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과 실천

지방자치 강화? 의회의 제 역할 찾기가 우선

소한마리-화절령- 2015. 2. 23. 11:43

지방자치 강화? 의회의 제 역할 찾기가 우선
[방청기] 관행에 젖은 입법현장…의원 스스로 존재감 되찾아야

경기도를 중심으로 지방자치의 정상화와 풀뿌리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한 의제 설정과 대안의 정책 개발 및 실천을 목표로 하는 ‘정책협동조합 대안과 실천’이 3월에 창립할 예정입니다. ‘대안과 실천’이 출범을 앞두고 지난 3~11일까지 열린 경기도의회 제294회 임시회 4개 상임위원회 방청기 중 교육위원회를 방청한 황인오 준비위원의 글을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안산 그래스루티> 

 http://www.grassrooti.net/webboard/bbs/board.php?bo_table=news_6_4&wr_id=476

 

지난 2월 3일, 2015년 새해 들어 첫 경기도의회가 열렸다. 경기도의회 제 294회 임시회가 열리자마자 강득구 의장(안양2)은 개회사를 통해 지방자치를 옥죄는 중앙정부를 성토하면서 지방자치의 강화, 지방자치의 제 기능 회복을 외쳤다. 이어진 5분 발언에서 양근서 의원(안산6)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설화를 주장하며 각급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예산통제 강화를 요구하였다.

이제 성년을 조금 넘긴 지방자치가 닥친 위기를 표출하는 것으로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이다. 나라의 모든 자원이 과도하게 중앙에 집중된 가분수 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결국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중시키는 것으로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의 하나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한국 지방자치제가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당장은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인한 지방세수의 감소, 부족으로 인한 만성적 재정위기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강득구 의장이 개회사에서 지적한대로 각급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걷을 수 있는 세원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중앙정부가 돈과 권한을 독점하고, 지방정부에는 쥐꼬리만큼의 돈 과 권한을 찔끔찔끔 달래듯이 나누어 주는 것이 현실이다. 무상보육 등 박근혜표 복지정책을 둘러 싼 일련의 사태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재정과 권한을 적절히 나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각급 행정부와 의회간의 균형이다. 요컨대 중앙과 지방간의 80:20의 쏠림과 함께 각급 지방정부에서 지나친 행정부 중심의 쏠림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현재와 같은 제도와 관행으로서는 행정부와 의회간의 힘의 비율은 80:20이 아니라 90:10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행에 젖은 경기도의회…교육위원회의 조례 심의 현장

양근서 의원이 제기한 예결위 상설화는 의회의 행정부 감시·견제 기능을 정상화하여 행정부와 의회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효과적인 행정부 견제와 감시를 위해 지방자치 전문가들이 인식을 공유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인 의정활동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도의 불비(不備)로 인한 ‘권한이 없음’을 탓할 뿐이지 행정부, 즉 관료사회가 주도하는 자치행정에 이끌려 다니는 의정 행태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모르거나 찾고 있지 않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2월 4일,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의 풍경은 제도 탓만 할 뿐, 주어진 여건 속에서나마 어떻게 의회의 권능을 강화하여 행정부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견제, 감시, 통제할 것인지 큰 고민이 없이 관행적 의정에 젖은 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교육위원회에는 모두 7개의 의안이 제출되었다. 의원발의 조례 제·개정안 4개, 청원 1개, 도교육청 발의 조례 개정안 2개가 심의, 의결되었다. 의원 발의 4개 법안 중 양근서 의원이 발의한 것은 일부 개정안이고, 3개가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이 발의한 조례제정안이었다. 김치백 의원(용인7)이 대표 발의한 ‘지역사회의 학교시설이용활성화 조례안’과 문경희 의원(남양주2)이 대표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진흥 조례안’, 김동규 의원(파주3)이 대표 발의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을 위한 조례안’이 그것이다.

