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에서 시작하는 폐광촌 기행

[스크랩] 국가경제 재건의 유공자 폐광촌 사람들

소한마리-화절령- 2017. 2. 5. 22:21
통리협곡쪽에서 바라본 풍경인데 멀리 골짜기 사이로 도계읍의 모습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통리에서 심포역으로 가는 철로가 협곡 사이로 가파르게 내려뻗은 모습이 보인다
 
통리협곡에서 가파른 협곡길을 따라 ㄱ자 코스로 꺽다가, 8자 코스로 돌다가,
도야쥐 꼬리 같은 길을 제자리서 뱅글 뱅글 돌아 숨을 할딱이며 한참을 내려오니,
도계라고 하는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잡은 옛 탄광도시가, 그 옛날의 번영했던 모습을
재현이라도 하듯,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모습으로 그 신선함을 드러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꽉막힌 험악한 골짜기에 버려진 암울한 폐광촌 마을들을 장시간 돌고돌아 만나는
평탄하고 쭉 뻗은 길이여서 그런지, 4~5층 짜리 건물들 사이로 오가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마져도 경외로워 보였다
 
바로 그 곳을 벗어나 고사리역 부근에 왔을때, 갑자기 길은 거짓말 같이 평평하고
쭉 뻗은 길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부터 삼척을 지나 해변길을 따라 강릉 까지는,
협곡도 없고, 가파르지도 않고, 굴곡도 거의 없는 그야말로 아우토반길과도 같았다
 
고사리역을 지나 하 고사리역 부근에 왔을때쯤에는 주변의 산맥들도
검은 빛을 띠고 있지도 않았으며 도로 주변을 흐르는 하천들도 점 점 맑아지고 있었다
도로변 산 기슭에 드문 드문 떨어져있는 민가들은 옹색은 해 보였지만
그래도 사북이나, 고한이나, 태백이나, 백산이나, 철암동 처럼
검고 암울해 보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다
 
한때는 이 나라에 쌀은 없어도 살 수 있었지만 석탄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이 나라의 민중들이 쌀과 같은 식량보다도 더 요긴하게 사용했던 것이 바로 석탄이였다
그래서 사북과 고한, 그리고 태백,백산,철암 등지의 막창에서 50여년 동안
탄덩이를 채굴 하느라 산이란 산은 모두 구멍이 뚫리고 파헤쳐져,
지금 현재까지 그 피폐한 몰골로 남아 있는것이다 
 
정암사에서 고한읍 방향으로 약 5분정도 내려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검은 탄전의 모습이다
  
그 탄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면 개천의 모습이 모두 짙은 황갈색을 띠고 있다
정암사에서 조금만 내려와도 개천은 이렇게 온통 검은색과 황갈색을 띠고 있다  
 
이 곳은 고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일한 아파트인데 옛날 광원들의 아파트인듯 하다
두문동재(싸리재)를 넘는 길목에 세워져 있었고 아파트 앞을 흐르는 하천 역시
온통 짙은 황갈색과 검은색으로 되어있다
아파트 규모에 비하여 이 부근을 지나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적막감 마져 감돌고 있었고
간혹 두문동재 터널쪽으로 지나는 차량들만 횡하니 지나다닐 뿐이었다

 

고한 공설시장
 
고한 공설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걸려있는 "고한 공설시장"이란 간판도 빛이 바랜상태다
요즈음은 웬만한 재래시장은 시나 군에서 시장 간판도 달아주고 시장 안의 지붕도 투명유리로
씌워주고 하는데 이곳 고한은 그 것마져 없는것을 보니 정선군청도 재정이 가난한것 같았다
 
