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안시성, 조선의 양만춘 |
노 관 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구려와 수의 전쟁, 그리고 고구려와 당의 전쟁처럼 극적인 전쟁사도 없을 것이다. 서기 612년 고구려에
침입한 수나라 양제의 대군을 패주시킨 고구려의 명장이 고구려의 재상 을지문덕이라면 서기 645년 고구려에 침입한 당나라 태종의 강군을 패주시킨
고구려의 명장은 안시성 성주였다.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오늘날 양만춘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정확한 이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양만춘의 이름이 알려진 건 조선중기 때 우리나라에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일이었던 것 같다. 중국에 사행을
떠났던 조선 사신이 북경에 가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 중국의 장수와 문인이 조선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이 사실이 퍼져
나갔다. 군사강국 계승한 조선은 왜 문약해졌나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계없이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군사 강국이었다는 이미지는 오래 지속되었다. 조선 성종 때 최부가 바다를 표류하다 명나라에 도착해 현지 중국 지식인과 필담을 나누었는데, 중국 지식인의 큰 관심사의 하나는 최부의 나라가 어떤 장기가 있었기에 수당 군대를 물리쳤느냐는 물음이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지켜본 명나라 지식인의 의문점은 강성한 고구려를 계승한 조선이 어째서 문약해졌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고구려는 조선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모델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었다. 안시성 성주의 승리는 그 미래를 비추어 주는 오래된 거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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