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항재 정상 부근이 가까워 지고 있을 무렵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험준한 산 봉우리들은 황하의 장강마냥 발 아래로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으며
오래전에 왔었던 눈은 녹지 않고 골짜기마다 그대로 쌓여 있었다
마치 태백산맥 험준한 줄기가 기운차게 뻗어가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는 듯한 모습이고
구름도 이곳을 지날때 쯤이면 발목을 잡혀, 쉬었다 가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지형이다
우리나라 하늘 아래 제일 첫번째 동네는 어디일까 ?
바로 육중한 태백산맥 줄기가 뻗어있는 강원도에서도
정선과 영월 그리고 태백시가 정상에서 만나는 지점에 만항재라는 고개가 있다
망항재 정상에 올라와서 왔던길을 뒤 돌아보니 깊은 골짜기에는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이 곳 만항재는 우리나라 포장도로 중 가장 높다는 1,300m 고지의 준령 이기도 하고
또한 만항재 정상에 오르면 태백산 봉우리들이 마치 옆집의 정원처럼 발 아래로 올망 졸망 펼쳐진다
이곳 정상에서 저기 아스라이 보이는 화방재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태백산의 기라성 같은
봉우리들이 눈 앞에 바짝 다가와 비교적 태백산의 선명한 산세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요즈음은 태백과 고한을 잇는 두문동재에 터널이 뚫리면서 이렇게 길고 험한 만항재는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적하고 신선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곳은 겨울철에 폭설이라도 내리면 제일 먼저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이 곳에 하나밖에 없는 휴게소도 이때는 문을 닫으니 그야 말로 적막 강산인 셈이다
이 곳은 만항재 정상에서 고한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제일먼저 만나게 되는 하늘아래 첫동네
만항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이 지역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이주하여 촌락이 형성되었다 하고
지금 사진으로 보는 부락도 본래는 주변 탄광의 근로자들이 살던 마을이였다고 하는데
인근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밭농사에 손을 대 생계를 이어 간다고도 한다
지금은 이 만항 마을에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식당도 간혹 볼수 있지만
찿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 하기만 하다
그래도 광산이 한참 호황기였을 적엔 이 곳의 각 주점들마다 목청껏 뽑아내는 노래소리,
젖가락 장단소리가 여자들의 기성과 함께 끊어질 날이 없었다고 한다
길 주변은 술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저녁 무렵 부터는 유리문짝 안에
한복을 차려 입은 짙은 화장의 여인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었다고도 한다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다, 여기 후미진 변경의 탄전 마을에
지칠 대로 지친 나래를 접은 짙은 화장의 여인들.
짙은 눈 화장, 꼬부랑 파마머리, 입술엔 붉은 루즈를 바르고
삶에 찌든 얼룩진 얼굴로 막장에서 돌아온 비번인 광부들을 맞이 하였으리
만항마을에서 정암사 쪽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이렇게 버려진 폐가들이 군데 군데 산재해 있었다
2004년도 까지 이 부근에는 옛날 광부들이 살았던 2층 아파트가 대여섯동 정도 있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 철거를 했는지 전혀 그 모습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그 검은 아파트들은 모조리 폐허가 된체 흉물처럼 버려져 있다
모두 대엿섯동 백여채 정도 되는 열평 남짓한 아파트다
말이 아파트지 가까이 가서 보면 완전히 소 외양간과 같은 아파트다
폐허가 된 아파트에 들어가 보면 왠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마치 귀곡산장을 방불케 한다
들어가는 통로부터 거미줄 하며 방안의 벽지에 어지럽게 쓰여진 크고 작은 아이들의 검은 낙서들...
"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
검은색 크레용 으로 쓰여진 이런 글씨의 낙서도 있었다
내가 처음 사북 고한을 갔을때가 1980년대 후반 여름으로 생각이 된다
그때만 해도 몇몇 광산들이 활발히 돌아갔는데 요즘은 거의 휴무 상태이다
모두가 꿈과 희망을 걸고 이곳 막장을 찿아와서 3년 아니면 5년만 탄광부로 일하고
집이라도 한채 마련할 돈만 마련되면 막장을 떠난다는 생각이 대부분 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 하였다
폐허가 된 아파트 방 벽에 쓰여진 "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
란 글씨와는 달리 인내는 했지만 아마 열매의 단맛은 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이제 막장의 인생들은 또 다른 막장, 도시 빈민으로 다시 흘러들고
고한의 잿빛 하늘에는 침묵의 정적만이 낮게 내려 앉아 있었다
낮게 내려 앉은 고한의 하늘
무거운 정적만이 감도는 검은 驛舍
적막이 한때 막장 보다 더욱 무서운 공포였음을
그 곳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물론
검은 뼈만 남은 驛舍까지 알고 있었으리
고한의 만항재가 높다기는 하지만
그들이 수심에 잠겨 바라보던 회색하늘 보다는 낮고
태백산 검룡소가 깊다기는 하지만
아리랑 만항재를 넘나들며
그들이 파 내려갔던 막장의 깊이 보다는 얕다
저 하늘 끝 백두대간 첩첩산중을
바라보는 눈길이 마르고 닳도록
끝내는 이곳에 눈물 한방울 심어 놓고 떠난 사람들이여 !
오늘도 그들이 살았던 폐광촌 낮은 담벽에는
온통 희망을 노래하던 아이들의 크고 작은 검은 낙서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삶...사랑...그리고 눈물...
그 들도 한때는 석탄의 불꽃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찔레꽃 보다 더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으리
지금은 그 곳을 떠나
또 다른 도회지의 빈민으로 떠돌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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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태백,삼척,부근에 있는 산맥들
검룡소 : 한강의 발원지 ( 태백산에 있는 깊은 沼 )
지하에서 올라오는 물의 량이 하루 3000 톤 정도 된다함
함백산 : 태백산과 나란히 우뚝솟은 산, 해발 1580 m
만항재 : 함백산에 있는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고개 해발 1350 m
대관령보다 500 m나 더 높은 고개임
출처 : 물밖으로 뛰어오른 망둥이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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