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돌아가다7. 7 어쨌거나 이들은 모두 사태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내려온 것이어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사태의 방향을 바로잡아야겠다는 내 기대는 처음부터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노동쟁의를 전문적으로 조정, 개입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도 대부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던 것이..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4.05
사북으로 돌아가다6 6 이날 저녁 집으로 내려오니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도시산업선교회는 아니고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약칭; 사선, 도시산업선교회 등 개신교와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가톨릭 농민회 등 천주교 측의 연합기구)에서 간사로 일한다는 천영초 씨와 나중에 「말」지 편집국장을 지낸..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4.03
사북으로 돌아가다5. 5 잠시 후 읍내에 있던 노동자들이 광업소 본부에 올라와 광업소 본부 구내에 있던 간부 사택으로 몰려가 닥치는 대로 파괴하였다. 간부 사택이라고 해야 계장급이 다수이고 생산 현장의 과장급 간부인 갱장(坑長)들과 일부 보안감독직 평사원들의 주거지였으나 이러한 하급 관리자들조..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4.02
사북으로 돌아가다4. 4 좀 늦게 잠이 든 탓에 날이 훤히 밝은 뒤에 일어나 대강 요기를 하고 집을 나서 농성장으로 향했다. 그때가 오전 9시나 되었을까? 그 사이 상황이 일변하여 안경다리 철로 위에 약 2,000여명 가량의 노동자와 부인들이 거센 함성을 지르며 진을 치고 있었다. 날이 새자 일부 노동자들이 사..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3.31
사북으로 돌아가다3 3 그 날이 1980년 4월 21일 월요일이었다. 전날인 일요일은 한 달에 2∼3회뿐이던 휴일 중의 하루였고, 그 날부터 한 주간은 병방(丙方)으로 불리는 00:00부터 08:00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작업조였기에 읍내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골짜기의 집에서 하루종일 독서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오..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3.29
사북으로 돌아가다2 2. 한 달이 못되어 아버지의 주선으로 동원탄좌의 직영사업장은 아니지만 덕대(德大) 사업장에 취업하였다. 지금은 다 없어진 탄광이지만 외지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 탄광이라고 해서 아무나 아무때나 마음만 먹으면 들락거리는 곳이 아니다. 흔히 도시나 외지에서 하던 일이 잘 안풀..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3.29
사북으로 돌아가다1. 사북으로 돌아가다. 1. 1979년 12월 성탄절을 기하여 수원에 있던 나는 2년 여 만에 다시 사북으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교회동료 등, 친지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새롭게 눈뜬 세상, 새로운 소명에 부푼 가슴을 안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게 된다. 아직 수원에 있던 어느 날 .. 사북으로 돌아가다. 2006.03.29