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정희수 씨의 경우

소한마리-화절령- 2014. 5. 12. 09:39

 

소사댁이 만난 소사 사람들 4월의 이야기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정희수 씨의 경우


조용한 윤정 씨의 조용한 고통

어처구니없는 선박회사와 정부당국의 과실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로 대한민국이 온통 비탄에 빠져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들과 가족들의 비극이 하루속히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문제는 세월호의 비극이 비단 바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뿐더러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나라 99%에 해당하는 노동자를 비롯한 숱한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번에 소사댁이 만난 소사사람 정희수 씨가 바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약탈적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가 낳은 세월호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정희수 씨는 올해 37세로 요즘 기준으로는 아직 청춘이라고 해도 좋을 젊은이다. 씩씩한 부산 사나이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그에게서 얼핏 무슨 피해자 같은 인상은 받기 어렵다. 서울 방화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정희수 씨가 부인 이윤정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21225일 성탄절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온양공장에서 5년째 근무하던 이윤정 씨의 기숙사 동료였던 친척 누나 김연미 씨의 소개였다. 윤정 씨의 미모와 조용한 성격에 반하여 만남은 지속되었다. 거의 매일 서울에서 천안까지 윤정 씨를 만나러 다닌 끝에 이듬해 20035월 윤정 씨는 혼인준비를 위해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희수 씨도 같은 해 9월 점포를 지금의 부천 송내1336-15로 옮기고 2004615일 두 사람은 혼인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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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시절의 윤정씨> 


꿈같은 신혼살림 끝에 아들딸 낳고 평탄한 삶을 보내던 이들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1055일 어린이날이었다. 그즈음 윤정 씨의 왼쪽 발과 다리가 붓고 머리에 수증기가 찬 것처럼 무거워 바깥출입을 잘 못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간 희수 씨는 급한 연락을 받았다. 윤정 씨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전화였다. 의사를 만나 뇌암(악성 뇌종양)으로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희수 씨는 한동안 윤정 씨에게 말하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뇌암이라니,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기려는 꽃다운 아내 윤정 씨가? 아내가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렸을지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충남의 바닷가에서 자란 윤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반도체에 입사해서 6년간 일하고 자신과 혼인했을 뿐 달리 머리에 악성종양이 자랄 만큼 나쁜 환경에서 지낸 일이 없다.


유대인 학살에 쓰인 화학물질을

희수 씨의 노력으로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 씨 사건을 알게 되었다. 삼성전자와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과 각종 암에 걸린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그들과 이종란 노무사와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 씨 등 뜻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삼성전자와 정부를 상대로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 윤정 씨의 몹쓸 병은 결국 삼성전자에서 얻은 직업병이라고 희수 씨는 확신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이었던 윤정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을 몹시 힘들어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한부 판정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산재신청을 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희수 씨의 말도 부담스러워 했다. 희수 씨의 설득으로 반올림과 처음만난 윤정 씨의 말에서 그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같은 라인에서 1년 가량 일하던 후배 유명화 씨가 아파서 퇴사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유명화 씨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 몸이 혈액세포를 만들지 못해 평생 수혈을 해야 하는 병이다. 윤정 씨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입사동기인 두 명의 친구도 뇌종양에 걸렸다는 것도 떠올렸다.


희수 씨의 예쁜 아내, 아들 진혁과 딸 지수의 엄마인 윤정 씨는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위해 틈틈이 반올림 식구들과 함께 삼성 본관 앞의 시위나 법정에 나서기도 한다. 조그만 정육점을 운영해서 얻는 수익이 얼마나 될까만 워낙 성실하고 고기질이 좋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난 탓에 그럭저럭 운영은 되는가보다. 작은 가게지만 직원을 한 사람 두고 짬을 내서 윤정 씨를 앗아간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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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령한우> 


올해 2월 개봉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바로 이들, 삼성전자에서 백혈병으로 스물세 살의 나이에 숨진 황유미 씨의 문제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아버지 황상기 씨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310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입사한지 18개월만인 20056월 혈액암인 백혈병에 걸린 황유미 씨는 20073월 숨졌다. 황씨 외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전자산업에 종사하다가 직업병으로 숨진 사람은 확인 된 사례만 모두 92명이다.(20143월 현재. http://cafe.daum.net/samsunglabor 참조)


이들 가운데 산업재해청구 소송에서 기흥공장 3라인에서 함께 일하다가 똑같이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 두 명만 201161심에서 승소했을 뿐이다. 투병 중이던 20114월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윤정 씨의 사건은 아직도 법원에 계류 중이다. 영화에서 삼성 직원들이 황상기 씨에게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라고 큰소리치던 대로 삼성공화국으로 불리는 거대한 자본, 거대한 권력과 마주 선 이들이 마침내 이길 수 있을까?


