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일기-시장 공약 평가 토론회]
부천YMCA에서 시장의 공약을 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저에게 토론자로 와 달라고 했습니다. 항상 비판의 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탐탁치는 않지만 무소속 시의원에게 주어진 책무라 생각하고 수락했습니다.
시장이 공약한 내용을 공무원들은 지침처럼 받아들입니다. 100가지 공약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진이 어렵다거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하나 없이 추진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1조 940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그 중 중 85개(1조 5천억 원)를 2016년까지 완료하겠다는 추진계획도 나와 있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다, 살림이 어렵다면서 어떻게 다 해 낼지 걱정입니다.
이런 걱정을 담아서 쓴 토론문 입니다. 일독해 주시고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약실천을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
윤병국(시의원)
이번 토론회를 놓고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검증하는 것도 아니고 임기를 마무리하는 사람의 공약이행도에 대한 평가도 아닌, 당선자의 공약을 놓고 토론하는 것은 좀 엉뚱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하여 유권자들에게 선택기준을 제공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20명이 넘고 7개나 되는 투표를 해야 하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이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 그나마 자치단체장 선거는 어느 정도 검증노력이 있지만 지방의원들에 대해서는 검증시도조차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권자들 역시 후보자들이 내세운 정책이나 공약을 일일이 비교하려고 하지도 않고 후보자의 소속 정당을 보고 투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관심도 없고 검증도 없다보니 후보자들도 정책이나 공약 개발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4년 임기를 부여받은 당선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내세웠던 공약을 점검하는 과정은 사전 검증이 못 돼 아쉽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시장의 공약은 반드시 검증돼야 한다.
□ 시의원 관련
발제자는 기초의원 후보자들의 공약을 아예 평가대상으로 삼지도 못했다고 했다. 당선된 기초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유권자들이 정책이나 공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 힘을 쓸 후보는 없다. 유권자가 정당만 보고 투표를 하니 정당공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고, 공천과정에서 정책수행능력은 보지도 않는다. 언론 역시 정책이나 공약을 검증할 생각이 없이 누구 후보등록을 했고 누가 개소식을 했다는 식의 보도를 할 뿐이다.
시의원 당선자들 중 시의회 개혁을 공약한 사람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바꿔보자’고 주장하며 입후보하여 처음 당선된 시의원이 14명이나 되면서 의회개혁의 포부를 밝힌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의정경험이 있어서 개혁과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다른 14명의 당선의원들도 의회개혁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선거 중에 시민단체가 요구한 회기연장, 해외연수관행 개선, 상임위원회 생중계 시스템 구축 등의 제안에 서명한 사람이 당선자 중에 5명밖에 없다는데, 나머지 당선자들은 선거운동에 바빠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다행이 7대 시의회 개원 후 첫 회기에서 의원행동강령 조례가 제정됐다. 그러나 이 조례가 과연 실질적으로 기능을 할지는 미지수다. 6대 의회에서도 행동강령 조례 제정 시도가 있었지만 제대로 공론에 붙여보지도 못하고 불발됐다. 이번 제정 역시 운영위원회를 통한 논의 뿐, 전체 의원들이 모여 설명을 듣고 토의하는 과정은 없었다. 행동강령 조례도 없다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의장 당선자가 느끼는 압박감 때문에 황급히 제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의원들이 함께 협의하여 자발적으로 실천할 것을 약속한 것이면 좋았을 것이다.
법으로 제정된 것이니 따라야한다는 분위기만으로는 제정된 행동강령이 제대로 지켜지기도 어렵다. 당장 소속 상임위원회 직무와 관련 있는 시의 자문기관(각종 위원회 등)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부천시의회는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자문기관에 참여해 온 것이다. 좋은 것이니까 제정해야 하고, 하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한다는 마음으로는 제대로 된 개혁을 이끌 수 없다.
공약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았다고 시의회 개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찾아서 개혁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시의회는 첫 회기에 시정질문 권한을 스스로 축소하려다가 지탄을 받았다. 연간 회기일수 상한을 늘리는 문제도 지금 논의 중이지만 개정이 만만치 않다. 1년에 휴일 포함하여 100일밖에 회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다수 지방의회의 현실인데도 그렇다. 해외연수 관행개선, 상임위원회 생중계 도입 등 의회개혁 과제는 첩첩산중인데 한 발 떼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 시장공약 관련
? 시정철학 소개가 없음
이번 지방선거 전체에서 정책경쟁은 세월호와 함께 물에 잠겨버렸다. 무능한 정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자 시민들은 여당을 외면하는 투표를 한 것이다. 그렇게 집권하게 된 야당 소속 단체장들은 세월호 사고에서 원인으로 지적된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이 있고, 그것을 시정철학에 반영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월 2일 오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부정부패 제로, 지방자치 혁신’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간 지방행정에서 공무원 낙하산 인사, 친인척 인사, 지연?학연 등에 의한 일감 몰아주기와 금품수수 등이 관행처럼 암암리에 반복'되면서 무원칙과 부패의 악순환을 재생산해왔고, 그건 것들이 원인이 되어 세월호 사고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김만수 시장은 이런 반성을 했는가? 선거캠프 합류를 위해 공직, 또는 산하기관을 떠났던 시장 측근들이 새로 자리를 만들어가며 화려하게 컴백하고 있다.
