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혁신학교, 경쟁과 차별이 아닌 공존과 복지로~

소한마리-화절령- 2014. 11. 17. 22:54

소사댁이 만난 소사사람 이야기 20149

 

혁신학교, 경쟁과 차별이 아닌 공존과 복지로~

 

곽노현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된 2010, 서울에도 혁신학교 정책이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불합리한 선거법과 이를 악용한 이명박 정권의 탄압으로 곽 교육감이 퇴진하는 바람에 폐지 위기를 겪다가 올해(2014) 64일 지방선거에서 조희연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되어 혁신교육의 불씨를 다시금 활활 타오를 계기를 마련되었다.

혁신교육? 혁신학교? 뭔가 새롭고 바람직한 교육형태라는 짐작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지향하는 지 구체적으로 아는 건 쉽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 때부터 조희연 교육감에 이르기까지 서울시 교육청 안팎에서 혁신교육, 혁신학교의 이론과 실천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 TFP 파견교사 손동빈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혁신학교의 기본 개념은

- 아래로부터의 자발성 (학생과 학부모..)

- 민주적인 학교 운영 방식

- 수업혁신을 통한 교육과정 정상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껏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위 세 가지 개념과 반대였다는 얘기이다. 그건 구체적으로 개념화하지 않아서 그럴 뿐 이 나라에서 보통의 초·중등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실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학생들의 자발성은 눈에 잘 띄지 않고 학교와 교육당국의 방침과 지시를 일방적으로 내려 먹이는 하향식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민주적 학교운영 방식이란 것도 전교조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난 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여년 동안 무늬만이라도 시도된 아스라한 기억이 있을 뿐, 한국사회의 학교현장과는 거리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70,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이 배경인 유하 감독의 유명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사실적으로 그려낸 학교현실은 30여년,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 번째 수업혁신을 통한 교육과정 정상화는 다소 전문적인 설명과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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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올해 723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혁신학교와 공교육 패러다임 변화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손동빈 선생님)

올해 723일 서울시특별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학교와 공교육 패러다임 변화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손동빈전교조 학교혁신특위집행위원장은 혁신학교는 모두를 위한 질 높은 학교 교육의 모델로서 일반학교에 영향을 미쳐 공교육 혁신과 내실화를 꾀하려는 학교로 정의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손동빈 위원장은 이어서

혁신학교의 위상과 역할 공유

혁신학교의 질 확보 및 확산은 계몽아닌 수평적 전이

혁신학교의 일반화는 제도개선과 혁신교육지구사업으로의 진화

교육청과 교육부의 역할 및 정책 조율할 합의체구성

혁신학교정책의 지속성 담보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

단기적, 장기적으로 혁신학교 추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할 경우 등의 딜레마 극복과 새로운 교육 담론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2기 혁신학교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선행학습 폐지 등 교육의 자율성 회복 등을 내세우며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전교조 불법화, 자사고 지정 불허 등으로 각 시도 교육당국의 자율성을 침해하며 과거의 입시위주 교육 관행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희연 교육감을 도와 서울의 혁신학교 정책을 밀고 나가는 이가 소사댁이 이달에 만난 소사사람 손동빈 선생님이다.

중동역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와 함께 살고 있는 손동빈 씨는 충남 금산(진산면 막현리)에서 196410월에 태어나 돌이 되기 전에 부천 송내동(당시에는 소사읍 구지 4)으로 이사를 와 50년 째 살고 있다. 여동생 셋은 모두 송내동에서 태어났다. 첫째 동생 경숙 씨는 강원도 정선 사북감리교회 목사로 시무하는 남편과 함께 사북에 살고 있고, 둘째, 셋째 경선씨와 용희 씨는 송내동 인근 중동에 살고 있다. 65년 부천으로 이사를 온 손동빈 씨의 부모님은 농사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셨다. 대원주물이라는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손중범 씨(1938~2008)35세이던 74년 공장 보일러가 터지는 사고로 크게 다쳤다. 보일러 폭발로 실신한 아버지는 산재 처리도 안된 상태로 2008년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원에서 환자로 지내셔야 했다. 70평생의 반생을 병상에서 지내신 것이다. 남은 다섯 식구의 삶은 온전히 어머니 신균(72) 씨의 몫이었다. 금산에서 논밭을 정리한 돈으로 구지리(지금의 송내동)에 작은 집이라도 사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됐을까? 다섯 식구는 방 하나에 몰려 살면서 남은 방을 월세로 놓고 어머니가 갖은 고생을 하며 13녀 자식들을 키워낸 것이다. 소사댁이 지금껏 만난 소사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위기에 몰린 가정을 끝내 지키고 구해내는 것은 결국 어머니들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손동빈 씨 어머니 역시 이 땅의 위대한 어머니의 한분이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직후부터 가족들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껏 다니고 있는 성은감리교회이다. 동빈 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가대에 들어가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재원인 부인 김윤숙 씨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모습에 반한 손씨가 적극 구애를 하게 된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름다운 부인을 만난 계기였으니 이만하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보상받았고 이를 되갚는 일만 남았단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큰 딸 예은(32)씨도 이화여대 음대를 나왔다. 계남고 3학년인 둘째 딸 예랑(18)양과 지난해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 온 아들 예승(17, 상원고 2학년)이도 손씨 부부와 함께 교회음악회에서 현악5중주단을 구성해서 연주할 만큼 음악적 열정이 충만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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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2년 성은교회 추수감사절 가족 찬양대회에서 손동빈 선생님 가족~ 가운데 두 남학생은 아들 예승이 친구들)

부천 서초등학교를 나와 부천 중학교, 부천고등학교를 거쳐 87년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기까지 집안이 늘 어려운 것을 빼면 비교적 순탄한 젊은 날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874월 신도림 중학교에 부임한 그는 교사 임용 후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학부 때 담당교수였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개신교계의 양심적 지도자인 손봉호 선생의 영향을 받아 심정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동조하기는 했으나 구체적 활동에 참여할 계기가 없었다고 할까?