희수 씨가 정말 궁금한 건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한 수많은 화공약품들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직원들에게 지급되던 환경수첩에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공개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일찍이 발암물질로 사용이 금지된 TCE가 명시되어 있었다. TCE(트리클로르에틸렌)는 드라이클리닝, 금속탈지 등에 쓰이는 화학물질로 여기에 노출되면 간암, 담도암, 자궁경부암, 다발 골수암 등등 여러 가지 암이 유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기흥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베게너육아종증이라는 희귀암에 걸린 한수영(가명)씨에 따르면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에 사용했던 독가스재료인 포스핀이라는 물질과 디보란 등 냄새만 맡아도 불임이 되는 99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이런 물질을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여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게 쓰면 될 것 같은데 생산의 효율을 위해 위험성을 전혀 알리지 않고 안전장비나 시설은 깡그리 무시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세월호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또 한발 양보해보자. 예를 들면 어릴 때 배웠던 위인의 한 사람인 퀴리부인의 경우를 살펴보자. 퀴리부인이 발견한 라듐은 주기율표 2족인 알칼리 토금속에 속하는 원소 중 방사성을 띤 가장 무거운 원소이다. 라듐은 그 성질로 인해 암 치료에도 쓰였고 황화아연 반죽과 섞어서 시계·기계의 눈금판에 쓰이는 자연발광 페인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라듐을 포함하고 있는 발광 페인트를 사용하며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빈혈이나 심지어 골수암에 걸리게 되면서, 라듐을 쬐게 되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라듐의 독성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 발광 도색제로 라듐을 사용하는 것이 중지되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 관계자들이 TCE나 포스핀 등의 물질이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뒤늦게라도 알았다면 왜 사용을 중지시키거나 안전한 조건에서만 사용하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았는지는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나듯이 선장과 선원들은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을 충분히 탈출시킬 시간이 있었는데도 탈출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기들만 빠져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또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해양수산부와 해경 역시 세월호가 침몰한 첫째 날과 둘째 날, 많은 실종자들이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높았던 때에 왜 구조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처럼.


기업의 이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현재 드러난 것만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각종 희귀암에 걸리고 100여명이 고통스럽게 죽어간 현실 앞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갑갑한 심경은 희수 씨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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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본관 앞에서 > 


지난 414일 삼성과 반올림간의 오랜 싸움 끝에 양측의 공식적인 대화가 열릴 계기가 마련되었다. 협상과 대화가 성사되기 직전 양측의 오래 불신을 넘어서지 못하고 일단 결열되었다. 기본적으로 반올림을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삼성측의 태도가 불신의 근본 원인임은 틀림없다.(http://cafe.daum.net/samsunglabor 참조)


다만 희수 씨가 아쉬운 건 반올림의 그간의 노력과 헌신은 충분히 평가하고 고맙긴 하지만 당장 환자들의 치료와 나날의 생계에 몰리는 가족들의 처지를 덜 고려하는 듯한 태도에는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측이 그동안 반올림이 해온 실질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의 주체로 마주 앉으면 해결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반올림측에서도 한발 양보해서 피해자들의 대리인 자격으로 대화와 협상에 임한데서 크게 이름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발씩 양보하여 윤정 씨와 먼저 세상을 떠난 92명의 피해자들, 아직 고통스러운 투병을 계속하는 이들에게 정당한 치료와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 아이는 부산에 살고 있는 큰누나 정희숙 씨(47)가 맡아 키우고 있다. 벌써 3학년인 아들 진혁과 1학년인 딸 지수와는 매일 영상통화도 하고 두어 달에 한번은 부산에 가서 만나기도 한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아이들을 맡아 키워주는 누나와 매형(김백수 씨, 49)에게는 늘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다. 큰누나 부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아이들은 친부모나 다름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여간 마음이 편한 게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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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씩씩한 진혁과 지수> 


사실 희수 씨에게 가족의 상실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부산 금정구 온천장 인근에서 석재업을 하던 아버지 정문균 씨(71)와 어머니 김정순(69)씨의 22녀 중 막내로 태어난 희수 씨는 동의공고 건축과를 졸업했다. 희수 씨에게 정육 일을 권한 건 형 광호 씨였다. 7살 위인 형 광호 씨가 먼저 정육 관련 일을 하면서 공고를 졸업한 희수 씨를 같은 업종에 취업을 알선하고 한 성실하는 희수 씨는 이후에 한 번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같은 일을 해왔다. 그런 형 광호 씨가 심장질환으로 99년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님의 쓰린 심정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십년 남짓한 동안에 형과 아내를 떠나보내야 했던 희수 씨의 아픔도 짐작할 만 한 일이다.

아내를 가슴에 묻은 아픔을 삭이며 꿋꿋이 품질 좋고 맛있는 고기를 팔고 있는 희수 씨의 노력이 하루속히 뜻하는 대로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는 희수 씨와 반올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사 댁과 우리 모두 이웃이 되어 함께 힘을 모아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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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버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