일관된 시정철학이 있어서 전체 공약을 꿰뚫고 있어야 지자체의 비전과 방향을 알 수 있다. 성공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2010년 선거에서 내세웠던 ‘소통’처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시정철학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안전’이 모든 것을 대신했다. 그러나 ‘365일 안전한 부천을 만들겠습니다’라는 구호는 오래 사용하기도 어렵고 시정철학이라 보기도 어렵다. 세월호 사고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적처럼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대처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것을 막을 방안보다는 눈에 보이는 안전만을 거론하고 있고 CCTV 확충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정적이고 얄팍한 대응으로 보인다.
급조한 안전이다. 그러다보니 ‘생명을 살리는 수영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무례한 표현마저 들어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전체에게 수영교육을 시키겠다는 공약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일이며 수영장 여건은 소화가 가능한지, 급조된 공약은 아닌지는 다음 문제다. 안전을 이용하려다보니 세월호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마치 수영을 못해 숨진 것처럼 표현된 것이다.
개별화된 100개의 공약이 따로따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100개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약 전체를 관통하는 시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임기에 쓰던 ‘시민이 시장입니다’는 슬로건을 재활용한다고 했다지만 거기에 담긴 소통의 의미를 어떻게 구현했는지 평가도 없고, 그러다보니 어떻게 더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다. 시정철학이나 소통보다는 당면한 사업들을 해나가기 바쁘다는 의미로 읽힌다.
? 정책공약 실종
2010년 선거에서는 무상급식을 필두로 복지정책이 선거를 주도했다. 복지국가 논쟁을 불붙인 계기가 됐으며 2012년 대통령선거의 복지논쟁까지 견인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이전에는 중앙당 차원에서 양극화해소를 주요정책으로 내세웠으며, 경기도지사 선거 자체경선에서는 버스공영제를 필도로 한 공공성 강화가 주요쟁점이었다. 시장의 100대 공약도 분명 세월호 사고 이전에 초안은 마련해 두었을 테지만 이런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버스공영제, 시립의료원 설립 등의 공약도 만지작거리더니 없어져 버렸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소, 공공성 강화, 보편적 복지 확대 등은 단순히 센터 하나씩 만들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공약 중 하나로 언급하고만 지나갈 일도 아니다. 특별한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 개발공약 풍년
정책적 변화를 주는 공약은 빈곤한데 구체적인 개발공약은 풍성하다. 경인전철 지하화, 경인고속 지하화, 외곽순환고속도로 지하화 등은 실현가능성을 점치기는 힘들지만 실현되면 좋은 일이니 정책방향을 설정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의 임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종합운동장 개발, 길주로변 개발, 영상단지 개발, 소사역 주변 개발 등이 다시 공약에 포함되고 재선이 되면서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부천역, 송내역, 역곡역 등에 광장을 조성하는 일은 이미 진행 중이며 심곡천 복원이나 박물관집적화(옹기박물관 증축)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제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른다.
우리시는 개발을 재촉하고 있는데 정부가 주도하는 동부천IC는 막아 낼 수 있을까? 일관된 도시정책이 필요한 때다. 시민들은 녹지가 어우러진 쾌적한 환경도시를 바라는데 들리는 것은 온통 개발이야기 뿐이어서는 곤란하다. 수원, 성남, 고양은 이미 100만 도시를 넘어섰다. 용인마저 인구에서는 부천을 앞질렀다. 인구로 경쟁할 수 없고 그럴 필요다 없다. 시민들의 삶의 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그래서 문화도시, 환경도시가 요구되는 것이다.
