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여기, 나… 이것이 ‘존재’다ㆍ하이데거 (1889 ~ 1976)

소한마리-화절령- 2012. 3. 17. 21:55

지금, 여기, 나… 이것이 ‘존재’다

김동수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ㆍ하이데거 (1889 ~ 1976)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온당한가? 굳이 안 될 이유야 없지만 나치 같은 범죄적 세력에 참가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면 지식인의 정치적 의사와 그의 이론적 견해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정치참여의 정당성 여부는 대개 분명한 연관이 있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더 문제가 되곤 한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정치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견해가 반드시 나치 지지로 귀결되는지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마지못해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을 맡았고, 유대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임무가 성공하자 총장직을 그만두었고, 적어도 허위에 사로잡힌 열정 때문에 나치를 지지했지만 곧 그 환상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노년의 하이데거는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한 나치 때문에 독일인이 자신들의 운명을 이끌 힘을 잃게 된 것이며 그 역시 나치의 희생자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방대한 독서량과 독특한 사유로 에른스트 카시러와의 논쟁에서 승리했고, 현대 서구사상에 놀랄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유독 정치와 정치적 사유의 영역에서만 순진했다는 것이 진실일까? 사실은 달랐다. 그는 총장이 되기 위해 로비를 했고, 대학개조에 적극적이었으며, 순회연설은 늘 히틀러 만세로 끝맺곤 했다. 총장을 그만두었을 때도 그의 옷깃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핀이 꽂혀 있었고, 제자 칼 뢰비트에게는 <존재와 시간>에 등장하는 개념과 자기의 정치개입의 관계를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나치 지지는 윤리적인 문제도 낳았다. 부자관계에 비할 만큼 유대가 깊었던 스승 에드문트 후설을 배신(1940년대 초 <존재와 시간>에 포함된 후설에 대한 헌사를 삭제했다가 나중에 슬쩍 끼워 넣었다)했고, 평생의 벗이었고 지적 동료였던 야스퍼스의 부인과 끝내 자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제자이자 연인 한나 아렌트를 외면했으며, 동료교수 헤르만 슈타우딩거와 제자 에두아르트 바움가르텐을 정치적인 이유로 탄핵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나치 지지는 용서받기 힘든 과거였다. 적어도 하이데거의 초기 사상에 대해서만은 지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야스퍼스조차 그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도덕적 평가만이 중요했다면 하이데거의 사유는 아무런 영향을 행사할 수 없었을 테지만, 그는 20세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남았다. 놀랍게도 그의 지적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사람들 중에는 가장 좌익적이며 최근의 철학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지적 영향력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좌우익 모두에 대해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역사적인 면에서만 보면 하이데거 옹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이데거와의 이론적 유사성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가 거절까지 당했던) 사르트르는 누구보다 인상적인 언사로 하이데거의 사상을 변호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철학자의 사상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면, 만일 우리가 새로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들을 다른 철학자에게 요구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가 그의 이론을 전부 신봉한다는 것을 의미하겠는가? 마르크스는 헤겔로부터 변증법을 빌려 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론>을 프로이센 공국의 저작이라 말하겠는가?”

