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사회적 소수자 배척한다” 佛-伊‘소외의 철학자’ 저서들 잇단 번역
《프랑스의 자크 랑시에르(68),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66).
올해 국내 철학계에 이 두 철학자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학자의 책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초청강연회가 열리는 등 집중 소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학자는 2000년대 들어 서구 사상계에서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랑시에르는 자크 데리다와 질 들뢰즈를 넘어, 아감벤은 미셸 푸코를 넘어 ‘새로운 사유’를 구축해 가고 있는 학자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세계 주요 학술 행사의 초청 1순위를 다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들의 바람은 이미 일어난 상황.
원서로 두 철학자를 접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이들의 철학을 알려왔으며 “이 같은 학자들이 왜 여태껏 소개되지 않고 있는가”라며 번역서 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랑시에르는 이달 초 저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가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 독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실체와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이어 그의 대표작 ‘미학의 정치’가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도서출판 b)라는 제목으로 다음 주 출간된다. ‘정치의 가장자리에서’(길), ‘불화’(〃), ‘무지의 스승’(궁리) 등도 현재 번역 중이다. 랑시에르는 올해 말경 한국을 찾아 강연회를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감벤의 철학은 2월 초 국내에 본격 소개된다. 새물결 출판사는 대표작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5권 연작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권을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부제로 2월 초 발간할 예정이다. 또 다른 대표작 ‘열림: 인간과 동물’, ‘남겨진 시간’ 등도 번역 중이다.
랑시에르의 사상적 특징은 어떤 학문적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 그는 좌파 철학자 루이 알튀세의 제자였지만 1974년 ‘알튀세의 교훈’이라는 비판서를 통해 사상적 결별을 선언한 뒤 철학 사회학 역사학 미학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를 번역한 오윤성 씨는 “선배 철학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때문에 ‘반목의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랑시에르는 ‘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他者)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현대 사회에는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애초에 차단된 이들이 있는데 민주주의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평등을 주장해 왔다”고 지적한다. 인도의 수드라(카스트제도의 최하위 계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비롯해 일본의 최하층민인 부라쿠민(部落民) 등이 이에 해당한다. 랑시에르는 철학마저도 소외된 이들을 외면해 왔다고 비판한다.
아감벤도 배제되고 소외당한 이들을 주목한다. 대표작 ‘호모 사케르’의 제목은 ‘벌거벗은 생명’으로도 해석되며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을 의미한다. 여기에 아감벤은 ‘예외 상황’이라는 개념을 덧붙여 권력이 유발하는 소외 문제를 지적한다. 위기가 닥치면 정부를 비롯한 권력자는 ‘예외 상황’임을 들어 시민들의 권리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나치의 지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사회철학자인 이들은 학문적 사상적 특징 외에도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랑시에르는 2007년 프랑스 대선 때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가 “랑시에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었다”고 말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감벤도 미국의 강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지만 지문 등 생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미국의 입국 제도가 있는 한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민주주의… 평등 중시하고 민중의 정치참여 강조
[새로운 문명이 온다] [1] 민주주의의 위기, 이제는 공화주의다 공화주의… 공동체 조화위해 소수의 권익도 관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의 규정이다. 한국은 1948년 건국헌법에서부터 '민주'와 '공화'를 최고의 정치적 가치로 여겨왔다. 그동안 9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치면서도 이 조항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여기서 '민주'란 '인민 주권' '권력 분립' '다수의 지배'를 말한다. 반면 '공화'는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들 모두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권력 분립 속에서도 사회 통합을 어떻게 이룰지, 또 다수의 지배 속에서도 소수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관심을 둔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공화'를 잊어버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神)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근대의 출발 원리는 '공화'를 강조하는 '공화주의'였다. 중세 봉건제도하의 왕정(王政)이나 귀족정(貴族政)을 타파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인 자유도시를 건설하여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후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었는데,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 개인의 권익 보호에 집중했다. 반면 '민주주의'는 평등을 중시하면서 민중의 정치 참여를 강조했다. 하지만 오늘날 왜곡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방종하고 자기 자신만 위하는 자유로 타락하거나 획일적인 평등으로 전락하여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화'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즉 '공적인 것'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개인은 자유를 추구하되 그것이 공적인 자유가 되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며, 또한 나의 자유를 공적으로 보장해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법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평등도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단순히 획일적 평등이 아니라 각자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중층적 평등이어야 한다. 공화주의 이론가 모리지오 비롤리(Maurizio Viroli)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공화정은 '개인의 자유를 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공동선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 그리고 법치에 의존하는 정치체제'이다.
'공화'의 관점은 고대 로마, 근대 초기(14~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미국 건국 그리고 현대 핀란드에서 발견된다. 로마 공화정은 이방인조차 로마를 사랑하고 시민권을 획득하면 동료로 받아들였다. 원로원과 행정관 그리고 민중의회와 호민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사회 통합과 발전을 극대화했다. 르네상스기(期)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영주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민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다. 사회 유지를 위해 소수의 행정관으로 구성된 시뇨라 위원회와 시민들로 구성된 민회가 각각 역할을 분담하고 상업의 장려를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다. 건국기(期) 미국도 개인의 자유를 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연방국가를 이뤄 하나의 공화체제를 만들었다. [이동수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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