1991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고 94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뒤인 95, 박사과정에 등록하고 나서 구체적 계기가 찾아왔다. 한상진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특히 NGO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시민교육에서 시민들의 연대(solidarity)의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2009정치적 이타주의로서의 시민교육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스스로 시민교육과 연대를 실천해 보아야 할 갈증을 느낀 것이다. 전교조 서울 남부 지회 활동과 겸하여 98, 99년 무렵부터 재직하던 신도림 중학교 학생들과 NGO를 탐방하면서 구로지역의 시민단체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실천활동을 이론화하는데 적용하고 이를 다시 현장에서 구현하는 바람직한 교류를 실현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이슈 파이팅을 공유하면서 이를 연습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실천적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무엇보다 유익한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정리한 손동빈 씨는 참여연대와 협력하여 아름다운 사회참여, 체험학습이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으로 학교에서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이 무렵부터 손동빈 씨의 본격적인 사회참여의 열정이 꽃을 피우기 시작된 것이다. 전교조와 함께 년간 8회의 교사아카데미를 열어 매회 200여명의 교사들이 참여하여 시민교육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서 3년간 계속했다. 참여연대와 국제민주연대에도 가입하고 박노해 시인이 주도한 나눔문화에도 참여했다.

249615_199491_4425 손동빈 전교조 혁신학교 특위 집행위원장 (1).jpg

사실 그에게 현장과 이론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을 그대로 학교현장에 적용하고 다시 이를 교과과정에 채택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몫이었으니 교육이론가이자 교육운동가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순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림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단체를 탐방한 것은 그때까지 학교현장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일이었고 이를 통해 처음으로 학교현장에 시민교육이라는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중학교 공통사회교과서에 시민사회 영역을 채택하게 하는 데에도 손동빈 선생과 동료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이런 활동의 연장으로 제 7차 교육과정 개편에서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시민사회와 교육이라는 챕터의 집필을 손동빈 선생이 맡게 되었다.

부천지역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한 것도 이 때였다. ‘목정평’,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상임대표를 지내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허원배 목사님이 20009월 성은교회로 부임해 온 이후 목사님과 두터운 신뢰를 쌓아 온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2005년에 목사님이 부천시민연합 등 부천지역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과 만든 부천시민평화통일포럼참여를 권유받은 것이다. 가능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와 밀착하여 시민교육, 연대활동을 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바람직한 것인 만큼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을 맡고 계신 허원배 목사님과 함께 지역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지역 내에서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부천시민평화통일문화제를 기획단계에서부터 주관해 보기도하고, 석왕사의 영담스님과 이택규 목사님, 호인수 신부님, 백선기, 황인오 대표, 이서경 선생 등 지역인사들과 부천종교인평화회의를 결성하여 해마다 종교인 평화기도회를 사찰과 성당, 교회를 순회하며 개최하기도 했다. 평화통일포럼은 나중에 남북평화재단 부천본부로 확대되어 부천시와 함께 부천시 평화통일기반 조성 사업을 펼치는 등 민간 통일운동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부천시학교밖청소년지원위원회(위원장 허원배)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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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10년 여름 부천중앙공원에서 4대강 사업 반대 단식 농성에 참여한 손동빈 선생님)

손동빈 씨가 혁신학교 전문가가 된 것은 2010년 말 신도림 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이왕에 사회참여를 통한 체험학습 등 민주시민으로서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던 손씨에게 혁신학교는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은 기회인 것이다. 2012년 초 서울시 교육청에 혁신학교지원단이 만들어지자 맨 먼저 파견교사로 나가게 된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낙마로 혁신학교지원단은 해체되었지만 전교조의 학교혁신특위가 구성되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상근하며 문용린 교육감에 의해 고사 위기에 몰린 혁신학교를 지키는 최선봉에서 활약한 것도 손동빈 씨이다.전교조에 상근으로 있으면서 전국의 혁신학교 상황, 나아가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의 전모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고의 틀을 넓힐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고 자산이 되었다.

문용린 교육감의 혁신학교 죽이기에 맞서 EBS TV 등 각종 방송 토론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하고 2013년 서강대에서 개최한 혁신학교 한마당등 전국단위의 행사를 통해 혁신학교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 데 함께해 왔다. 이제 조희연 교육감과 지근거리에서 함께하며 혁신학교, 혁신교육 2기를 맞고 있는 손동빈 선생님에게 놓인 과제는 무엇일까. 그의 박사논문 주제처럼 정치적 이타주의로서 연대를 위한 시민교육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국가중심의 경쟁과 차별을 구조화하는 교육으로부터 공교육과 아이들을 구해내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존과 공생의 인간화 교육으로 안착시키는 일은 너무 요원한 일일까?

사람이 자신의 인식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다른 이에게 온전히 이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사람 중심의 참 교육, 말만이 아니라 당장 나부터 구체적 현실 속에서 하나씩 실천하는 데서 답을 찾겠다는 손동빈 씨의 다짐이 새롭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가 경쟁과 격차를 극복하고 복지와 공생에 대한 교육적 응답을 성실히 마련하려는 손동빈 씨와 동료 교사들의 노력에 기대를 걸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