 제시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 그 비슷한 시기에, 실제로 그들과 학문적 교류도 있었던 한 철학자가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새로운 과학이론을 제시했으니 그가 바로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이다.

그에 의하면 과학은 수많은 관찰을 통한 ‘검증’으로 이론적 확장을 더해가는 지식이 아니라, 반대로 단 하나의 ‘반증’이라도 이끌어 낼 수 있는 논리체계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과학의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는 어떤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과거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하면 까마귀라 명명되어 있는 모든 조류를 관찰하면서 이들의 색깔을 검증해보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 세상의 ‘모든’ 까마귀라 불리는 조류들을 다 검증해볼 수 있을까? 포퍼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위의 명제를 진리라고 보기 위한 끝없는 관찰은 무의미한 것이 되며 결코 확증에 이를 수 없다. 반면 이 명제는 논리적으로 ‘모든 까마귀가 검은 것은 아니다’라는 모순명제를 가질 수 있으며, 관찰을 통한 다른 색깔의 까마귀를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주말에는 비가 온다’라는 명제도 모순명제를 가질 수 있지만 ‘주말에는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보면 절대로 모순명제를 가질 수가 없으며 늘 진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퍼에 의하면 이것은 과학이 될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 과학은 진리를 말할 수가 없으며, 진리를 말하는 순간 과학은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과학은 잠시 유보된 오류여야 한다! 많은 예언자적 선언과 신화적 설명, 종교적 진리들이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포퍼를 기점으로 실증적(positive) 과학관이 반증적(negative) 과학관으로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그의 이 획기적인 발상전환은 그 후 과학철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야기로 남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포퍼를 난처하게 만든 것은 한 미국의 물리학자가 (후에 그는 물리학자로서가 아니라 과학철학자로 더 유명해진다) 1962년에 발표한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였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토마스 쿤(Thomas Kuhn)이다.

천재 물리학자였던 쿤은 논리실증주의의 과학관은 물론, 포퍼의 반증가능성론 또한 과학사를 돌이켜보건대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한다. 과연 그가 보아온 역사적 사례들과 더욱 잘 부합하는 과학이론은 어떤 모습인가?

쿤은 과학계 내부의 전통과 진보 사이에 있는 변증법적 투쟁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특정 시기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른바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일 때, 이때는 건강한 과학체계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상과학의 정당성을 결정해주는 기준을 일컫기 위해 그는 소쉬르 언어학에서 유래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표현을 차용한다. 본래 언어학에서 패러다임이란 특정 맥락에서 선택가능한 후보군의 집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철수는 OOO 아이다’라는 문장에서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어휘군은 ‘똑똑한’, ‘즐거운’ 등의 형용사군의 패러다임이다. 정상적인 문법을 보장하려면 이 패러다임의 한계와 규정을 지켜야 하며 그 안에서는 문맥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정상과학 패러다임의 보호 아래에 있는 과학자의 관찰과 연구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소 모순과 대립이 생기는 명제들도 그 패러다임이 지니고 있는 형이상학적이기도 한 구성 원리 안에서 제압당한다.

이것으로 그는 포퍼가 말한 과학의 반증조건에 반박을 하는데, 쿤의 패러다임 안에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원리뿐만 아니라 ‘과학적 패러다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식의 규범적 원리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과학 안에서 과학자가 패러다임을 비판할 수는 없다. 과학자가 패러다임을 비판한다는 것은 목수가 연장을 탓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정상과학에 흠과 균열이 생기고 이상 징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존 지식들로 덮어보려 하지만 더 이상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접 다른 이론이 생겨나면서 기존 이론체계는 전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다. 이렇게 혁명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과학은 다시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정상과학의 지위를 유지하지만 다시 새로운 위기와 새로운 과학체계 앞에서 전복이 되고 이런 역사의 반복이 바로 과학의 역사라는 것이다.

당시까지 영미권의 전통에서 과학이란 다양한 발견과 검증, 정리를 통한 ‘지식의 축적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는데,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론으로 기존의 학문관을 단숨에 전복시키며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쿤은 그 후 반증가능론자 포퍼와 함께 과학철학의 커다란 두 축을 이루면서 경쟁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이어가다 20세기가 저물 무렵 2년의 시차를 두고 (포퍼 1994년, 쿤 1996년) 영면의 세계로 돌아갔다.

이 둘의 과학논쟁은 그러나 각자의 논점으로 볼 때, (쿤의 표현대로)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서로 대립되는 논쟁을 벌였던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전혀 다른 두 측면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포퍼가 과학적 명제의 구성논리, 엄밀성 등에 초점을 맞춘 논리학적 체계에 근거를 둔 반면 토마스 쿤은 마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에피스테메(episteme)’를 연상케 하는, 과학의 사회학적 조건과 역동성에 기반을 둔 과학사회학의 구조를 설명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쿤의 과학철학은 바로 과학뿐만 아니라 제반 학문, 더 넓게는 모든 지식체계의 사회학적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준 인식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사상에 또 다른 풍요로움을 안겨준 쿤과 포퍼는 ‘연구프로그램’을 말한 라카토쉬(Lakatos), 아나키스트적 과학관을 설파한 파이어아벤트(Feyerabend) 등과 함께 과학철학이라는 사상적 줄기에 열린 경이로운 열매들이다.

쿤을 더 알고 싶다면/


토마스 쿤의 역작인 <과학혁명의 구조> 한글판은 여러 차례 재판을 거쳐 현재 김명자가 옮긴 책(까치)으로 출간되어 있다. <현대과학철학논쟁>(조승옥 외 옮김/아르케)도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1965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과학 세미나를 토대로 몇 차례의 재구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토마스 쿤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철학의 거장들이 대거 저자로 등장하는, 그야말로 해당 분야의 주요 논점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쿤과 칼 포퍼의 논쟁을 쉽게 풀어서 쓴 책으로 스티브 폴러의 <쿤·포퍼 논쟁>(나현영 옮김/생각의나무)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이 책에는 쿤과 포퍼의 저작과 이 두 사람에 대한 풍부한 참고문헌들이 소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쿤과 포퍼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철학의 커다란 줄기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번역서로 앨런 차머스의 <현대의 과학철학>(신인철·신중섭 옮김/서광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