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없는 진영논리 |
고 세 훈 (고려대 명예교수) |
전 영국 총리 대처는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여백에 ‘wet’ 혹은 ‘too wet’라고 붉은 펜으로 휘갈김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우리/그들’의 이분법에 철저했던 그녀의 ‘진영’정치는 보수당 바깥뿐 아니라 안쪽을 향해서도 가차 없이 날을 세웠으니, 시장주의를 최대한 옹호하는 쪽을 강경파(dries), 전통적 온정주의를 지지하는 편을 온건파(wets)로 가르는 보수당 내부의 관행이 그 시절로부터 비롯되었다. 임기 말 즈음엔 온건파로 ‘낙인’찍힌 측근들은 모두 대처를 떠났고-1기 내각의 각료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그녀는 유권자선택 아닌 당내반발에 의해 현직을 물러난 최초의 영국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진영의 정치는 불가피하다 왕왕 진영이 정치인의 이름으로 특정될 때조차, 그것은 인간/세계/역사관에 관련된 거대담론을 공감하는 정치인, 지식인들의 느슨한 연대였고, 거기에 사적 친소나 개인적 이해관계가 틈입할 여지는 애초에 없다. 가령 전후 영국정치에서 벤(Benn)추종자, 대처주의자, 블레어(Blair) 지지자는 각각 전통적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제3의 길의 노선을 표방하는 진영을 지칭하는 조어다. (한국 실정과 견주는 일은 서로가 민망하니 삼가기로 한다) 진영이 부실하면 진영논리가 판친다 그런 진영이 도덕적 열정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진영의 내용이 공허해서 정당과 정치인 등 정치행위자를 구속하는 이념체계나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거나 부재하다면, 첨예한 개인적 단기적 이해관계의 공학적 셈법과 거기에 맞물린 각종 사적 연줄이 정치행태를 규정하는, 기회주의적 진영논리만이 판칠 것은 자명하다. 그때 과거의 청산도 미래를 위한 개혁도 안정된 정당성과 설득력을 담보해 낼 수 없을 터인데, 가령 적폐청산이란 개혁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이되, 문제는 청산의 범위와 완급을 따지는 숙의과정은 얼마나 합리적이며 적폐가 물러간 그 자리에 들어설 적극적 가치와 그것을 구현할 장치는 준비되었냐는 것이다. |
▶ 글쓴이의 다른 글 읽기 |
|
'변화와 혁신, 민중의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의 대물림 넘어 가난의 대올림 (0) | 2018.08.19 |
---|---|
눈빛, 낯빛의 리더십 (0) | 2018.08.17 |
개인의 역량향상이 고용으로 이어지는가? (0) | 2018.08.02 |
반올림, 1023일의 농성에 '마침표'.."끝까지 지켜볼 것" (0) | 2018.07.26 |
이해찬 "나이 많아 안된다? 정치는 나이 아닌 철학의 문제" (0) | 2018.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