문화도시 관련하여 아트밸리 교육, 생활문화 활성화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문예회관을 고집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심각한 반대에 부딪혀 선거막바지에 부랴부랴 ‘중앙공원 건립은 재검토’하겠다고 현수막을 내거는 창피를 당했으면서도 문예회관 건립 자체는 추진하겠다고 한다. 30년이 다돼가는 노후하여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시민회관 리모델링에 필요한 예산계획도 없는 상태다. 현실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예산지원을 구체적으로 약속한 공약
당선자의 공약은 공무원들에게는 업무지시 또는 지침처럼 받아들여진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후보 때 내세운 공약 100가지를 당선 이후 공무원들이 검토했는데도 폐기는 고사하고 수정된 공약 하나 없이 그대로 나와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공무원이 없다는 것은 불행이다. 선거 때 내세운 공약 100개를 모두 달성하려고 애쓰는 것을 막아야하는 아이러니가 지금 상황이다.
득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지만 직접적인 예산지원을 약속하는 공약은 문제다. 이후의 모든 검증과정을 무력화 시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제에서 지적한 경로당부식비 5만원 지원, 국가유공자예우강화, 보육교사 수당 지급 등이다.
직접 금전지원은 아니더라도 이해당사자가 분명한 일을 공약하는 것도 문제다. 예총회관, 만화가회관, 장애인실내체육관, 택시회관 등의 약속은 예산부담을 동반한다. 타당성 검토 없이 약속부터 해버린 꼴이며 시민들을 편가르기 하는 부작용도 생긴다.
건물 짓고 센터 만든다는 공약이 많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공무원이 직접하지 않고 센터를 만들어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급식지원센터, 비정규직센터, 사회적경제 지원센터에 이어 이번에도 365안전센터, 공동주택 리모델링지원센터, 청소년 법률지원센터, 금형기술지원센터, 인생 2모작 지원센터, 청소년진로지원센터가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 공무원의 전문성이 사장되고 예산부담이 가중된다.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라지만 하나에 수백억 원이 필요한 건물을 신축하는 것도 재정형편에 비추어봐야 한다. 문화원은 건립 중이고, 오정도서관, 역곡문화체육센터, 소사청소년수련관 등의 건립계획도 바쁘게 추진되고 있다. 광역화장장 건립에도 많은 돈을 내 놓아야 한다.
실현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과학고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모든 학생들의 학력이 올라갈 것처럼 현혹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교급식을 제외하고도 교육지원 예산이 100억 원 이상 늘었지만 학교에만 투입되고 있다. 교육청 소관인 학교에 신경을 집중하기보다는 학교에 가지 않는 180일, 또는 방과 후의 시간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방과 후나 주말 프로그램, 상담,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예산이 많이 들지 않아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공항에 인접하다는 장점을 내세우지만 공항과 KTX역을 연결하는 리무진 버스는 물론, 부천과 외부를 이어주는 고속버스 확대도 못하고 있다. 500억 원 가까이 들어가는 심곡천 복원은 무슨 고집인가? 시민의 강 성공 경험을 확대하면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실패위험도 줄일 수 있다. 쉬운 길을 두고 반대가 많은 위험한 길을 택했다. 기존 노인병원을 전환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시립의료원을 가질 수 있다는 제안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옥길보금자리주택이 생기면 청소(준)공영제를 도입하는 실험도 가능하다. 버스노선입찰제를 시도하여 공공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구체적은 공약은 커녕 공공성 강화 의지도 피력하지 않았다. 우리 시 중소 유통사업자를 한 입에 집어삼킬 코스트코 입점을 막거나 작동산 파괴를 막는 일은 예산이 아니라 의지가 필요한 사업이다.
□ 맺음말
시장이 공약한 내용이라고 모두 다 금과옥조는 아니다. 약속한 내용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맞게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매년 공약 이행여부에 대한 평가를 하고 부적절한 공약은 수정하는 것이 옳다.
제시한 공약을 2년 안에 대부분 달성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항간에는 국회의원 출마를 겨낭한 계산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자당 국회의원 선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예산폭탄을 맞게 돼 있다. 2010년 선거에서는 빚내지 않겠다는 것이 주요 약속이었다. 내부차입이 일부 있었지만 약속을 잘 지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작하자마자 땅 팔고 빚내는 계획을 세운다. 시장이 바뀐 것도 아닌데 정책기조가 바뀌었다. 시민들에게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재정순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돈 쓸 일만 자꾸 만드는 것은 아닌가?
누가 시장이 되더라도, 또는 언제라도 민원은 있기 마련이고 돈을 쓰지 않고는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필요하다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공약을 많이 하고 구체적으로 하고 빨리 달성하는 것이 반드시 선(善)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시민들에게 물어도 보고 의견도 들으면서 시민들의 속도에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모든 정책을 시장이 독점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시의원들의 공약도 검토하여 채택할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 공무원들이 시장의 공약을 이행하기도 숨가쁜 상태라면 다른 이야기를 들을 여가도 없고 다른 정책을 만들어 낼 창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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