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화양구곡, 아홉 굽이 비경에 빛나는 송시열 정신

소한마리-화절령- 2013. 10. 16. 22:36

아홉 굽이 비경에 빛나는 송시열 정신
화양구곡…경천벽~운영담~읍궁암~능운대~와룡암~파천

월간 아웃도어 | 글 채동우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입력 2013.10.15 18:27

 

화양계곡은 16세기부터 그 수려한 풍경에 매료된 선비들이 즐겨 찾던, 요즘 말로 하자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이 계곡이 조선 주자학의 성지로 추앙받으며 화양구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바로 우암 송시열이 화양계곡에 머무르게 되면서부터다. 화양구곡은 송시열이 직접 9곳을 정하고 그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가 각각 이름을 지었으며 단암 민진원이 바위에 이름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화양구곡이라는 이름은 무이구곡을 본따서 만들어졌는데 이는 주자가 주자학을 완성한 곳으로 알려진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를 일컫는다.





금사담과 그 위에 놓인 암서재.


사대주의의 박제인가, 의리의 표상인가



화양구곡의 시작지점은 제1곡인 경천벽(擎天壁)이다. 이곳은 화양동 초입에서 바로 만날 수 있는데 물가로 가파르게 솟아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해 지어진 이름이다. 우암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는 글씨가 화양구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알려준다. 1곡과 2곡 간의 거리는 꽤 먼 편이다.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를 지나면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이곳 화양2교 좌측으로 보이는 맑은 못이 바로 제2곡 운영담(雲影潭)이다. 기암절벽과 소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친다 해 붙여진 이름으로 물과 암벽이 만나는 지점에 해서체로 雲影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제1곡인 경천벽의 우람한 자태. 우암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만동묘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최대한 몸을 조심히 할 수밖에 없다.





화양구곡 인근 바위에는 이곳에 들렀던 관찰사와 절도사의 이름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운영담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우측으로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보인다. 그중 만동묘는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당으로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이 만동묘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어긋난 사대주의의 발로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의를 표하기 위한 올곧은 선비정신이라 말하기도 한다. 취재진에게 화양구곡을 안내한 오성인 문화관광해설사는 "명나라 황제 모두가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내준 신종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만 모신 곳"이라며 "사대주의에 빠져 명나라를 떠받들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단 마땅히 의를 표해야 하는 분들을 위해 지은 사당"이라고 설명했다.

제3곡 읍궁암(泣弓巖)은 화양서원과 만동묘 앞쪽에 넓게 펼쳐진 바위를 가리킨다. 이곳은 우암 송시열이 북벌을 꿈꾸던 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는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읍궁암 안내판 근처에는 여러개의 읍궁암비가 놓여 있는데 이에 대해 오 해설사는 "원래 읍궁암 위에 홈을 파고 설치해놨던 비석"이라며 "장마가 져 비석이 쓸려가면 또 똑같은 내용으로 비석을 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세워진 세 개의 읍궁암비는 공사 등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것이라 한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는 사연이 담긴 읍궁암.





제9곡인 파천은 파관 혹은 파곶이라 불리기도 한다. 넓은 바위 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8곡 학소대에서 9곡 파천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파천에 도착해 계곡물로 세수나 탁족을 하면 힘든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풍경에 철학이 깃드니 절경이 되네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은 읍궁암과 지척에 있는데 이곳은 바위보다 그 위에 있는 암서재가 더 유명하다. 암서재는 송시열이 책을 읽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문헌상에는 초가로 묘사되어 있으나 여러 번의 보수와 중수 끝에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화양3교를 건너기 직전 우측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우뚝 솟은 큰 바위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제5곡 첨성대(瞻星臺)다. 첨성대 아래에는 선조 글씨인 '萬折必東(만절필동)'과 숙종 어필인 '華陽書院(화양서원)'이란 글씨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일반 방문객이 잘 모르고 지나치지만 화양구곡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글씨는 계곡으로 내려와 약간 위쪽으로 올라간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非禮不動(비례부동)'과 우암의 글씨인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이 그것이다.





