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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다시 읽는 맹자의 일치일란(一治一亂)

소한마리-화절령- 2017. 1. 13. 21:47
새해에 다시 읽는 맹자의 일치일란(一治一亂)
노 관 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미시적으로 보면 복잡하고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일도 거시적으로 보면 간단하고 명료하게 보일 때가 있다. 역사가 그렇다. 수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수많은 왕조가 명멸한 역사도 거시적으로 잘 들여다 보면 흥미롭게도 어떤 거대한 기운이 작용하여 알기 쉬운 법칙적인 변화를 겪어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에 잠길 수 있다. 법칙을 발견하면 아무리 복잡한 현상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아무리 신비로운 미래라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 거시적으로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을 통해 미래의 역사를 예언한다는 것, 이 매력적인 유혹으로부터 초연했던 사상가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난세를 극복해 치세를 회복한 '성스런 역사'

   지나간 역사에서 법칙을 발견한 사상가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중국의 고대 사상가 맹자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고 하는 유명한 명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말 하나만 들으면 이 세상의 역사가 치세와 난세를 반복하며 진행되었음을 점잖게 설명하는 맹자의 진지한 역사철학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말은 맹자가 너무 따기지 좋아하는 논쟁적인 사람이라는 세평에 대해 맹자가 자기를 변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맹자는 요(堯)의 시대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중국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며 난세에 맞서 치세를 회복하고자 했던 중국 영웅들의 역사적 실천을 돌아본다. 맹자의 설명은 이렇다. 요의 시대에 홍수가 일어나고 맹수가 득실대는 난(亂)이 있었으나 우(禹)의 활약으로 홍수를 물리치고 맹수를 쫓아내 치(治)를 회복하였다. 요순 이후 여러 폭군이 폭정을 자행하고 은나라 주왕에 이르러 난이 극도에 이르자 주공이 무왕을 도와 주왕을 토벌하여 치를 회복하였다. 주나라가 쇠퇴하여 제후들의 골육상쟁과 처사들의 백가쟁명으로 가득한 난세가 되자 공자가 『춘추』를 지어 인륜을 수호하였고 맹자 자신도 힘을 다해 양자와 묵자의 학설을 비판하여 치를 회복하려 한다. 아, 맹자의 논쟁적인 태도가 실은 난을 극복해 치를 회복하려는 시대적 요청에서 나왔음을 모르는 무지한 세인이여!

   맹자의 일치일란에 대해 그것을 그저 치세와 난세가 반복되는 순환론적 역사관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맹자의 본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맹자의 진의는 치세와 난세가 번갈아 나타나는 역사 변화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 난에 대응해 치를 회복해 왔던 성현의 역사적 실천이 있었고 바로 이것에 주목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맹자의 일치일란이란 정확히 말해 치와 난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세상의 세속적 역사(secular history)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난과 대면하여 끊임없이 치를 추구하는, 우리 인간의 성스런 역사(sacred history)를 가리키는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성현은 말하자면 이와 같은 ‘성스런 역사’를 체현한 역사적 영웅이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광복과 반정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미래에 희망이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이와 같은 ‘성스런 역사’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하나의 역사 법칙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스런 역사’가 이제까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는 믿음은 ‘성스런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무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천하에 여러 나라가 흥망했지만 모든 나라는 단 한 가지 기준, 곧 ‘성스런 역사’가 있는 나라와 ‘성스런 역사’가 없는 나라로 구별된다. 만약 ‘성스런 역사’를 보존한 나라가 멸망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나라가 무너지는 국가 멸망의 문제가 아니라 ‘성스런 역사’가 소멸하는 역사 멸망의 문제가 된다. 만약 이제까지 살아왔던 인간의 본질적인 역사가 오늘로 사라진다면? 만약 우리가 이 역사의 마지막에 서 있다고 한다면? 맹자의 일치일란에는 ‘성스런 역사’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리가 짙게 배어 있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지난해의 어두움이 깨끗이 사라지고 빛나는 광복(光復)과 올바른 반정(反正)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광복이 무엇이겠는가? 반정이 무엇이겠는가? 천명의 새로움[維新]이다. 국가의 다시 일어남[中興]이다. 불원복(不遠復)의 회개하는 정신이다. 맹자의 일치일란의 참뜻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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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 논저
〈고전통변〉김영사, 2014
〈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한국실학연구 제25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