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탄광에서 사람이 죽나요?
지난 14일 오전에 발생하여 34시간만인 15일 저녁 최종 수습되어 현장을 떠나는 태백 장성광업소 출수(出水) 사고 희생자 김ㅇㅇ씨.
수백 수천 미터 지하에서 수억 년 전의 석탄기 지질시대에 축적된 탄소 덩어리인 석탄을 채취하다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발생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생경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아직도 탄광에서 사람이 죽나요?“
그렇습니다. 아직도 탄광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칩니다. 2011년부터 2020년 6월까지 대한석탄공사 산하 장성, 도계, 화순 등 3개 탄광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모두 178건이며, 이 가운데 장성광업소 사고가 65%를 차지했다. 특히 장성광업소에서 발생한 가장 큰 재해는 77년 11월 의 화재로 12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지난 1996년에는 인근 한보탄광에서 이번 사고와 유사한 출수(出水) 재해가 일어나 15명이 한꺼번에 사망하기도 하였다. 사고 현장까지 겨우 42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였지만 출수 사고 현장의 특성상 구조대가 접근하는 데는 엄청난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총 56세트 42미터의 사고 현장까지 0.75미터의 1셋트를 전진하는데 30분 가량이나 걸릴 만큼 난도(難度)가 높은 현장이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거의 예외없이 안전불감증, 그중에서도 근로자들의 부주의가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안전한 작업을 위한 직무 교육은 거의 행하지 않고 안전을 위한 교육이나 장비, 장구는 거의 마련되지 않는 현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사고가 터진 장성광업소는 1936년 채광을 시작한 이래 45년 8월 미군정청이 직할하는 주요 국가 기간 시설이 되었다. 지금까지 약 1억톤의 석탄을 생산하고 2년 후인 2024년 88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삼척시 도계읍의 2곳, 화순의 1곳 등 모두 3곳의 탄광이 석탄을 생산한다. 많은 부분 기계화되었으나 채탄 작업장이 더욱 심부화(深部化)되고 여전히 사람의 직접노동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인명피해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과거 80년대 최전성기에 비하면 1/10도 안되는 극히 적은 양밖에 생산하지 않는 석탄광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비중이 낮은 산업이라도 거기에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해당 지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경제 때문이기도 하고, 직접 채굴하는 탄광이 가동하는가 아닌가가 해외에서 석탄 등 에너지자원을 사들일 때에 가격협상력의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쉽사리 모든 탄광을 폐광할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전력 생산 등 산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자원을 수입하는 가격을 낮추는데 이들 탄광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한다. 이는 전기요금 등 각종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직간접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여전히 우리의 시민생활은 이들 소수 석탄광 종사자들의 지하 노동을 딛고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전체 종사자의 10% 가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를 일상적으로 겪으며 대한민국의 부엌을 책임졌던 과거의 석탄 노동자들에 대한 이 나라 사회의 응답 부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80년 4월의 사북 항쟁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 희생자들이 40년 넘게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배 보상 등 명예회복의 현안, 3만여 명의 진폐환자들에 대한 충분히 진료와 보상, 각종 산업재해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 당시 국가의 직간접 노동통제 정책에 의해 제대로 된 진료 기회와 정당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령 등의 정비 등. 이들에 대해 최소한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정도의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는 그동안 일어났던 탄광 사고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그동안 일어났던 탄광 사고 희생자는 거의 대부분 생산현장 최일선에서 작업하는 선산부 후산부 혹은 채탄공 굴진공과 보조공 등 '진짜' 광부들이었다. 이들을 직접 지휘하는 초급 간부인 감독 또는 반장급이 희생된 경우도 극히 예외적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숨진 김ㅇㅇ씨는 장성광업소 생산부장으로 일반 공장이라면 공장장에 해당하는 중견간부이고 엔지니어이다. 지금껏 일어난 탄광사고 희생자 중에 최고위급 인사이다. 아마 잘 알려진 제철 공장 등에서 공장장급의 인사가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근로자 김모 씨’라고 쓰진 않았을 것이다. 김ㅇㅇ씨는 현장에서 출수 위험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작업자들을 대피시킨 뒤 마지막으로 현장을 빠져나오다가 갑자기 터지면서 쏟아지는 물통(지하수)과 석탄이 뒤범벅된 수천톤의 죽탄에 아까운 희생을 당한 것이다. 생명의 가치는 다 같은 것이나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었던 지위의 중견간부가 희생된 것은 여러모로 손실이 클 것이다. 국영기업인 대한석탄공사에서 충분한 보상과 예우를 다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7년생인 희생자의 유가족들도 힘을 내고 굳건히 사시길 응원합니다. 아마도 아직은 중고등학생일 자녀들이 아버지의 희생정신을 잘 새겨 긍지를 가지고 건강하고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간곡히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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