사르트르의 변호는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 할 때 그의 모든 것, 예컨대 사생활이나 악행까지 모두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이데거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그의 행위와 사유 사이의 연관성을 배제하거나, 적어도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들뢰즈, 데리다, 푸코, 라캉 등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하이데거의 친나치 행적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으면서도 그의 영향을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재현하거나, 그의 사상에서 받은 영감을 자기의 이론 구성에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하이데거의 제자로 만들었을까? 그의 사유에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는 존재(sein, be)와 존재자(존재하는 것, seiendes, is-ness)를 구별했다. 철학은 존재자만을 사유할 뿐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다며 존재자는 존재에 입각해서 사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존재(sein)란 어떤 것의 존재, ‘있음’을 의미했고, 존재자(seiendes)란 존재하는 ‘그 무엇’,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가 보기에 사람들이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는 어떤 것, 존재자였고, 존재자는 단지 주어져 있을 뿐, 뭐라 설명하든 결국은 우연한 것 이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면 사태가 달라질까? 그는 진리를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서만이 아니라 실체의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전자는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지만 후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존재자의 진리가 존재에 있는 한 존재자는 존재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은 필연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존재자란 존재의 실현이었기 때문이다. 존재는 자신을 드러낼 특정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실현되어 특정한 형태를 갖는 존재자가 된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존재를 의미하는 단어 sein에 관사 da를 붙여 dasein, 현존재라고 불렀다. 현존재는 항상 ‘거기(da)’, 즉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존재이며, 장소(공간)를 내포하는데, 장소의 본질은 시간이다. 현존은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는 공간과 시간에 의해 그 형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존재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세계-내-존재’로서 관계를 통해 실현된다.

세계는 상대적이다. 공간조차도 멀면서 동시에 가까울 수 있다. 타인과 관계하는 이상 자아는 자신과 더불어 있는 타인의 요구에 종속되어 존재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나이며, 타인과 공통적인 존재양식을 갖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현존재를 망각하는 비본래적인 존재양식이다. 타인은 몰개성적이고 익명성을 갖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며, 그것이 바로 타인의 힘이다. (대중성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평균화를 벗어나지 못하며, 잡담, 낙서, 호기심에 빠져 고유의 현존재성이 퇴락한 결과가 자기소외다. 타인에게 지배된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자기와 세계의 사멸을 망각하고 비본래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의 실존과 실존의 근본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사회, 산업사회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타인에게 지배되는 현존재는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은 현존재의 특성, 거기에 있음을 포기하게 하는 절대적 지평, 현존재의 끝이지만 하이데거는 죽음조차 존재의 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존재 가능한 방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가 부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죽음을-향한-진의적 있음’을 마주하라는 그의 요청은 존재가 부여한 현존재의 진의성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타인에게 지배당한 상태로부터 자신을 회복하라는 의미다. 이 요청은 결단을 요구한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현존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아마도 서구의 위기(죽음)에서 부활은 진의성의 회복, 즉 존재문제로의 회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지리적 중심, 유럽 언어의 시원적 언어인 독일어, 이러한 요소들에서 하이데거는 독일의 운명, 서구의 몰락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독일의 사명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치는 하이데거의 제안을 거부했고,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한 하이데거는 나치가 자신의 해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독일인이 자신의 운명과 만나게 될 길을 막아버렸다고 믿었다. 존재는 사라졌고 구원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노년으로 갈수록 하이데거는 더욱 신비주의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그에게서 독일 보수혁명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하이데거가 통합유럽이라는 동시대의 유토피아에 현혹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하이데거의 실천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철학도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거꾸로 서있고, 따라서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은 하이데거에게도 해당된다.

하이데거를 더 알고 싶다면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 대한 해설서로는 <존재와 시간 강의>(소광희, 문예출판사), <쉽게 풀어쓴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 영향>(이기상, 누멘)이 읽을 만하다. 두 사람 모두 <존재와 시간>의 번역자이기 때문에 내용은 신뢰할 수 있다. 다만 후자가 하이데거의 현재성과 의의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반면, 전자는 텍스트 해설에 더 충실하다.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를 주제로 쓴 책은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박찬국, 철학과현실사), <하이데거와 나치즘>(박찬국, 문예출판사), <하이데거와 나치>(제프 콜린스, 이제이북스)를 들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 : 부르디외의 하이데거론>(이매진)은 하이데거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서술된 아마도 거의 유일한 책일 것이다. <니체, 횔덜린, 하이데거, 그리고 게르만 신화>(최상욱, 서광사), <보수혁명-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전진성, 책세상), <낭만주의의 뿌리>(이사야 벌린, 이제이북스)는 독일 지식인의 사유를 암암리에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