이 부근에 대규모 카지노 업체가 이주해 들어 왔다고는 해도 지역경기는 밑바닥을 맴돌고
상가와 집값이 크게 떨어져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거의 영세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참 탄전이 호황기일때는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 거렸던 도시였었는데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를 빠져나가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북과 고한, 태백,철암사람들의 열명중 아홉명은 탄광을 터전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고 하며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검은 빛깔로 뒤덮여 있는 예전의 석탄 공화국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떠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남았던 것이다
손에 쥔 것도 없이 떠난 사람들의 앞길도 안개속을 걷는것처럼 깜깜했었겠지만
탄광이 문을 닫은 폐광촌에 남은 사람들의 살 길 또한 막막 하기만 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업이 바닥을 드러내면 인심은 흉흉해지기 마련이다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디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심정으로 몸부림을 쳤고
어딘가 둥지를 틀곳을 �아 모두들 두리번 거렸지만 끝내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물 맑고 산이 푸르른 마을이라면 관광객들을 상대로 뭐라도 할 수 있겠지만
온통 사방 팔방 탄더미로 뒤덮인 검은 폐광촌에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였던 것이다
 
같은 정선군이라고 그래도 정선읍 장날에는 많은 인파들이 북적 거리고  
정선 아우라지나 정선 소금강 그리고 정선 화암약수터 정도만 돼도 사람들은 알아서 몰릴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북, 고한, 태백, 철암같은 지역의 산이란 산은 모두 다 파헤쳐져,
흉물스럽게 그 검은 뼈대만 드러내고 있었고 하천이란 하천은 물고기 한마리 살지 못하는
죽음의 강물로 변해져 있었으니 어찌하랴
 
이곳은 태백시 철암로의 마지막 끝 부분인데, 상가 간판들은 거의 붙어 있었지만 거리는 피난을 떠난
부락처럼 스산한 기운이 감 돌고 있을 뿐이다
 
태백시 철암동 입구에서 건널목을 넘어 조금 들어오다보면 탄 가루에 검게 그을려진
철암 시가지의 모습이 마치 7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듯한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철암 시장에서 철암로를 따라 봉화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그래도 꽤 규모가 큰 4~5층짜리
상가 건물들도 눈에 뜨이는데 모두들 개천을 이용해 건물을 세운것이 마치 동남아의 어느 빈민부락을 
연상케 한다
 
1980년대 중반, 철암지역의 광산경기가 호황기이던 때는 이곳에 4차선 대로를 낼 기획이 있었다고
한다. 한데 지금은 이곳의 인구가 모두 떠나고 그때 당시의 4분의 1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 
또 그런 계획도 흐지부지 되고 있는 실정인것 같았다
 
태백시 철암동 폐광촌
 
이 광활한 세상도 정지해 있는 듯하고 시간 조차도 흐르지 않는 이 철암의 탄광촌에서 목돈좀
벌어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들은 지금쯤 이 하늘 어느 아래서 또 어떻게 살아들
가고 있을까 ?
 
한 때는 이나라 경제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던 그 탄광 마을들이 요즈음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볼때,
그저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것 처럼 허전해올 따름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이만큼 발전을 이루며 풍요롭게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것도
모두가 다 그 광산마을의 막창에서 목숨을 담보로 구슬땀을 흘렸던 사람들과
그 지역의 회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던것이 아닌가 ? 
 
그런데 요즈음은 국가의 경제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이나 또 거기에 들러붙어 부동산 투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비싼땅은 더욱 비싸게 몇갑절 가격을 부풀려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는 국가의 경제를 재건시켰던 탄광마을의 땅들에 대해서는 그저 냉담한 반응만 보이고
있으니 점점 더 쓸모없는 땅이 되어가고 있는것은 물론, 형평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것이다
 
서울 강남의 50평 짜리 모 아파트 한채 값이면 백산이나, 또는 철암의 상가들을 몽땅
사들일수 있는 돈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뭔가 잘 못돼도 한 참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곳의 막창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을 했던 사람들은
국가 경제를 재건시킨 국가 유공자들이 아닌가 ?
국가 유공자들이면 국가 유공자에 걸맞는 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공연히 부동산 투기꾼들만 살찌우게 하고 국가 경제 재건의 유공자들을 
절망에 빠뜨리게 하는 정책을 펴서는 아니 되겠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게끔 된것도 다 그 분들의 회생이 없었다면 가능이나 하였겠는가 ?
출처 : 물밖으로 뛰어오른 망둥이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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