첨성대 아래 계곡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화양구곡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장소가 나온다.





기암절벽과 소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치는 운영담 전경.

오 해설사는 "사신으로 북경에 간 민정중이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비례부동'이란 네 글자 친필을 얻어왔고 우암이 1674년에 그 글자를 바위에 새기게 했다"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뜻으로 우암의 철학, 정치관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우암의 친필로 알려진 '대명천지 숭정일월'은 직역하자면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조선의 해와 달도 숭정 황제의 것'이라는 의미다. 학자에 따라 그 해석이 분분하지만 존명사상(尊明思想)의 발로였다는 의견이 많다.





읍궁암 주변에 세워진 읍궁암비에 대해 설명 중인 오성인 해설사.





마치 용이 길게 드러누워 있는 듯 보여 와룡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바위.

제6곡 능운대(凌雲臺)는 화양구곡 가운데 유일하게 물길을 떠나서 있다. 큰 바위가 우뚝 솟아 능히 구름을 찌를 듯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은 변형된 길로 인해 이름과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참고로 능운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데 그곳에 해서체로 凌雲臺라고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곡을 지나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우측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제7곡인 와룡암(臥龍巖)이다. 긴 바위의 모습이 꼭 용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와룡암 한쪽 끝이 포장로 아래로 들어가 웅장함이 훼손된 상태다.





능운대 꼭대기에는 해서체로 능운대(凌雲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학소대에는 백학과 청학이 머무르며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며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오성인 해설사가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非禮不動(비례부동)'과 우암의 글씨인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을 설명하고 있다.

와룡암을 조금 지나면 상류 대각선 쪽에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가 나온다. 높이 솟아있는 기암괴석 사이에 자라난 소나무들이 그 운치를 더하고 있다. 백학과 청학이 이곳에 머무르며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며 살았다해 학소대라는 이름을 붙었다. 마지막 제9곡인 파천(巴串)은 8곡에서 탐방로를 따라 1km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계곡 전체에 200평쯤 되는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는데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여 파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선들이 술잔을 기울였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계곡은 많다. 하지만 화양구곡처럼 역사와 철학, 이야기가 함께 흐르는 계곡은 흔치 않다. 특히 계곡 전역에 조선 시대 주자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어 사료적인 가치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화양구곡에서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탁족하는 것도 좋지만 따로 시간을 내 문화관광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화양3교 즘에서 저 멀리 배를 타고 암서재로 향하는 우암 송시열이 설핏 눈에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화양구곡 길잡이


화양구곡 전체 코스는 편도 약 4km의 길로 부담없이 걸어서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최초 1곡을 들른 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2곡 운영담부터 9곡 파천까지 둘러보면 된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자세한 해설을 원하면 괴산군 문화관광과(043-830-3455)로 문의하면 된다.





괴산 즐겨찾기





호산죽염된장

죽염과 지하암반수로 장을 빚어 음식으로 올리는 식당이다. 조미료와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입이 처음엔 거부하는 듯하다가 결국 마지막 한 숟갈까지 깨끗하게 비우게 되는 게 이 식당의 묘한 매력이다. 여러 가지 메뉴 중 돼지된장양념 숯불구이 정식이 제일 많이 나간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식단에서 고기만 빠진 된장찌개 한식을 시켜도 된다. 상에 오르는 1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은 대부분 직접 재배한 것이라 신선함이 각별하다. 여럿이 이곳을 찾으면 감자전은 꼭 주문해보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간 감자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어 계속 젓가락이 간다.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빚고 옹기 장독에서 숙성시킨 장류는 따로 판매한다. 돼지된장양념 숯불구이 정식 1만원, 감자전 7000원. 충북 괴산군 청안면 운곡리 85-1. 043-832-1388.

글 채동우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eastrain@outdoo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