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34> 막장 노동자의 분노, 사북사태

소한마리-화절령- 2014. 5. 12. 23:30

[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34> 막장 노동자의 분노, 사북사태

입력시간 : 2014.04.21 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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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4월 22일 강원 정선군 사북지역 탄광노동자들이 철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계절은 봄이었건만 진정한 봄은 요원하던 시절이었다.

서슬 퍼런 전두환 신군부가 점차 실체를 드러내던 1980년 4월 24일, 조간신문을 펼쳐 든 국민들은 시커먼 활자로 가득한 1면 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광부 700여 명 유혈난동''무법 휩쓴 공포의 탄광촌'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기사들과 사진 때문이었다. 이른바 '사북(舍北)사태'다

계엄사의 보도통제로 인해 24일에야 기사화된 이 사건은 3일전부터 계속된 탄광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자 민중봉기였다. 산업전사라는 허울아래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인 탄광으로 몰려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이 분연히 일어서게 된 연유임금을 착취하는 어용노조 때문이었다.

강원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동원탄좌에 심상찮은 분위기가 몰아친 것은 그 해 4월 초였다. 회사와 권력의 편에 서있던 어용노조지부장이 조합원 몰래 회사측과 낮은 임금 인상에 합의했던 것이다.

4월 21일, 분을 참지 못한 광부들 200여명이 농성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선경찰서는 기동경찰을 동원해 해산을 종용했고 과격행동을 자제했지만 오후 5시, 유혈폭동으로 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부를 가장해 농성장에 들어간 형사가 노조원들에게 발각되자 지프차로 도망치면서 이를 막아선 노조원들을 깔아뭉개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차에 깔리는 현장을 목격한 노조원들은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곡괭이와 삽으로 무장한 수 천의 광부들이 농성장에 몰려들었다.

흥분한 광부들은 수 백 명씩 떼를 지어 읍내로 진출했다. 사북지서와 광업소 등이 이들에게 장악됐고 세를 불린 시위대는 가옥파괴와 어용 노조지부장 부인에게 린치를 가하며 분풀이 행진을 이어갔다.

22일, 무장한 경찰병력이 사북 철길을 사이에 두고 이들과 대치했지만 수적 열세와 날아오는 돌과 갱목으로 인해 사상자만 남긴 채 현장에서 철수했다.

사북지역이 광부들에게 완전히 장악되면서 오히려 사태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질서를 잡은 임시지도부는 이튿날부터 정부와 협상에 나섰고 24일, 노조집행부 사퇴와 상여금 인상, 부상자 치료 등 11개항이 합의되면서 3일에 이른 사북사태는 종지부를 찍었다. 격렬했던 싸움치고는 허망한 결말이었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던 정권의 약속은 한 달이 안돼 휴지조각이 됐다.

5월 17일, 전국에 몰아친 비상확대계엄은 시위에 앞장섰던 광부들과 부녀자들을 잡아들였고 모진 고문과 폭도의 낙인을 찍음으로써 사북은 원망과 분노의 도시가 됐다.

이제는 카지노의 도시로 변모한 사북이 막장 없는 평화의 도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