 

이들 조례안이 모두 입법 필요성은 인정되는 시의에 적절한 발의인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학교시설을 방과 후나 휴일 등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유휴시공간을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여 주민과 학교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상호 유대와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시설의 유지와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여 학교교육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경희 의원이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진흥 조례안은 만시지탄의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걸음씩 발전해 온 민주주의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의해 후퇴를 거듭하는 상황을 볼 때 진작 마련되었어야 할 법안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실시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부러워하고,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분적으로 실시된 적은 있지만 공교육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되도록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이 법안에서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애써 드러내기를 주저해 왔던 사회적 갈등이 실제로는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주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뜻 깊은 입법안이라고 평가된다.

 

김동규 의원이 발의한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조성 조례안’ 역시 시의성을 충분히 공감할 입법안이다.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폭력, 혹은 경쟁 지상주의 교육에서 비롯된 성적 갈등, 상시적인 고용불안 등 주로 양극화가 원인이 된 폭력 등 가정불화 등 갖가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끔찍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 무슨 일이든 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더 들게 될지라도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관련 법령을 열 개라도 만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조성 조례안’은 훌륭한 취지와 시의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안은 채 상임위원회에서 원안 통과되었다.

 

이날 심의 과정에서 여러 의원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내용을 의무규정으로 하지 않고 임의규정으로 한 것이다. 조문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겠지만 모처럼 만든 법안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선언적 권고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박승원(광명3), 서진웅(부천4), 최종환(파주1) 의원 등이 이러한 규정으로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충분히 지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표결에서는 이의 없음으로 원안 통과를 방조했다는 점이다. 동료의원에 대한 체면과 의리(?)에 매몰되어 차후 개정안 제출을 빌미로 허점 많은 법안을 의결해 준 것은 입법을 통한 행정부 통제라는 의회의 존립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학교민주시민교육진흥조례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법안은 임의규정은 거의 없는 대신 법안이 목표로 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행정부에 광범위하게 위임하고 있다. 감시와 견제가 없거나 부족 한 권력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제나 민중의 이익에 반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민중은 의회를 통해 집행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의회가 집행 권력을 견제, 감시하는 주요한 수단이 입법 통제와 예산 통제이다.

 

입법과 예산을 통해 집행 권력의 재량권을 최소화하여 권력의 자의성을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의 미흡한 자치제도 아래에서 취약한 권한만을 가진 의회가 행정입법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 법안과 비슷한 서울시 민주시민교육조례와 비교해도 조례의 규정이 너무 허술하다. 현재의 교육감이든 누구든 권력자가 우호적이라고 해서 집행 권력의 선의를 신뢰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할 일이다.

 

양근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학교시설의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사후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국가표준이 있는 경우 이를 우선해서 설치하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가는 시국에 시의적절한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이 이용하는 편의시설의 재질이나 구조 등이 국가표준에 따른 안전성을 갖춘 것이 있다면 이를 우선해서 이용하라는 데에 무슨 이견이 있을까 싶었는데 윤태길(하남1)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법안을 발의한 양 의원에게 “관련 장애인 단체들과 충분한 의견 교환을 했느냐고” 질의하고, 이에 대해 양 의원이 “나름 의견을 듣고 반영한 것”이라고 답변하자 윤 의원은 “일부 장애인 단체가 국가표준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한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윤 의원은 어떤 단체가 무슨 사유로 반대하는지 명확한 언급은 없이 애매모호한 발언을 두어 차례 반복했다. 단체명은 사정상 밝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나 반대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을 반대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할 텐데 명색이 상임위원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반대할 사유가 있다면 비용부담 증가이거나 국가표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면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토의 과정을 볼 때 의원들이 대체로 각각의 법안이 가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를 인식했으면 이를 법안에 반영해서 수정 보완을 해야 할 텐데 위원장(김주성·수원2)은 위원회의 원만한 운영과 진행을 명분으로, 다른 의원들은 동료의원에 대한 체면과 의리에 못 이겨 덜 익은 법안을 의결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지방의원들의 취약한 의정활동구조, 입법보좌 기능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독립된 업무공간도 없이 지역구 활동과 방대한 도정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거나, 정당행사, 정치활동 등에 시간과 노력을 쪼개야 하는 현실을 살피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이런 구조적 취약성은 그대로 개선하도록 노력하더라도 입법기관 본연의 사명에 매진해야만 취약한 구조 개선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무엇이 우선인지는 자명하다고 생각된다.

황인오 정책협동조합 ‘대안과 실천’ 준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