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없다, 있다 의견이 분분하다. 조선후기에 성리학에서 탈피하여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지향적인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실학’이라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그런데 다른 목소리가 쏟아졌다. 실학과 성리학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사족체제의 자기조정 프로그램일 뿐이어서 굳이 실학이라고
호명할 것은 아니다, 과학사 학계에서는 실학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등등.
지난 9월 실학학회 등이 “‘실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이틀간에 걸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10년 전에도 ‘실학 개념의 재정립’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린 바
있다. 실학이란 개념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이처럼 재검토를 거듭하는 걸까?
시대적 과제를 반영한 실학담론
본디 실학 개념은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문리적으로 실학은 ‘허학(虛學)’의 상대개념이라 할 수 있다. 좀더 풀어보면 공리공담이 아닌 실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학문을 뜻한다. 조선초기에는 불교에 대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인 유학 내지 성리학이 실학이라 했다. 다음 시기에 가면
화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사장학(詞章學)보다 유학 경전의 뜻을 제대로 아는 경학(經學)이 실학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물제도 정비와 외교관계에
중요했던 사장학이 뒤로 밀린 것이다. 이처럼 실학의 개념은 시기에 따라 담고 있는 의미가 달라졌다.
지금 통용하는 실학은
조선후기 일군의 학문적 경향을 범주화하여 호칭한 역사적 개념이다. 가령 유형원, 이익, 박지원, 정약용 등의 학문이다. 실심(實心),
실사(實事), 실공(實功) 등을 강조했지만, 당대의 학자들이 스스로 실학이란 개념으로 범주화하지는 않았다. 고유명사로 쓰이는 ‘조선후기 실학’
개념은 후대에 일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다.
대한제국기(1897~1910)에 박은식, 장지연 등이
유형원-이익-정약용을 계보화하는 한편, 김육, 박지원 등을 추가하여 주목했다. 박은식은 조선시대에 주로 추구했던 도학(道學)이
숭허유실(崇虛遺實)의 폐단이 있었다고 보고, 이와 대립시켜 이들의 학문을 경제정치학, 경제학, 정치학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조선후기 실학이라고
개념화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주된 의도는 근대계몽의 일환으로 대한제국기의 실학을 모색하고 진흥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1920년대 학자에도 이어졌는데, 조선시대 전 시기에 결친 경세론자들을 실학파로 호칭한 일인학자도 있었다.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유형원을 선구자로 하여, 이익,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등을 실용과 실증을 갖춘 실학파로 파악하게 되었다. 1960~1970년대에
와서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실학을 인식하고 근대지향, 민족지향을 그 핵심어로 삼았다.
근대·민족·실용의 업그레이드 필요
근대화와 민족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삼은 실학담론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시대적 결과다. 서구화와 동일시된 근대화가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데다, 서구중심주의에 바탕한 근대 개념 자체에 비판적 견해가 대두되었고, 민족주의의 폐해도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실학담론이 복잡해지는 것은 논자에 따라 실학을 보통명사로 또는 고유명사로 달리 쓰는 데서도 기인한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을 고유명사로 쓰는
경우에도 관심의 초점과 범주에 관해 의견이 다기할 수 있다. 조선후기 실학 연구의 성과를 확인하는 한편, 그동안 소홀했던 분야로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구성된 실학개념에 맞추어 설명하느라 오히려 조선후기 실학의 온전한 실체를 놓친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실학의 범주를 확대하기보다 오히려 성호학, 북학, 다산학 등으로 분화시키는 것은 어떨까 싶다.
향후 실학담론은 어떠해야
할까? 어느 시대고 낡은 제도와 이념이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작은 우리나라는 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세계문화를 수용하고 주체성을
확보하느냐가 문제였다. 조선시대, 특히 후기에는 의리명분과 도덕을 강조하면서 민생과 실용은 소홀했다. 지금도 이념을 내세워 모든 실제적 과제를
방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근대지향을 개혁과 변화의 문제로, 민족지향을 세계와의 관계 설정 문제로,
실용지향을 가치와 실용의 조화 문제로 치환하여 우리 시대의 실학담론을 전개할 것을 제안해본다. 조선후기의 실학이든, 조선시대의 경세론이든 이러한
관점에서 읽어낸다면, 오늘 여기 우리에게 요구되는 개방적이고 실제적인 작풍을 조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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